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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발표를 아무도 안 믿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농민들이 예측 가능한 정책을 펴야 하는데, 지금까지 보면 엉터리였다. 오죽했으면 농민들은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손해 본다는 말을 하겠느냐."

경남 창원 동읍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의장은 박근혜 정부의 쌀수입 전면개방 선언에 대해 분노하며 이같이 지적했다.

전농 부경연맹은 쌀수입개방선언에 반발하며 경남도청 앞에서 천막농성과 농기계 반납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농민들의 항의투쟁은 번번이 (청원)경찰, 공무원들에 막히고 말았지만, 이들은 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오는 17일 진주, 18일 창원 등 다른 시·군, 23일 거창에서 각각 지역농민투쟁이 열린다. 농민들은 1인시위와 농기계 반납, 집회 등을 벌일 예정이다. 이어 오는 27일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농민대회에 대거 참석한다.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의장이 1일 오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열린 쌀시장 전면개방 반대 하반기 투쟁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의장이 1일 오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열린 쌀시장 전면개방 반대 하반기 투쟁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 윤성효

하원오 의장은 "27일 농민들이 나락을 싣고 상경하려고 할 때 경찰이 고속도로 입구에서 막을 수도 있겠지만 농민들은 어떤 형태든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쌀수입 개방선언 뒤 전농 부경연맹은 창녕 벼논을 갈아엎기도 했다. 다음은 하원오 의장과 추석 전인 지난 5일에 나눈 대화 내용이다.

"쌀시장 개방 선언 이후... 쌀값 떨어졌다"

- 정부의 쌀시장개방 선언 뒤 농민 반응은?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분노한다. 2004년 쌀시장을 개방한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쌀값이 내렸다. 요즘도 같은 현상이다. 추석을 앞두고 햅쌀이 나왔는데 값은 내려갔다. 햅쌀이 나오면 대개 쌀값이 올라가는데 반대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정부의 쌀시장개방 선언 탓이라 본다. 정부 발표에 가장 예민한 게 농업이다."

- 왜 쌀값이 내려갔다고 보는지?
"상인들이 '입질'을 하지 않는다. 쌀 매매상들이 장난을 친다고 본다. 2년여 전부터 저장되어 있는 쌀이 있는데, 쌀시장 개방에 앞서 상인들이 처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막걸리나 김밥 등에 사용하는 쌀을 팔아 버리는 것이다. 일부 매장에서는 벌써부터 수입쌀을 진열할 정도다. 쌀시장 자유화가 되면 더 심할 것이다. 올해 쌀을 채우기 위해 창고를 비워야 하는 이유도 있다. 지금은 정부에서 의무도입량만 들여오고 있어도 이 정도인데, 시장개방이 되면 정부 통제도 되지 않고, 그야말로 엉망이 되지 않을까 싶다."

- 쌀시장 전면 개방 이후 벼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도 있는지?
"그래도 아직 쌀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하는 농민은 없다. 말은 '쌀농사 포기'라고 하지만, 실제 농민들은 달리 할 게 없다. 쌀농사 안 짓겠다고 하지만 그래도 또 하는 게 농민이다. 벼농사 준비를 하지 않는 농민이 실제로 있을지는 내년 봄이 되어 봐야 알 것 같다."

- 농민들은 정부 발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불신이 심하다. 정부에서 하지 말라고 해서 농민들은 안하겠다는 게 아니다. 농민들은 이제 정부를 믿지 않는다. 오죽 했으면 정부정책에 반대로 하면 된다고 할 정도냐. 가령, 정부에서 배추값이 폭락할 것이기에 심지 말라고 하면 심어야 돈이 된다고 생각할 정도다. 정부정책을 반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정부는 쌀을 수입하되 관세율을 높이면 된다고 하는데.
"높은 관세율을 보장할 수 없다. 대통령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게 농업 아니냐. 관세율을 400% 이상으로 한다고 하는데, 믿을 수 없다. 세계에서 쌀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중국 등 몇 개에 불과하다. 한미FTA에 이어 한중FTA도 체결하고 나면 끝이다. 관세율을 높이겠다고 하지만, 협상의 문제라고 하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 쌀에 대해 높은 관세율을 보장하는 법적 규정을 마련한다면?
"여러 농민 단체 중에 그런 주장을 하는 단체도 있다. 대표적은 한농연(한국농업인총연합)이 그렇다. 쌀관세율이 300% 아래로 떨어지면 수입을 즉각 중단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대책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쌀수입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대책의 하나다. 그러나 우리(전농)는 쌀수입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천병학 사무처장이 1일 오전 경남도청 앞에서 쌀시장 전면개방에 항의하며 이앙기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천병학 사무처장이 1일 오전 경남도청 앞에서 쌀시장 전면개방에 항의하며 이앙기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 윤성효

