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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간의 노동으로 빚은 꽃송편 처음엔 꽃을 크게 만들어 탁! 붙였더니, 계속 떨어지고 예쁘지도 않았다. 코딱지만 하게 꽃잎을 만들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붙여야만 안 떨어지고 모양도 예쁜 꽃송편이 완성된다. 몇 개를 빚었는지 모르겠다. 저게 뭐라고. 다 하고 나니 눈이 침침했다.
다섯 시간의 노동으로 빚은 꽃송편처음엔 꽃을 크게 만들어 탁! 붙였더니, 계속 떨어지고 예쁘지도 않았다. 코딱지만 하게 꽃잎을 만들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붙여야만 안 떨어지고 모양도 예쁜 꽃송편이 완성된다. 몇 개를 빚었는지 모르겠다. 저게 뭐라고. 다 하고 나니 눈이 침침했다. ⓒ 남기인

사랑하는 나의 집. 부모님껜 죄송한 말이지만, 내가 이 집안에 태어난 게 후회스러울 때가 딱 두 번 있다. 바로 설날과 추석이다. 음력 1월 3일이 생신인 아빠 덕분에 설날 명절 한 상을 차려 놓으면, 바로 이틀 뒤에 또 아빠 생신 상을 거하게 차려야 한다.

명절에 먹던 음식들을 적당히 내놓으면 되지 않냐고? 천만에. 얄미운 친척들은 이미 명절음식이 질린 터라, 늘 새로운 음식을 갈구하며 방문한다. 그나마 최근엔 아빠 생신은 대부분 뷔페에서 때우기 때문에 설날은 지낼 만하다.

진정한 지옥은 추석이다. 음력 8월 9일은 외할아버지의 제삿날. 추석과는 늘 일주일 차이다. 제사음식은 차례음식에 돌려쓸 수 없다는 외할머니의 철칙에 따라 일주일 단위로 상을 두 번이나 차린다. 이게 왜 이렇게 힘든가 하면, 그 당시엔 정말 흔치 않게, 우리 엄마가 무남독녀 외동딸이기 때문이다. 늘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나와 언니가 상을 차려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된 외할머니가 손을 떼셨고, 취직과 동시에 '상차림 슈퍼패스'권을 획득한 언니도 손을 뗐다. 갱년기의 엄마 혼자 상을 차리는 것도 무리였고, 당연히 취업준비생의 탈을 쓴 실질적 백수인 내가 제사상과 차례상 차리기 연속 콤보의 세계에 입성했다. 졸업시기가 훌쩍 지난 나는 취업의 압박으로 인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겨운 추석을 보낼 것만 같았다.

아무리 간소하게 차린다 하더라도, 엄마와 단둘이 시작한 제사상 차리기는 고역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고역은 외할머니의 은근한 압박. 열심히 호박전을 부치고 있는데, 외할머니의 넋두리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영감~ 손녀가 이렇게 제사상도 잘 차려주고 있는데~ 똑똑한 직장 하나 구해주지도 못하고 뭐하고 있는 거여. 하여간 이노무 영감은 죽어서도 잘하는 게 없구만."

제사와 차례가 일주일 차이... 진정한 지옥
그렇게 할머니는 외할아버지와 나를 동시에 보내는 1타 2피의 신공을 보이셨다. 그 후로, 내가 부치던 호박전은 눈물 젖은 전이 되었다는 후문. 녹두전을 부치고 있는데도 할머니의 칼날 같은(?) 덕담은 계속되었다.

"어머어머. 어쩜 우리 기인이 녹두전도 이렇게 동그랗게 잘 부칠까. 꼭 보름달 같네. 올해 추석엔 보름달도 큰 게 뜬다던데 좋은 곳에 취직하게 해달라고 빌면 되겠어~."

정신적 고단함에 맞서며, 하루와 반나절 동안 꼬박 매달려 제사상 차리기를 무사히 완료했다. 제사가 모두 끝난 후, 맛있게 음식을 먹던 것도 잠시, 다가올 추석에 친척들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간담이 서늘해졌다. 친척들의 "그래, 좋은 곳에 직장은 잡았니?"라는 말은 그야말로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는 인사말 중 하나였다.

제사상과 차례상 콤보의 결과 제사상과 차례상을 일주일 단위로 새로 차리다보니 어깨 통증이 너무 심했다. 딱히 문을 연 한의원도 없어서 집에서 부항을 떴더니 저런 무시무시한 색깔이. 뒤에 더 심한 자국이 많이 있지만 청소년 관람불가라서 여기까지만.
제사상과 차례상 콤보의 결과제사상과 차례상을 일주일 단위로 새로 차리다보니 어깨 통증이 너무 심했다. 딱히 문을 연 한의원도 없어서 집에서 부항을 떴더니 저런 무시무시한 색깔이. 뒤에 더 심한 자국이 많이 있지만 청소년 관람불가라서 여기까지만. ⓒ 남기인

무엇보다 내가 견디기 힘든 것은 '언니와의 비교'였다. 언니는 어릴 적부터 수학문제 풀기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던 남다른 영재였다.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공짜로 대학을 다니더니 예상했던 대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 후, 대학원 전공이 잘 안 맞는다고 투덜대다가 떡하니 치의학전문대학원(치전원) 합격을 해 왔다. 나는 그때부터 열등감을 넘어, 언니가 나와는 좀 다른 세계의 다른 인종 정도로 보였다. 치전원 입학 이후, 생각보다 강도 높은 공부에 힘겨워 하던 언니는 유명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꽤 높은 연봉에 혹한 언니는 치과의사를 때려치우고 연구원의 길로 돌아섰다.

