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 잿빛 세상. 큰 홍수가 밀려온 뒤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도로도 건물도…. 한 차례 대홍수가 지난 자리에는 물길만 남아 있다. 누런 흙바닥 사이사이 물이 빠진 흔적만 휑하니 남아 길을 알려주고 있다. 흔적만 남은 길을 따라 나와 남편이 함께 걷고 있고, 멀찌감치 뒤를 따라오는 엄마가 보인다. 나는 가끔 뒤를 보며 엄마를 확인한다. 꿈을 꾸었다. '결혼을 앞두고 참 희한한 꿈이다' 싶었다. 웨딩촬영을 하던 날도 비가 왔고, 결혼식 당일에도 비가 왔다. 결혼을 한 지가 어느새 15년인데 요즘 들어 그때 그 꿈 생각이 자주 난다. 예지몽이었을까? 남편이 친정집과 왕래를 하지 않은 것이 2년째가 다 되어간다.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기껏해야 명절과 친정 부모님 생신 때 가보는 것뿐이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발길을 끊었다.
명절이면 당연스레 친정을 가는 것인데 일주일 전부터 나는 눈치를 봤다. 결혼을 하고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시어머니는 늘 "며느리는 출가외인"이라는 말을 남편에게 했다. 친정 엄마가 우리 집에 전화라도 하면 싫은 내색이 얼굴에 드러났다.
말씀으로는 너무나도 친절하게 다녀오라고 하셨다. 큰 인심을 쓰듯 하룻밤 자고 오라고까지 하면서도, 얼굴빛은 냉기가 돌 만큼 차가웠다. '차라리 내가 눈치라도 없이 맹했다면…' 싶을 만큼, 눈치 빠른 내가 원망스러울 때도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나의 명절증후군은 결혼 초부터 시작됐다.
남들은 명절이면 음식 장만에 손님 치르느라 명절증후군을 앓는다지만, 나의 명절증후군은 '어떻게 친정을 다녀오나' 마음 졸이는 것이었다. 이제는 아예 그것조차 포기하고 그저 죄스러운 마음으로 명절을 보낸다.
지난 주말 성묘를 다녀온 남편과 시부모님이 저녁을 먹고 막걸리 한잔씩 하며 묏자리에 대해 옥신각신 이야기했다. 성묘를 다녀온 날이면 남편과 시아버님은 언성을 높여가며 싸우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약해지셨다'고 우는 남편... 내 부모님은...우리가 큰집인데도 아버님의 사촌 형님이 가깝게 사는 이유로 성묘도 함께 다녀오고 차례도 오고가며 지낸다. 그때마다 남편은 큰아버님의 독선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러면 아버님도 질세라 더 큰소리로 남편과 우리 부부의 잘잘못을 오래 묵은 일까지 꺼내어 탓을 하신다. 그런데 그때마다 화제는 주로 나, 며느리였다.
"집안에 여자 하나 잘못 들어오면…"부터 시작해서, 직장 다니며 늦게 귀가하는 것까지 트집 잡아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어떻게 아느냐" 하고 차마 입에 담기조차 수치스러운 말씀을 해서 며느리의 가슴을 난도질 해놓을 때가 여러 번이었다. 이제는 상처에 딱지가 앉아 굳은살이 박이듯 무덤덤하게 넘기려고 하지만,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늘 그렇게 며느리를 긁어대고 아들과 한바탕 싸움 아닌 싸움을 하고 나서야 자리에 드셨는데, 올해는 웬일인지 아버님이 잠잠하셨다. 그저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계시더니 이내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런 아버님을 남편이 다시 모시고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 나 죽거든 니가 알아서 해라" 하고 한 말씀만 하시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
아버님이 들어가셨는데도 남편은 혼자 막걸리 한 병을 더 마시면서 시어머님을 탓하기 시작했다. 어머님이 너무 나쁘다며, 나한테는 아버님한테 틱틱거리지 말고 잘하라고….
"아버지가 너무 약해지셨어. 나랑 싸워야 되는데 안 싸워. 이러면 큰일 나는데…."기어이 남편은 눈물을 보였다. "나랑 싸워야 되는데 안 싸워" 하는 말을 몇 번 되뇌더니 결국 꺼이꺼이 울었다. 그런 남편을 보니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70을 넘기시고도 아직 정정하신데…. 내가 볼 때는 90도 넘게 사시겠구만…. 당신 아버지 약해지신 건 가슴 아프고, 당신 때문에 내 부모는 나 몰라라 명절 때도 제대로 못 찾아뵙는 나는…. 내 부모님은….'가슴에서는 천불이 나도 말 한마디 못하고 속으로 울어야만 했다. 명절 때면 우울해지는 나를 남편이 알까? 그래도 친정에 등안시 하는 것 빼고는 나무랄 데 없는 남편이기에,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내 두 아들의 아빠이기에, 사랑을 만들어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