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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의 진면목이 펼쳐져 산행이 즐거운 비봉 능선길.
북한산의 진면목이 펼쳐져 산행이 즐거운 비봉 능선길. ⓒ 김종성

바쁜 일상 속에 문득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 늘 그 자리에서 기다려 주는 곳, 종종 찾아갈 적 마다 답답했던 마음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주는 공간, 서울 시민이라면 한 번쯤 가봤을 듯한 북한산(옛 이름 삼각산)이다. 해발 836m로 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수도 서울의 상징이자 수호신으로 시민들의 심신 건강에 크게 이바지 하는 고마운 산이다. 나 또한 북한산과 더불어 한강이 없었다면 살기 퍽퍽한 서울살이를 견뎌내지 못했을 듯싶다.

여전히 한낮의 햇살은 따갑지만 입추가 지나고 습도가 낮아지면서 살랑살랑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길목, 북한산 여러 산행길 가운데 신라 진흥왕 순수비로 유명한 비봉(돌기둥 碑, 봉우리 峰) 능선길을 걸어가 보았다.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청-금선사-비봉-사모바위-대남문-구기계곡-구기동으로 내려오는 원점 회귀형 산행코스를 역순으로 걸어도 좋다.

나무들에게 붕대를 두르게 한 '참나무 시들음병'

 비봉 능선을 향해 오르막 숲길을 부지런히 오르는 등산객들.
비봉 능선을 향해 오르막 숲길을 부지런히 오르는 등산객들. ⓒ 김종성

 계곡을 따라 길게 자리한 이채로운 산속 사찰 금선사.
계곡을 따라 길게 자리한 이채로운 산속 사찰 금선사. ⓒ 김종성

비봉 능선길은 울창한 숲길, 장대하고 멋진 바위들이 펼쳐진 암릉길, 맑고 청정한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길 등 북한산의 진면목을 감상하며 흥미진진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길이다. 그렇다고 암벽을 타야하는 등 험준한 산길은 아니라서 등산 초보자나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좋다. 중간에 쉼터이자 약수터이기도 한 운치 있고 오래된 산속 사찰은 북한산의 선물 같은 존재다. 산행길은 약 7.5km의 거리로 4시간 정도 걸린다. 

북한산의 서남쪽 지릉에 해당하는 비봉능선은 다른 능선에 비해 덜 붐비는 편이라 비교적 한갓진 산행을 할 수 있다. 이북5도청 앞에서 비봉탐방지원센터를 지나 금선사를 향해 걷는 오르막길 옆으로 이어진 개울물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흘렀다. 늦여름에 들어서도 심심치 않게 비가 내린 덕분. 개울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물로 뛰어든 아이들과 물장구치며 노는 어느 등산 가족들은 산행은 그만 잊어버린 듯싶다.

북한산속의 옛 고승들이 수도를 했음직한 커다란 바윗돌 속의 신묘한 굴 '목정굴(木精窟)'은 등산로에서 잠깐 벗어나지만 들를 만하다. 목정굴은 조선 순조 임금의 탄생 비화가 서린 동굴이다. 당시 고승으로 이름 높았던 농산 스님이 정조의 부탁을 받고 이 굴에서 기도를 드리다 입적(사망)해 순조 임금으로 환생했다는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런 전설에 힘입어 후손들에게 기도발이 잘 통하는 유명한 굴이 되었단다. 굴 법당 안 수월관음보살 뒤 계곡의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외부의 잡음을 차단하여 명상이나 기도 삼매경에 빠지기 좋겠다.

곧이어 마주친 북한산 숲속의 사찰 금선사는 등산객들이 쉬어가기 좋은 쉼터이기도 하다. 겉에서 보면 작은 암자로 보이지만 일주문 입구에서 산의 계곡을 따라 길게 자리한 보기 드문 형태의 사찰이다. 약숫물로 물통을 채우고, 마당 한쪽에 여러 모양의 항아리들이 모여 있는 승려들 집안을 슬쩍슬쩍 절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다. 고양이 몇 마리가 스님처럼 여유롭게 경내를 돌아다니는 풍경은 이 절을 더욱 마음에 들게 했다.

 '참나무 시들음병'으로 붕대를 하고 있는 참나무류의 나무들.
'참나무 시들음병'으로 붕대를 하고 있는 참나무류의 나무들. ⓒ 김종성

울창한 산중 숲속 몇몇 나무들이 웬 붕대를 칭칭 감고 서 있다. 알고 보니 요즘 상수리 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류 나무들이 '참나무 시들음병'으로 고생하고 있어 그 대책으로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이렇게 붕대를 감아놓았다고 한다.

이 병은 병원균이 참나무류 나무들의 수액 통로를 막아서 나무가 말라죽게 되는 병이라고. 숲속 동물들에게 맛난 도토리를 제공하는 참나무가 그런 병에 걸리다니 나무도 나무지만 다람쥐, 청설모 같은 산짐승들이 배를 곯 것 같아 안 됐다. 걸리면 100% 말라 죽는다는 소나무 재선충병과 달리 시들음병에 걸린 참나무의 고사율이 20~30%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산행을 자주 하지 않다보니 등산 초입에 헉헉하던 가뿐 숨소리는 몸이 적응을 했는지 신기하게도 산 중턱 쯤에 오르자 나아졌다. 한결 여유로운 호흡으로 초목들이 정화해 준 산속 공기를 실컷 마시며 오르막 산길을 오르다 보면, 비로소 비봉 능선에 닿게 된다. 이때부터 오르막길은 끝나고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문수봉 등 멋들어진 바윗돌 암릉이 펼쳐진 평탄한 능선길이 시작된다.