계속 치전원을 다니든, 회사를 다니든 언니는 뭘 해도 집안에서 자랑스러운 맏딸이자, 효녀였다. 올해도 추석을 맞아 언니는 모아둔 월급을 쾌척해 엄마의 숙원사업이었던 집 리모델링을 해줬다. 명절 선물 한번 화끈하다. 그런 언니를 무슨 수로 이길 수 있으랴.

아픈 상처에 소금 뿌려대는 친척들

명절을 비롯해 각종 집안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친척들은 "기인이도 언니 반만큼은 해야지~", "아직 취직 안 했어? 그래도 형만 한 아우가 없구나" 하는 말들로 내 마음을 후벼팠다. 내가 뼈 빠지게 만든 음식을 먹으며 하는 소리가 그 모양이니, 올해 추석 음식엔 소금이라도 왕창 뿌려놓고 싶었다.

물론 내가 때때로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제사상 이후 차례상에는 송편을 올려야 하는데, 올해는 엄마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봤던 특별한 송편을 하고 싶었나 보다.

"올해는 송편에 꽃 만들어 올려서 꽃송편 하고 싶은데."
"꽃송편?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차피 나랑 엄마만 고생해야 하는데 왜 해?"
"에이 그래두~ 어차피 기왕 할 거면 예쁘게 하는 게 좋잖아. 너 시간도 남아나면서 뭘."
"뭐? 시간이 남아나? 지금 나 백수라고 무시하는 거야? 나도 제사상 차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순간 "아차" 싶었다. 그 정도로 화낼 만한 일이 아닌데, 도둑이 제발 저려 괜히 심술을 부린 것이다. 최근 나의 이런 과민반응이 잦아지며 엄마도 포기상태에 이르렀는지, 다행히 별 말 안 하고 넘어가줬다. 나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으로, 장장 다섯 시간 동안 송편 위에 꽃을 박는 예술혼을 불태웠다. 물론 엄마의 배려로 꽃잎만 하고, 잎사귀와 줄기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언니는 석사 과정도 마치지 않은 채 스물일곱 살이 되어서야 취직을 한 거고, 나는 이제 겨우 스물 네 살인데 왜 이렇게 조바심이 드는지 모르겠다. 남들 다 다녀온다는 어학연수 경험도 없고, 눈에 띌 만한 뚜렷한 스펙조차 없으니 괜히 시간이 갈수록 피가 마르는 것 같다.

"뭐 시간이 남아나? 백수라고 무시하는 거야?"

추석빔, 새 구두 엄마가 추석빔으로 사준 새 정장구두다. 평소에 구두라면 뛸 듯이 기뻐할 선물인데, 왠지 부담된다. 취직 못하면 저 굽에 찍혀버릴 것 같다. 저걸 신고 면접에 가서 "날 떨어뜨리는 자는 이 금장 박힌 굽으로 밟아버리겠다"라고 말하고 싶다.
추석빔, 새 구두엄마가 추석빔으로 사준 새 정장구두다. 평소에 구두라면 뛸 듯이 기뻐할 선물인데, 왠지 부담된다. 취직 못하면 저 굽에 찍혀버릴 것 같다. 저걸 신고 면접에 가서 "날 떨어뜨리는 자는 이 금장 박힌 굽으로 밟아버리겠다"라고 말하고 싶다. ⓒ 남기인

물론 내가 발만 동동 구르며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명절 전에 열 군데 정도 서류를 넣었는데 연락이 온 곳은 단 두 곳. 한 곳은 면접에서 워낙 실수를 많이 한 터라 낙방을 겸허히 받아들였지만, 정말 간절히 합격을 원했던 한 곳은 너무나 어이없게 떨어지고 말았다.

다대다(多對多) 면접이었는데 웬 여우 둘이서 면접 시작 전에도 면접관과 다정한 눈인사를 나누더니, 면접 당시에도 알아들을 수 없는 회사만의 사업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자사 인턴인 것 같았다(인턴이라 쓰고 내정자라 읽는다). 물론 그 언니들이 없었어도 내 합격의 여부는 모르는 것이지만, 영 찝찝한 면접이 아닐 수 없었다.

취업준비생의 한가위는 풍요롭지만 서럽다. 이런 걸 바로 풍요 속의 빈곤이라 하는 건가. 올해 추석엔 친척들이 또 어떤 강력한 총알을 장전해 올지 조마조마하다. 시집 못 간 골드미스 사촌 언니들은 명절 때면 아예 해외여행을 가버려, 친척들의 잔소리를 피한다. 부럽다. 나는 해외로 뜰 돈도 없는 백수이니 말이다.

명절 때 듣는 잔소리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다. 대학 가면 취직 안 한다고 뭐라 하고, 취직하면 시집 안 간다고 뭐라 할 테고, 시집가면 애 언제 낳냐고 뭐라 할 게 뻔하다. 어차피 들을 잔소리라면 조금 순서를 바꿔 시집부터 가는 게 나을지도?

"할머니, 나 좋은 직장 말고, 증손주부터 낳아드리면 안 될까? 나 그게 훨씬 빠를 것 같은데."

이렇게 말했다간 왠지 부침개가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올 것만 같다. 올해 추석엔 그래도 혹시…. 이렇게 열심히 상을 차렸으니 조상님께서 기특하게 여겨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시지 않으려나? 내심 기대를 해본다.


#추석 #제사#명절#취준생#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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