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가슴에, 당신은 누구의 가슴에 꽃으로 핀 적 있는가!
아침에 눈을 뜨면 마당을 한 바퀴 도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귀촌한 지 두 달 만에 터득한 것이 있다면 늦게 일어나면 하루가 짧다는 것과 풀이 나를 비웃는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에는 밤늦도록 TV를 보다가 남들 자는 시간이 되면 컴퓨터를 켜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일과를 시작하였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어도 낮에 딱히 하는 일이 없으니 약속이나 볼 일이 없을 때면 되풀이되는 일상이었다.
그 버릇은 시골까지 이어져서, 오전을 다 보내고 일어나면 낭패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시골에서는 새벽에 일어나야 하루 절반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충 챙겨 먹고 마당에 나가면 풀이 먼저 아는 체한다. 아무 생각 없이 호미를 챙겨 풀을 뽑았다. 한 달을 그렇게 했더니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말한다.
"어, 촌년 다 됐네.""촌년이 별기가, 촌에 살믄 촌년이제.""아니지, 촌에 살아도 니처럼 얼굴이 고래 새까매지지는 않는다."집에 와서 거울을 봤다. 몸빼에 헐렁한 셔츠, 새까만 얼굴은 기미가 끼기 직전이다.
친구가 떠난 뒤 그의 말을 되새겨 봤다.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시골생활 몇십 년 한 그들보다 내가 더 형편없다는 사실을 그때야 깨달았다. 다음날부터 시계를 아침 7시에 맞춰 놓았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가니 여태까지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풀에게 꽃이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아주 작은 꽃에서부터 제법 큰 꽃송이까지 갖가지 꽃들이 우리 마당을 장식하고 있었다. 여태껏 나는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그랬다. 늘어지게 자고 한낮이나 돼서야 마당에 나서니 얼굴은 얼굴대로 새까매지고 풀들은 30도가 넘는 더위와 작열하는 햇살에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거나 시들어서 미쳐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되니 모든 게 다 풀로만 보여서 모조리 뽑아버렸던 것이다. 풀들에게 미안했다. 뽑힐 때 뽑히더라도 자기가 애써 피운 꽃을 한 번 봐 주기를 바랐을 터인데. 그 조그만 꽃을 피우기 위해 무더위와 작열하는 햇볕과 사투를 벌였을 텐데.
이제는 새벽 6시에 시계를 맞추었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꽃들은 색깔이 선명하고 고왔다. 오늘도 이름 모를 작은 꽃 앞에 주저앉아 꽃들과 대화를 한다.
"얘는 어제는 없었는데 오늘 피었나보네. 음, 너는 며칠 더 봐 준다. 너는 이제 가도 되겠다. 내 호미를 용서해라. 후후, 너는 뭐 요래 작냐."풀꽃을 들여다보다가 향기를 맡아본다. 향기는 없다. 요 작고 보잘 것 없는 꽃, 모르고 밟으면 그냥 짓밟히는 풀꽃, 마당이 지저분하다고 마구 뽑혀서 내던져지는 이름도 없는 꽃!
하지만 오늘도 나는 향기 없는 풀꽃을 들여다보며 감사함을 느끼고, 행복하다. 생각해 본다.
'나는 누구에게 작은 꽃이 되어 준 적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