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에 진정으로 애도하던 많은 사람이 '세월호'라는 말만 나와도 진저리를 치는 지경에 이른 것은 비극이다… 그런데도 세월호 사고에 무슨 정치 음모나 있는 듯이 전제하고서 특별법에 도저히 수용될 수 없는 내용을 넣으려고 요구하다 국민적 애도가 국민적 반감으로 바뀔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 <조선일보> 9월 10일자 사설 '세월호에 진저리 치고, 국회는 해산하라는 추석민심' 중
다른 언론처럼 <조선일보>도 9월 10일자 스케치기사를 통해 '추석 민심'을 전하고 있다. 이 신문의 정치권 비난 강도는 다른 언론에 비해 두드러질 정도다.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서도 '국민적 애도가 국민적 반감'으로 바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사설을 통해 주장했다. 제목도 다른 언론에 비해 세다. 세월호에 '진저리'치고, 국회는 '해산'하라는 것이 추석 민심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에 진저리치고 있다는 <조선>이 '사설'을 통해 전하는 추석민심에는 뭔가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이 존재한다. 굳이 다른 언론의 추석민심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이날 이 신문은 사설이 아닌 '의원들이 전하는 추석민심'이라는 스케치기사를 6면에 게재했다. 사설을 보면 해당 스케치기사 속 의원들 발언이 사설에서 그대로 인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특이한 대목은 스케치기사의 느낌과 사설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스케치기사는 나름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 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런데 '세월호 진저리, 국회해산' 등 표현을 사용한 사설에서는 그 강도가 다르며, 야당에 대한 일방의 비판이 느껴진다. 과연 그것이 추석민심이 맞는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출발한 <조선>의 추석민심이날 <조선>의 스케치기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반적 추석민심, 세월호 관련 추석민심, 그리고 야당의 장외투쟁에 관한 추석민심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야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형국인데 이 신문에 등장하는 라인업 인원이 비슷하지 않다. 야당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것이다.
먼저, '전반적 추석민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는 새누리당 의원 3명, 새정치 의원 2명이 등장한다. '세월호 관련 추석민심' 항목에서는 새누리당 3명, 새정치 1명, 새정치 소속 익명 1명이 등장한다. 마지막 '야당의 장외투쟁 '관련해서는 새정치 1명, 새정치 익명 의원 2명이 등장한다.
'전반적 추석민심' 부분은 다른 언론과 비슷한 수준이다. 의원들은 '세월호 사태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을 전했다. <조선>이 피로감 앞에 '극도의'라는 수식어를 넣고 있다는 점 정도가 다르다고 할까.
'세월호 관련 추석민심' 부분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강경 발언이 이어진다. 야당 의원은 비교적 평범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예컨대 새정치 윤관석(인천 남동을) 의원은 "대통령과 여당이 포용력을 발휘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문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반면 새누리당 의원들의 강도는 상당하다. 정용기(대전 대덕) 의원은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얘기하는 분들은 나에게 '이제 그만'이라고 하더라, 표현 강도가 세서 놀랐다"고 말했다. 김명연 의원(경기 안산 단원)은 "이제 피로감 수준에서 불만으로까지 번졌다"고 말했다. 이노근 (서울 노원) 의원은 "야당과 유가족에게 더 이상 끌려 다니지 말고 세월호특별법을 빨리 마무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마지막 '야당의 장외투쟁' 관련해서는 등장인물부터 범상치 않다. 새정치 소속 1명, 소속미상 경기도 중진의원 1명, 호남 지역 한 의원 1명 이렇게 총 3명이 등장한다. 그리고 발언의 강도는 신원 미상 정도가 강할수록 세진다. 먼저 황주홍(전남 장흥·강진·영암) 의원은 "새정치연합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불만이 유례없이 높은 수준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소속미상 경기도 중진의원이 등장해 "천막치고 농성이나 하려면 지역구에 나타나지도 말라고 하더라"고 지역주민들의 불편한 감정을 전했고 마지막 호남지역 한 의원이 등장해 "이렇게 하면 절대 야당이 정권 못 잡는다고 하더라"고 야당의 행위가 매우 잘못됐음을 우회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누가 세월호 '진저리' 여론을 전하고 있나
이제 이 신문의 사설을 살펴보자. 사설이 강력하게 비판하는 지점은 크게 두 가지다. '세월호 관련 추석민심'이고 다른 하나는 '야당 장외투쟁' 관련이다. 그런데 앞서 스케치기사와 비교할 때, 운동장은 더욱 기울어진다. 스케치기사의 등장인물 자체가 기울어져 있음을 고려할 때 사설의 운동장은 균형성을 주장하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먼저, 국민들이 '진저리'치고 있다는 '세월호 관련 추석민심'을 사설에서 어떻게 전하고 있는지 보자. 3명의 의원들이 등장한다. 사설에서는 모두 익명으로 등장하나 6면 스케치기사에서 기명으로 한 발언과 정확히 일치한다. 새누리당 2명, 새정치 1명이 등장한다(사설의 해당 대목에서는 "사람들이 세월호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는 의원도 등장하나 6면 스케치기사에서 정확하게 해당 발언을 한 의원을 찾지 못해 제외).