물가 잡는다고 해놓고... 농산물 가격부터 잡는 정부

- 역대정권마다 쌀 보호를 외쳤지만 농민들의 반발을 사왔다.
"1988년 흉년이 들었고 올림픽을 앞두고 쌀을 미국에서 수입해 왔다. 그 뒤에는 풍년이 들어도 쌀을 수입했다. 김영삼 정부도 쌀 수입은 안하겠다 해놓고 뒤집었다가 그때 장관이 물러나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는 자유무역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방을 견지해 왔다. 이명박 정부는 다 열어준 셈이다. 지금 정부도 마찬가지다. 농업 문제는 역대 대통령도 지킬 수 없었는데 어떻게 장관이 지킨다는 말이냐."

- 다자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 때부터 쌀시장 개방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정부나 농민들은 대책을 세우지 않고 뭐했느냐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 논의가 1986년부터 있었다. 그때도 쌀 문제가 핵심 가운데 하나였다. 벌써 30여 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쌀 문제다. 기껏해야 '직불금' 정도다. 벼농사 직불금은 주는데 콩 등 다른 작물 직불금은 주었다가 주지 않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업정책이 바뀌고, 예산이 있으면 주고 없으면 주지 않겠다는 게 농업이다."

- 경남도를 비롯한 자치단체들도 쌀시장 전면개방과 관련해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정부에서 쌀시장 전면개방 선언을 하고 난 뒤에, 경남도에서 내놓은 대책이 있었다. 그런데 구체적이지 않고 임시방편이다. 예산은 수천억을 투입하겠다고 하는데, 실효성이 결여되어 있고, 형식적인 내용이다. 파프리카를 예로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신선채소라 해서 일본에 팔다가 엔화 영향 등으로 해서 농민들은 일본에 수출하는 것보다 국내에 파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파프리카가 국내시장에 대량으로 풀리니까 값이 더 내려간다. 정부는 시설하우스에 보조를 얼마씩 해주면서, 그런 시설들이 많이 늘어나고 하니까 실효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 농업은 유통의 문제도 있지 않나.
"김해에 농산물 한 대형업체가 있다. 그 대행업체는 조선소 등 사업장을 비롯해 대형 급식소·식당에 농산물을 공급한다. 그런데 경남이 아닌 지역에서 생산된 쌀이 들어오는데, 단가를 후려친다. 열무 등 채소도 마찬가지다. 유통업체가 농산물 값을 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통업체가 모두 장악하고 있어서 그렇다. 유통업체에 대해서는 정부도 손을 못 댈 정도다. 유통업체, 중간상인들이 농산물 값에 대해 장난을 많이 친다고 본다."

- 농산물 값은 물가에 바로 영향을 준다.
"정부는 물가대책을 세우면 농산물 값부터 때려잡는다. 정부는 공공요금이나 기업과 관련이 있는 공산품에 대해 손을 쓰기 전에 농산물 값부터 낮추려고 한다. 농산물 값을 내리게 해놓으면 물가를 다 잡은 것처럼 한다. 그런데 정작 물가정책에 필요한 공산품이나 공공요금은 계속 오르는데 말이다."

-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싸울 것이다. 시군마다 농민대회도 열고, 오는 27일 상경투쟁도 할 것이다. 사실 쌀농가를 조직해야 하는데, 쌀전업농가는 대부분 1만 평 이상 경작하는 농민들로 부자다 보니 잘 움직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소작농 하는 농민들이 싸워서 그런 사람들이 덕을 본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더라도 농민 전체가 힘을 모아 나가야 한다. 쌀시장 전면개방에 맞서기 위해 '쌀생산자협회'라는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을 시․군․면 단위까지 만들어서 대응해 나갈 생각이다. 어떻게 하든 우리 민족의 먹을거리인 쌀만큼은 우리가 생산해야 하고, 외국 쌀 수입을 막기 위해 싸울 것이다."


#쌀시장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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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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