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서울 사직동 주민센터 앞 아랍요리식당 '카사자밀라'에서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참변을 겪은 팔레스타인을 돕자는 '세이브 가자(SAVE GAZA)' 행사가 열렸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식당 앞에서 화려한 자수로 장식된 손가방과 차, 머플러 등 아랍 물건을 파는 오픈바자(장터)가 시작됐다.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등에서 온 네다섯 명의 유학생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직접 만든 과자 맛보세요" 등을 외치며 손님을 모았다. 식당 앞을 지나던 이들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이 신기한 듯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오후 7시 반쯤 되자, 식당 안에 4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스크린이 켜졌다. 지난 달부터 약 7주 동안 계속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은 지난 26일 이스라엘 정부와 가자지구 통치세력 하마스가 무기한 휴전에 합의하면서 일단 중단됐다.
이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만 2천 명 이상이 숨지거나 다친 것으로 보도됐다. 국내 아랍유학생들과 시민단체인 '팔레스타인 평화연대(PPS)' 등은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현실을 한국인에게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에서 이날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발표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러분이 명심하셔야 할 점은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현재 존재하는 이스라엘은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첫 순서로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설명한 PPS 한국인 회원 냐옹(33·여·활동명)씨는 이스라엘이 구약성경을 근거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 차지하려 하지만, 구약 속의 이스라엘은 서기 70년 로마인에 의해 없어졌고 현재의 이스라엘은 1949년 팔레스타인 주거지를 무력으로 빼앗아 세운 '전혀 다른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오니즘'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화를 위한 억지 명분"이라며 "유대인이 성경을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해 이를 민족주의와 결합시킨 것"이라고 덧붙였다. 냐옹씨는 또 "이스라엘은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팔레스타인을 공습한다"며 "우익 정당이 보수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발표에 나선 팔레스타인 유학생 사메르(29·서울대 국제대학원)씨는 이번 여름방학 동안 팔레스타인에 가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현지의 참상을 고발했다. 그가 살고 있는 예루살렘은 가자나 서안지구에 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출입국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고 한다. 사진 중에는 민간인 주거지역이나 병원 시설이 폭격 당한 광경과 함께 어린 아이들이 이스라엘 군에 체포되어가는 장면도 있었다.
"(이스라엘 군을 향해) 주먹 한 번 쥐었다고 해서 체포되거나 그 자리에서 총살 당하는 소년도 있어요."사메르씨가 생후 40일 된 신생아의 주검 사진을 보여주자 청중은 탄식을 쏟아냈다. 희생된 아기와 가족들은 모두 폭격으로 숨지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황이어서 아기는 묻히지도 못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사메르씨는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많은 친구들이 이스라엘 군에 저항하다 체포됐고 일부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마지막 강연자로 등장한 언론인 김동문(52·자유기고가)씨는 한국 언론의 아랍 관련 보도가 대부분 피상적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 등 진실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990년 이후 10여 년간 요르단 등 중동지역에 거주했고, 이후에도 가자지구 등을 오가며 관련 기사를 <한겨레21> <미디어오늘> 등에 꾸준히 기고해 온 김씨는 "(이스라엘이 가자를 공습한) 50일 동안 (현지에 대한) 심층취재를 하거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보도한 한국 언론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언론사가 아랍권 국가에 기자를 파견하기도 했지만 현지어로 소통하지 못하고 영어할 줄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방문자'에 불과했다고 꼬집었다.
김씨는 "중국의 신화통신 같은 경우 아랍어 하는 사람을 중동특파원으로 보내고, 전공을 안 했더라도 파견하기 전에 연수를 다 시켜 최소한 아랍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언론의 경우 관심과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중동전문기자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며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세계를 보도하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국내 언론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생생한 이야기를 접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의존하게 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예진(25·여·서울)씨는 "팔레스타인 문제 같이 특정 국가의 이권이 개입된 경우 한국이나 해외 언론매체보다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SNS를 통해 전하는 정보를 더 신뢰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미용(32·여·서울 중랑구)씨는 "평소에 일간지나 온라인 매체 기사를 읽으면 이스라엘의 입장에 편중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오히려 (팔레스타인) 현지인들이 SNS를 통해 올리는 사진 몇 장이 진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천 아시안게임 팔레스타인 담당 서포터즈인 우지혁(25)씨는 "팔레스타인 여자 아이가 트위터에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올린 글을 보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뉴스를 통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의 참상을 설명했던 사메르씨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강조하며 '비디에스(BDS)운동'을 소개했다. BDS는 이스라엘에 대한 '참여거부(Boycott), 투자중단(Divestment), 경제제재(Sanctions)'를 뜻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이 주요후원자로 참여하는 제11회 EBS국제다큐영화제(EDIF)에 대해 김조광수 감독 등 영화인 129명이 지난 11일 참여거부를 선언한 게 대표적인 예다. 사메르씨는 "BDS 운동에 많은 나라들이 참여할수록 팔레스타인은 많은 힘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다국어뉴스부 아랍어 뉴스팀에서 일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알제리 출신 이브라임 아메드는 "언론의 정확한 보도와 함께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을 통해 팔레스타인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병행될 때 문제 해결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랍인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명현숙(38, 경기 의왕)씨는 "언론에서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않아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며 "이런 행사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공부해서 내가 아는 것들을 주변에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몇 년 전 모로코를 다녀온 뒤 한국에 아랍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싶어 '카사자밀라'를 열었다는 김주희(33) 대표는 "다들 세계화를 말하면서도 (세계 어딘가에서) 누군가 죽고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팔레스타인 문제는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주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씨와 이번 행사를 함께 기획한 요르단 출신 사라하(27·여·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씨는 "할아버지 때부터 전쟁을 피해 요르단에서 살았지만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이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저녁 9시 30분에 모든 강연이 끝났지만 참가자들은 10시가 넘도록 아랍전통 디저트인 대추야자와 차를 즐기며 이야기를 나눴다. 팔레스타인 출신 친구를 통해 이 행사를 알게 됐다는 임혜진(37·여·서울 성북구)씨는 "이번 행사를 통해 (팔레스타인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