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우린 새벽 4시쯤 출발해 곡성 연동마을 친정집에 들러 부모님 산소에 갔다가 시집이 있는 담양으로 가거든요. 친정집에 도착하려면 대략 7시 이짝저짝 되겄네요. 아저씨가 친정마을로 오셔서 그림 가지고 갈래요?""아이고메! 미안허게 뭐더게 또 그림을 가지고 온데. 그동안 스케치 헌다고 마을 집집이 위치를 알려달라고 이메일 보내덩만 견치 그리불고 말았네요. 참말로 미안해 죽겄네.""그라녀요. 울 엄마한테 내 대신 헌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녀요. <오마이뉴스> 보니까 아저씨가 하도 고향 사랑이 넓고도 깊어 이번 추석 선물로 진뫼마을 풍경을 그려 주려고 그동안 쉬지 않고 그렸어요. 근디 표구를 헝게 우리 차에는 트렁크에 들어가지 않아 혹 이번에 그림만 따로 떼어서 가지고 갈 수도 있어요. 액자는 부산 아들한테 오거든 그 때 드릴게요. 뒷좌석 다리 뻗는 공간에 실어야 헌디 중고생 둘이가 탄게 다리를 못 뻗어 장거리라 애들한테 한번 물어보고 결정히서 가지고 가던가 헐게요."
옛 고향 풍경 담은 그림들..."어머니 그리운 마음 보태 그렸다"연동 마을 어머니 덕분에 그동안 진뫼마을 그림 몇 작품을 막내 딸 정종임씨로부터 선물 받았다. '1998 고향의 봄' 작품은 올 봄, 시가집 오는 길에 곡성휴게소에서 만나 받았다. 휴게소 불빛이 어두워 종임씨는 나를 좀 더 환한 곳으로 데리고 가더니 꽁꽁 포장된 그림을 풀며 선보였다. 고향 그림을 선물로 받으니 어린애처럼 마냥 좋아 환하게 웃는 내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종임씨도 덩달아 흐뭇해 했다.
온 열정 다 쏟아부어 힘들게 잉태한 작품 선보이는 순간, 종임씨는 내 웃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것이다. 작품을 넘겨 주는 순간까지도 보고 또 보고 몇 번을 보더니 "애지중지 키운 딸내미 꼭 시집 보내는 기분이 드네요' 하며 건네줬다.
이번 추석 선물로 그린 작품은 30호 크기라 표구를 하니 웬만한 승용차는 짐칸에 들어갈 수가 없다. 9월 7일 새벽, 종임씨는 이번 추석 선물로 내게 고향 마을 그림을 주고 싶어 뒷좌석에 종임씨와 딸이 쪼그리고 앉아 가는 불편을 감수하고 기어이 가지고 왔다. 3시간가량 다리를 못 뻗은 채 뒷좌석에 양반 자세를 취하고 온 딸과 종임씨에게 너무 미안했다.
종임씨는 이번 여름, 25년 지기 친구와 함께 섬진강가 내 고향 진뫼마을에 1박 2일로 놀다 가기도 했다. 종임씨 방문하는 날, 하필이면 집안 벌초하는 날이어서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벌초하는 내내 걱정이 되어 어디 쯤 오는지 계속 통화를 하는데 "내가 진뫼마을을 수도 없이 스케치를 해서 도수 아저씨 집은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다"며 신경 쓰지 말고 벌초하고 내려오란다. 선산을 내려와 마을에서 잠시 볼일을 보고 집에 오니 종임씨 일행은 이미 여장을 풀고 점심상을 차려 먹고 있었다.
종임씨와 친구 분은 다슬기도 잡고 아들과 물놀이도 즐기며 망중한을 즐겼다. 저녁에는 임실 필봉농악보존회에서 상쇠의 삶을 풀어낸 전통창작연희극 '웰컴 투 중벵이골3' 춤추는 상쇠를 보기도 하고, 연동마을 어머니와 7년간 나누며 지냈던 정을 밤새 풀어내기도 했다. 새벽엔 물안개 낀 섬진강의 아름다움 풍광을 가슴에 담으며 산책을 하기도 하고 일상의 잡다한 찌든 때, 씨잘떼기 없이 골몰하고 사는 도시적 상념 물안개에 풀어헤치며 강물에 실어보내기도 했다.
