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 송림동 언덕을 오를 때면 붉게 익어가는 고추로 풍경이 온통 매운 고추 빛이다. 붉은 색은 혁명의 색깔이라 했던가. 마침 아버님은 혁명의 상징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집을 허물어 쓰임이 없는 폐지(廢地)를 넉넉하게 고추를 말리는 공간으로 사용할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을까. 멀리 있는 아들, 딸에게 보내줄 추석선물을 생각하면 이 방법은 어떻고 저런 방법은 또 어떠하랴. 매연 없고, 파리 없고, 비둘기가 없는 공간에 돗자리를 깔고 쨍쨍한 햇빛에 고추만 사랑스럽게 잘 익어준다면야, 피부가 고추 빛이 되더라도 즐겁기만 하시다.
고추를 제대로 말리려면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늘에서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면 널었던 고추를 단숨에 거둬 담아야 한다. 고추에 습기가 차면, 곰팡이가 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님과 아버님은 매일처럼 한 낯의 뜨거운 햇빛에도 나와 앉아서 그 앞을 지키신다.
또 대충 평지라고 아무 곳에나 널어놓고 방치하면 위생적 일 수 없다. 차의 매연이 그 위에 앉고, 비둘기가 쪼아 먹기도 하며, 파리와 온갖 곤충들의 식사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틈틈이 고추를 뒤집어줘야 한다. 그래야만 앞뒤로 골고루 익은 고추를 빻아 질 좋은 고춧가루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사랑이 가득 담긴 고춧가루는 멀리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진다.
내가 사는 세상에 '혁신'과 '혁명'의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어, 살기 좋은 세상이 됐으면 하고 바라본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세상이 오기만을 기다려선 될까. 고추를 대충 길거리에 널어놓기만 한다고 될까. 바짝 말리기까지 끝없는 보살핌과 관심을 줘야만 한다.
모든 변화에 대한 바람은 고추 말리는 아버님과 어머님의 자식을 향한 사랑처럼, 그렇게 시작됐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blog.naver.com/touchpaint 개인 블로그에도 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