사설은 "(세월호 관련) 이제 피로감 수준에서 불만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시장에 붙여놓은 노란 현수막 때문에 상인들과 충돌 직전이다"라는 한 의원이 말한 험악한 분위기를 전달했다. 새누리당 김명연 의원이 6면 스케치기사에서 "(세월호 관련) 피로감 수준에서 불만으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전한 추석민심 발언과 동일하다.
이어 사설은 "사람들이 '이제 그만'이라고 한다. 표현 수위가 높아서 놀랐다. 다들 세월호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는 '진저리'친다는 여론을 전했다. 이 내용 역시 새누리당 정용기(대전 대덕) 의원이 6면 스케치기사에서 전한 "사람들이 '이제 그만'이라고 한다. 표현 수위가 높아서 놀랐다"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사설에서 '(세월호에) 진저리 친다'는 시중의 민심은 새누리당 소속 의원 2명이 전한 내용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나름 기계적 중립을 위해 등장시킨 건 야당 새정치 박주선(광주 동구) 의원의 "민생 경제가 어려운데 정치권은 세월호특별법 하나만 갖고 싸우니 분통이 터진다고 하더라"는 중립적인 발언이다.
야당 장외투쟁 비판은 '익명' 의원들 몫<조선>은 같은 사설에서 야당인 새정치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한다. 신문은 "(새정치가 이런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유권자들의 말이 말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곧 절감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추석 민심이 '국회 해산'이라고 주장한 이 신문은 왜 야당에게만 경고하고 있는가.
등장하는 인물도 범상치 않다. 사설은 "한 야당 의원은 '지역민들이 야당이 이러면 절대 정권 못 잡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또 "다른 야당 의원은 '주민들이 '천막 치고 농성하는 데는 절대 근처에 나타나지도 말라'고 당부하더라'"는 민심을 전하고 있다. 이 두 발언을 한 야당의원은 6면 스케치기사에서도 익명으로 등장하는 의원들이다. 익명 의원의 비판을 빌려 재비판하는 것이다.
<조선>이 야당에게는 '절대 정권 못 잡는다'고 비판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여당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 신문은 "여당 의원들은 '야당이 잘못하고 있지만 여당도 잘하는 것이 없다. 어쨌든 국정 책임은 당신들에게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고 전할 따름이다.
새누리당 의원들 입이 추석 민심의 출처추석 직전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앞에서 만나달라며 요청한 세월호 유족들을 외면한 상태로 활발한 대외행보를 이어나갔다. 이와 관련해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움츠러들었던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었다. 박 대통령의 최근 자신감에 <조선>의 10일자 사설도 큰 도움을 줄 듯 싶다.
그러나 이 신문이 전한 '세월호 진저리'는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 입에서 나온 민심이었음을 앞서 확인했다. 그리고 그 민심은 추석 직전에 KBS에서 보도한 세월호 여론조사 결과와도 매우 다르다. 지난달 30일 KBS가 실시한 세월호 특별법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53.7%가 '여야가 다시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