물안개가 산허리에 머물고 있을 무렵, 우린 마을 한수 형님네 집부터 밭으로 변한 윤환이 형네 집까지 마을 골골샅샅 다 훑으며 돌아보기도 했다. 종임씨는 내 글 속에 나오는 최샌 양반네 우물이 어딨는지 궁금해 물었다. 샘에 가서 동이에 물을 퍼담아 이고 가던 아름다운 시절 마을 아낙네들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물 출렁출렁 얼굴에 흘러내려 손으로 싹싹 훔치며 집으로 가던 뒷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기도 했다.
어느 해 설날 아침, 고향 집 가려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설 날 밤새 오빠를 기다리던 날의 풍경'이란 기사를 읽으며 인연이 된 미국에 사는 정동순씨. 이어진 연동마을 어머니와 행복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영영 만날 수 없게 된 뒤, 한동안 끊겼던 인연의 끈은 <오마이뉴스>가 다시 이어줬다. 연동마을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종임씨는 어머니 산소에 가 아무리 큰소리로 '엄마 엄마!'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으니 그날 밤 부산 집 도착 하자마자 <오마이뉴스>에 내가 쓴 어머니 관련 글과 사진을 보며 엉엉 울었단다.
어머니는 평생 내 곁에 머물러 주실 줄 알았는데 어느 날 홀연히 떠나버리더란다. 기사를 읽으며 펑펑 눈물 쏟던 종임씨는 <오마이뉴스>에 실린 어머니 관련 사진들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종임씨는 내게 말했다.
"미국에 사는 넷째 언니를 통해 아저씨가 우리 집에 들락거리며 쓴 줄 알았어요. 어머니 돌아가신 뒤 한참 지나서도 그냥 우리 집에 가끔 들리는 아저씨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집 가는 길에 들리는 친정집. 어머니 안 계신 집에 대문 밀치고 들어갔을 때 허전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더라고요. 그 공허한 마음, 홀로 계신 어머니도 느끼며 사셨을 텐데 가끔씩 도수 아저씨가 찾아가 메워주셔서 감사해요.그런 날이면 보고픈 맘 달래려 <오마이뉴스>에 들어가 도수 아저씨가 쓴 어머니 관련 기사를 모두 읽으며 엉엉 울었지요. 어머니께 못다한 사랑, 내 대신 아저씨가 베풀어주셨구나 생각하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저씨가 고향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에 고향마을 풍경을 그려 선물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지요."98년 봄, 고향 집을 사서 주말마다 찍었던 마을 사진을 종임씨에게 줬더니 그림을 그려 내게 선물해 준 것이다. 그림을 본 마을 사람들은 자식들이 사는 서울부터 제주까지 소식을 쫘악 보냈고 마을 선후배들 요청이 쇄도해 전자우편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진짜 잘 그렸네. 꼭 사진 맹키로 그려붓고만 잉. 어이, 도수! 내가 돈 줄텅게 사진으로 좀 빼다 주소. 우리 집에다 한 장 붙여놀랑게."
여러 장 인화해 마을 분들께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마을 이장은 그림이 정말 좋다며 '1998 진뫼마을의 봄' 그림을 하얀 천에 인화해 종종 고향 찾아온 출향인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야아! 차암 좋네. 내 고향 진짜 아름답다. 산에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렇게 마을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니. 고향 오기 참 잘 힜네"며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다.
지난 7일 새벽, 나는 종임씨 가족과 곡성 연동마을에서 만나 어머니 산소에 갔다. 3시간 동안 차에 쪼그리고 앉아 졸음에 겨워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고2 딸과 잠에 취한 중3 아들은 눈 비비며 차에서 내리더니 바짓가랑이 착착 걷는다. 추석 명절이면 으레 그랬다는 듯 아무 군소리 없이 부모님을 따라 이슬 탈탈 털며 산소를 향해 걸었다.
산소 가는 길. 종임씨는 마른 나뭇잎 바람결에 이리저리 휘날리며 떨어지는 힘없는 목소리로, 눈물 그렁그럼 맺혀 곧 엉엉 울어버릴 거 같은 눈망울로 내게 말했다.