예로부터 북한산(예전 이름은 삼각산)은 금강산·지리산·묘향산·백두산과 함께 '오악'에 드는 명산으로 꼽혔다더니 그럴 만한 풍경이 오르막길을 올라온 보상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북한산의 특별한 아름다움, 바위미(美)

 기기묘묘한 모양의 암릉위를 걷는 기분은 특별하다.
기기묘묘한 모양의 암릉위를 걷는 기분은 특별하다. ⓒ 김종성

 신묘하고 멋들어진 바위미(美)를 지닌 사모바위.
신묘하고 멋들어진 바위미(美)를 지닌 사모바위. ⓒ 김종성

북한산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 유역을 신라 영토로 편입한 뒤 진흥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주변 조망이 멋진 명당자리의 비봉(돌기둥 碑, 봉우리 峰)은 정말 진흥왕이 순수비를 세울 만했다.

그래서인지 중턱까지 올라간 나와 달리 비석이 있는 전망 좋은 비봉 꼭대기까지 무서움을 무릎 쓰고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진흥왕 순수비의 원형은 안전한 보존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갖가지 모양의 암릉 위를 걸으며 비봉을 지나면 신기하게 한쪽으로 기운 재미있는 모양의 사모바위가 나타난다. 저 커다란 바위가 오랜 세월 쓰러지지 않고 기우뚱 위태롭게 서 있게 된 자연의 조화가 신비하게만 느껴지는 자태의 바위다. 이 바위는 옛날 남자들의 혼례식 때 머리에 쓰던 사모(私募)처럼 생겨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북한산은 성곽을 쌓기 이전에 이미 천연의 산성이 아닌가 싶다. 온갖 형상의 암봉과 암벽으로 연결되어 있는 대자연의 성채다.

사모바위에서도 저 멀리 최고봉인 백운대, 만경대(일명 국망봉), 인수봉 등 북한산의 봉우리와 능선이 펼쳐져 장관을 보여준다. 이 대표적인 세 봉우리를 일컬어 북한산은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렸던 산이었다. 이에 서울시 강북구청은 북한산이 일제 강점기 때 붙여진 이름이라며 삼각산으로 부르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모바위가 자리한 평평한 지대는 비봉능선의 백미로, 주변 풍광까지 좋아 많은 등산객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 간식을 먹고 담소를 나누며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비봉 능선 길엔 이외에도 바위가 만들어낸 자연돌문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돌문을 통과하면 또 새로운 풍경의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비바람에 의해 기기묘묘하게 형성된 크고 작은 암봉, 암벽, 암석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자랑하고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북한산성의 남쪽 대문 대남문은 전망 좋은 쉼터.
북한산성의 남쪽 대문 대남문은 전망 좋은 쉼터. ⓒ 김종성

 강한 생존력이 느껴지는 북한산 사는 멧돼지.
강한 생존력이 느껴지는 북한산 사는 멧돼지. ⓒ 김종성

북한산에 있는 북한산성의 남쪽 대문 '대남문'을 향해 걷다보면 청수암문이 먼저 나타난다. 암문(暗門)은 말 그대로 산성 성곽 후미진 곳이나 깊숙한 곳에 적이 알지 못하게 만든 비밀 출입구로, 군사들과 주민들이 이용하던 토끼굴 같은 작은 문. 큰 대문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은 흥미로움과 호기심을 일으키는 문이다. 북한산성 성터엔 인조임금이 청나라의 침략에 피난을 갔던 남한산성과 달리 행궁이나 유물 같은 것들이 다 사라지고 터만 남아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대남문에서 잠시 쉬며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하는 북한산 주변을 감상하다가 성문 밖으로 이어진 구기계곡으로 내려오면 이제 하산길이다. 가을 장마 혹은 게릴라성 호우가 종종 쏟아져 내린 덕분에 물이 콸콸콸~ 속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숲속의 구기계곡 길은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계곡 길 중간에 약수터와 함께 나무 벤치가 놓여있는 쉼터는 청명한 물소리를 들으며 산행을 마무리하기 좋은 곳이었다.

구기계곡에서 더 놀라웠던 건 멧돼지를 그것도 3마리나 보게 된 일이었다. TV에서나 보았던 멧돼지는 탄탄한 몸매, 산비탈에서도 재빠른 동작, 단단해 보이는 긴 주둥이... 한눈에 봐도 강한 생존력이 느껴졌다. '참나무 시들음병'으로 참나무류의 열매 도토리를 먹기 힘들게 되자 땅속을 파먹었는지 주둥이가 흙으로 까맣다. 어쩌다 인간의 공공의 적, 유해동물이 되버린 녀석의 잔뜩 경계어린 눈매가 무섭다기 보단 측은해 보였다. 산 들머리에 '멧돼지 조심'이라고 써있는 현수막이 과장이 아니었다. 참고로 현수막의 멧돼지 주의사항이 등산할 때 요긴할 것 같아 공유해본다. 

- 새끼를 동반한 멧돼지를 자극하지 마세요.
- 멧돼지에 돌을 던지거나 비명을 지르지 마세요.
- 갑자기 등을 보이고 뛰어가지 마세요.
- 샛길은 위험하니 탐방로를 이용하세요.

덧붙이는 글 | * 지난 8월 17일에 다녀왔습니다.
* 교통편 :
ㅇ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0212번 버스 - 종점인 구기동 이북5도청 하차.
ㅇ 3, 6호선 불광역 2번 출구로 나와 7211번 버스 - 구기삼거리에서 하차해 10분쯤 오르면 이북5도청이다.



#북한산#금선사#비봉#사모바위#멧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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