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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2시, 구미시 옥성면 복우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 대둔사 대웅전을 찾았다. 지인의 모친이 돌아가신 지 49일째가 돼 천도재(죽은 이의 넋이 극락으로 가길 염원하기 위한 불교 의식)를 치르는 날이기도 했다.

대웅전 법당내에서 지내는 천도재 스님의 손에 쥔 종소리가 마음을 정화시키는 느낌이 든다.
▲ 대웅전 법당내에서 지내는 천도재 스님의 손에 쥔 종소리가 마음을 정화시키는 느낌이 든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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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사 경내를 들어서니 한 스님이 외는 천도재 염불이 종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망자를 위로하는 경건한 느낌이 들었다. 대웅전 안에선 이미 천도재가 시작됐고, 스님은 49재 의식 중에 영혼의 다른 말인 영가(靈駕)를 시작하기 앞서 다생겁의 죄의 때를 씻어주는 관욕(灌浴)이란 절차에 대해 설명을 하셨다. 그리곤 다시 종소리와 함께 '영가전에'를 독송하셨다.

기자는 불교 신자가 아니었기에 불교의식인 49재는 처음 경험 했지만 새롭고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대둔사 대웅전 법당 안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와 북소리 또한 몸과 마음에 미묘한 변화를 일렁이게 했다. 스님의 주문에 따라 '영가전에'란 책 속의 염불도 따라 읊어보기도 하고 절 또한 수차례 반복하며 생전 처음으로 불교의식을 치렀다.

영가의 위패와 옷을 태우는 봉송 의식 마침 불을 태우고 천도재가 모두 끝날 즈음에 비가 내렸다.
▲ 영가의 위패와 옷을 태우는 봉송 의식 마침 불을 태우고 천도재가 모두 끝날 즈음에 비가 내렸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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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30여 분가량 대웅전 법당에서 진행된 천도재가 끝난 뒤 영가의 옷과 위패를 하나씩 들고 나와 법당 밖에 있는 소각로에서 불 태우며 모든 의식이 마무리됐다. 소각로에서 불을 태울 때 마침 비가 내려 하늘이 망자를 위로해 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21살 청년부터 나이드신 노모까지...모든 망자 위로하는 천도재

영가의 유가족들은 "천도재를 마치고 나니 마음속에 응어리지고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씻은 듯 날아가 버린 느낌이다"라고 했다. 불가에서 죽은 사람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는 이유는 사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것이다. 영혼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뒤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돕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의 법에 따라 천도재를 지내고 그 영혼이 진리에 눈을 뜨면, 죽은 사람과 산사람에게 모두 유익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대둔사 대웅전 전경 구미시 옥성면 복우산 자락에 위치한 대둔사는 신라시대 아도화상이 만드신 절이다.
▲ 대둔사 대웅전 전경 구미시 옥성면 복우산 자락에 위치한 대둔사는 신라시대 아도화상이 만드신 절이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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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복우산 자락 기슭에 위치해 평온하기 그지 없는 대둔사는 속세의 모든 번뇌를 해결해주는 곳이 아닐까 싶다. 지인의 천도재가 끝나고 공양 간 처마 밑에 앉아 내리는 비를 구경하는데, 조금 전 천도재에서 독송하시던 한 스님이 옆에 앉아 혼잣말로 얘기하시는 것을 듣게 됐다.

"길지도 않은 인생을 너무 짧게 살아 안타깝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21살 젊은 청년이 군에서 제대한 뒤 공장에서 일하다가 전기에 감전돼 죽음을 맞았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평생을 제수명 다할 때까지 살다가 편히 죽음을 맞이한 이가 있기도 하고, 한창 활기찬 생활로 인생의 즐거움을 누려야 할 꽃다운 젊은 나이에 일찍 저 세상으로 가버린 이가 함께 모인 곳이 바로 이곳 대둔사였다.

이 망자들을 애도하는지 비는 더욱 거세졌고 늦은 오후가 되서야 대둔사를 떠나게 됐다. 대둔사는 신라 눌지왕 30년(446년)에 도리사를 창건한 아도스님이 지은 신라왕조 최초의 절이다. 고려 고종 18년(1231)에 몽고족의 침해로 불탔고, 제25대 충열왕의 아들 왕소군이 출가해 다시 세웠단다. 조선시대 선조 39년(1606)에 사명대사 유정스님께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일만명의 승병을 훈련시키기도 한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곳이다. 그런 이유로 암자가 10여개 소나 있다고 한다.

대둔사 해우소 전경 해우소 옆에 개는 무슨 번뇌가 그리도 많은지 사람들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 대둔사 해우소 전경 해우소 옆에 개는 무슨 번뇌가 그리도 많은지 사람들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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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도로가 나있어 찾기 편한 대둔사지만 옛적에는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한 복우산(伏牛山)자락 깊숙이 들어 앉은 조용한 절이었다. 속세의 때와 죄가 많이 묻어 있는 사람일지라도 대둔사를 향해 걸어 올라가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정화되고 개과천선을 하지 않을까. 산사에 방을 빌려 마음 편히 쉬다 내려오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비록 지인의 천도재 때문에 절을 찾게 됐지만 사람들이 절을 찾는 이유를 새삼 깨닫게 만들어준 대둔사였다. 가족과 함께 오랜 역사의 향기를 느끼게 해줄 대둔사를 찾아보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유통신문과 한국유통신문 카페, 블로그에도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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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빨간이의 땅 경북 구미에 살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우리네 일상을 기사화 시켜 도움을 주는 것을 보람으로 삼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힘이 쏫는 72년 쥐띠인 결혼한 남자입니다. 토끼같은 아내와 통통튀는 귀여운 아들과 딸로 부터 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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