"세상에, 엄마 가붕게 대문 열자마자 풀들이 내 키를 훨씬 넘게 자라있더라고요. 그라니도 엄마 안 계셔 눈물이 핑 도는데 풀까지 내 어깨를 건들더라고요.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 해라'는 말씀, 살아계실 땐 그냥 흘러가는 바람 소리처럼 들렸는데... 어머니 떠난 친정집 방문은 이제 늘 가슴 후벼 파는 길이 되어불더라고요."연동 어머니께 술 한 잔 올린 뒤 함께 절을 하고 마을을 빠져 나오는데 집이 어떤지 궁금해 발길 돌렸다. 대문 들어서자마자 풀들이 내 어깨 위로 나풀거린다. 마당을 가로질러 나온 호박덩굴은 주인을 기다리는 듯 호박 두 개 나란히 열려 대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 가로막고 있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늘 '꼬끼오' 울어대던 토종닭 키우던 헛간은 온데간데 없이 헐려 풀들이 점령했다. 어머니 떠난 집은 쓸쓸하기만 하다. 나도 그런데 자식들 마음은 오죽하랴.
임실 진뫼마을 고향집로 돌아온 나는 마을회관 앞 모정에 '추석맞이 진뫼마을 풍경 특별전시회'를 준비했다. 내가 찍은 '진뫼마을 가을 풍경' 사진도 함께 전시해 고향 찾은 출향인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기쁨을 나눠 드리고자 했다.
종임씨가 그동안 그려준 마을 사진을 받고 보니 소원 하나가 생겼다. 내가 태어나 기억하고 있는 1960~80년대의 옥수수 알맹이처럼 촘촘히 붙어 왁자지껄하게 살던 아름답던 고향마을 그림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종임씨는 몇 개월 날밤 새우며 혼을 불어 넣은 작업 끝에 가지고 왔으니 마을 사람들과 함께 보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모정에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마침 서울에서 막 내려온 깨복쟁이 친구 현호가 못질도 해주고 그림도 걸어주며 도와준다.
"마을 정 중앙에 놓인 시멘트 다리를 없애고 옛날에 있던 징검다리를 그대로 살려 놔붕게 마을이 확 살아나분다. 저 우것테 태봉이 형네 집부터 아랫거테 윤환이 외삼촌네 집까지 옛날 우리 마을에 있던 집들 하나하나 다 살려 논게 마을이 꽉 차서 넘 좋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마을 모습이 이렇게 생생허게 그림으로 되살려논게 참 좋다. 뭣보다 마을 옛 모습 그대로 후대에게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어 좋다."몇 점 안 되는 그림이지만 추석 연휴 마을 모정에 내걸린 '고향마을 전시회'는 사라진 집들과 징검다리를 완벽하게 되살려 어느 전시회 못지않게 뜻깊은 전시회였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추석을 맞이해 객지에서 오거나, 집은 없지만 산소에 오거나, 외갓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넘치는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아, 보여만 주지 말고 사진으로 찍어서 좀 내게도 보내줘. 거실에 걸어두고 고향 그리울 때 두고두고 볼랑게. 그림 그려준 분이 여그도 왔다갔다는데 잘 좀 해주지 그랬어."마을 선후배들은 "집에 가면 바로 뺄텅게 꼭 보내줘, 응. 우리 아들 메일주소 불러줄텅게 잊지 말고 꼭 보내줘야 혀!" 신신당부하고 떠났다.
안다, 다 안다. 고향 그리워, 부모님 그리워, 뛰놀던 강변 그리워, 산 그리워, 정자나무 그리워 객지에서 눈물 훔치며 살고 있는 출향인들의 마음을.
고향 떠나 살고 있는 선후배들, 마을 사진을 보며 깨복쟁이 친구들과 나뒹굴며 뛰놀던 아름답던 그 시절 회상하며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며 지내리라. 고향마을 아련히 떠오를 때면 그림 보며 향수 달래고 있겠지. 저마다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집들과 징검다리 다시 살아나 가슴에 오롯이 품으며 지내겠지.
덧붙이는 글 | 김도수 기자는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v2/)에서 고향 이야기를 모은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란 산문집을 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