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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수의 <칼> 표지
이외수의 <칼> 표지 ⓒ 해냄
소심하기 이를 데 없던 학창시절 관심 있던 여학생에게 노트를 빌려주러 갔다가 노는 애들에게 무참하게 당한다. 주인공 박정달은 그 이후 자구책으로 과도를 품고 다닌다.

나약한 그에게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새파랗게 날이 선 과도를 지니는 것으로 시작한 그의 칼 수집은 세상의 칼이란 칼은 다 수집하는 수집광으로 발전한다.

그의 별명은 '칼맨'이다. 회사에서 이유 없이 40대에 밀려나고 만 그는 본격적으로 '신검' 만들기에 도전한다.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칼, 죽이는 칼이 아닌 살리는 칼, 직접 사람을 찌르는 칼이 아니라 닿지 않아도 사람을 제압하는 칼, 이름 하여 '우는 신검'을 만들기 위해 대장간을 차린다.

무력에는 무력, 칼에는 칼

'신검'에 투영된 작가의 심리적 카타르시스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칼이라도 품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시대에 박정달은 신검을 만들기 위한 길고 지난한 여정을 떠난다. 신검을 만드는 신비야말로 신세계, 해탈, 천국, 신천지, 파라다이스로의 몰입이었다.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칼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칼이어야 한다.

이외수 작가의 <칼>(해냄 펴냄)은 전두환의 신군부 출연으로 온 국민이 허탈감과 상실감에 빠져있던 침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유신체제 하의 억눌림이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당시 경호실장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듯했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세력이 실권을 잡고 등장하였다.

전두환·노태우·정호용 등 하나회가 중심이 된 신군부세력은 12·12사태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고 당시 국무총리인 최규하를 대통령의 자리에 앉힌다. 실세가 전두환이란 걸 안 국민들은 여기저기서 거세게 항거하며 일어난다. 박정희 전제정치시대로의 회귀를 말하는 전두환 정권의 태동을 막아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 5월 17일 신군부세력은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광주를 탱크와 총칼을 앞세워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죽이며 강제 진압한다. 국민들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최규하 대통령의 권력을 빼앗고 결국 1981년 3월 3일 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대한민국 제5공화국의 탄생을 알린다.

칼을 가진 무지막지한 권력은 주인공 박정달이 만난 깡패들이고 기득권 세력이다.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무한정 당해야 하는 민초들의 억눌린 심정과 맞닿아있다. 박정달로 대표되는 억울한 서민들의 저항은 그저 가슴 속에 묻혀 있을 뿐이다. 주인공 박정달을 통해 풀어내는 작가의 고뇌는 환상과 상상 그리고 현실을 넘나드는 마음의 칼을 찾는 것밖엔 없었으리라.

칼에 의해 정복당한 민초의 억울함이 해결될 기미는 없었다. 1981년 88올림픽 유치라는 쾌거를 앞세워 전두환 독재정권은 더욱 민중을 억압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민중은 아픔을 속으로 삭여야 하는 시대였다. 이외수 작가는 1년이란 단기간에 <칼>을 써 세상에 숙제로 던진다. 찔리면 아플 수박에 없는 형태인 채로.

영혼의 칼, 우는 신검

"하지만 나는 먹고사는 일에 필요한 이 따위 칼 같은 건 절대로 만들지 않을 생각이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칼은 사람의 영혼과 영합되는 신검이라는 사실을 자네도 명심해 주게."(107쪽)

먹고사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자유롭게 사느냐가 문제였다. 인간답게 사느냐가 문제였다. 절대적 폭력, 구조화된 폭력 앞에 살아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영혼이 있는 인간인가가 문제였다 이미 비굴하지만 박정달씨는 회사에서 돈을 벌며 그런 삶은 살아왔었다. 실직을 계기로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를 씨름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폭력을 제어해볼 심산으로 시작된 칼에의 집착이 통쾌하게도 '영혼의 칼'로 거침없이 내달려간다. 결코 기대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흐르는 신검의 여정은 독자로 하여금 사는 의미와 재미가 무언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미 당하고 산 인생이야 어쩌랴. 이제부터 당하지 않으면 된다. 칼을 지니고 다니는 것으론 부족하다. 신검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현실적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먹고사는 것을 우습게 아시는구랴. 당신은 아마도 칼이나 우둑우둑 깨물어 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대장간을 차려가지고 입에 거미줄 치기 딱 알맞아요. 내가 꽃집이라도 하나 차리는 수밖에 없지."(107, 108쪽)

그의 아내는 현실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굳힌 남편의 뜻을 순순히 수긍한다. 현실적인 문제는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결론을 내린다. 실은 현실적인 아내가 박정달씨가 회사에서 벌어오던 수입보다 훨씬 나은 수입을 올린다. 그렇게 현실과 이상은 충돌 없이 공존한다.

이상과 판타지로 변해버린 칼 작업은 온갖 칼 도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전혀 새로운 미궁 속으로 진전한다. 찌르는 칼이 아니라 우는 칼이다. 고작해야 "염병할"이 불만을 토로하는 욕의 전부여서 칼을 차고 더러운 세상을 무찌르고자 했던 박정달은 사뭇 도사가 되어간다. 지금까지 헛살아 온 인생을 단번에 날려줄 신검을 만드는 것이다.

미쳐야 보이는 것, 죽어야 사는 것

부조리한 세상,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민초는 다가갈 수 없는 절대권력, 그렇게 칼이 주도하는 세상에서 박정달로 투영된 '억눌린 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신검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신검을. 그러나 대장간을 차리고 전국의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터득한 진리는 '영혼의 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친 세상에는 미친 사람이 주인이다. 칼에 미친 박정달을 통하여 작가가 보여주는 것은 무얼까. 차라리 미치라고 한다. 광기 어린 눈으로 사람을 만나고, 광기 어린 행동으로 미친 사람 소릴 듣는 거다. 그것이 부조화의 세상에 내놓은 작가의 생존방식이다. 이는 이외수 작가의 괴기와 맞닿아 있다.

박정달은 삶의 의미도 희미하고, 한 번도 의욕을 가지고 했던 일도 없다. 인정받은 적도 없다. 그러다 사회로부터도 도태당한다. 그것조차도 당연시한다. 세상의 잣대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대중 속의 고독', 일찍이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을 통해 박정달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현대인을 그렇게 조명했었다.

이외수는 누구?
독특한 상상력, 기발한 언어유희로 사라져가는 감성을 되찾아주는 작가 이외수. 특유의 괴벽으로 바보 같은 천재, 광인 같은 기인으로 명명되며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문학의 세계를 구축해온 예술가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추구이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술의 힘임을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1946년 경남 함양군에서 태어났고, 춘천교대를 자퇴한 후 홀로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견습 어린이들>, 1975년 <세대>지에 중편 <훈장>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시작한 글쓰기가 벌써 30년을 바라보고 있다. 출간한 지 20년이 넘는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에서부터 근작 <날다 타조>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소설은 40-50만 부가 넘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태디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 문단에서 보기 드문 작가다.

문학과 독자의 힘을 믿는 그에게서 탄생된 소설, 시, 우화, 에세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열광적인 '외수 마니아(oisoo mania)'들을 증가시키고 있다. 현재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에 칩거, 오늘도 원고지 고랑마다 감성의 씨앗을 파종하기 위해 불면의 밤을 지새고 있다.
그래서 택한 도구 혹은 탈출구가 '우는 신검 만들기'다. 여전히 고뇌하는 인간군상의 투영은 작가가 박정달을 신검 만들기에 성공하도록 할까.

독자를 흥미진진함 속으로 몰아가는 작가의 글 솜씨는 가히 천재적이다. 이번 <칼>은 세 번째 개정판으로 가독성을 높이고 표지도 새롭게 디자인했다.

박정달은 결국 칼을 만든다. 그가 만든 칼은 정의로운 칼이고, 활현경(쏟아지는 활을 조그만 움직임으로 막아내는 칼솜씨)은 아니어도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리는 비검이다.

그러나 피 맛을 보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는 칼이다. 피를 보지 않으려고 만든 칼이 피를 보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다니. 그 아이러니는 풀리지 않는 숙제다.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신선하다. 그러나 아쉽다.

지금도 작가가 칼로 상징되는 도구를 필요로 했던 당시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여전히 칼은 이 시대에도 필요하다. 정치나 사회적 요구가 같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은밀한 포장지를 뒤집어쓰고 있어 더 음흉한지도 모른다. 그래도 작가는 우리가 추구할 것은 '물리적 칼'이 아니라 '영혼의 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혼은 죽어야 사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덧붙이는 글 | <칼> 이외수 지음 | 해냄 펴냄 | 392쪽 | 14,500원



칼 - 이외수 장편소설

이외수 지음, 해냄(2014)


#칼#이외수#권력#대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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