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이 했던 말이다. 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박철현 신부)는 11일 저녁 천주교 마산교구 본당 강당에서 '우리나라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는 미사'를 열면서 이 같은 문구가 적힌 펼침막을 걸어 놓았다.
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위는 지난 4일에 이어 이날 두 번째 미사를 올렸다. 지난 2일 천주교 주교회의는 "정치권의 공방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에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고 난 뒤,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는 미사'를 매주 한 차례 올리기로 했다.
두 번째 열린 미사에는 신부와 수녀를 비롯해 평신도들도 참석했다. 이날 미사는 박철현 신부가 주례·강론을 맡았다. 박 신부는 "우리의 작은 기도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에 회개의 은총을 내려주길 바란다"며 기도했다.
박철현 신부는 강론을 통해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 신부는 "사람한테는 정치공동체(국가)가 필요했고, 그것을 형성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회를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며 "교회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정치공동체의 존재 이유를 '인간 존엄함 증진, 인권 증진을 통한 공동선 실현'에 있다고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신부는 "'죄의 구조'는 '폐쇄적인 지배집단'에 의해 강화된다"며 "그 대가는 사회의 황폐화이며, 대다수 시민의 고통이다. 그래서 교회는 이 '폐쇄적인 지배집단' 형성을 도와줘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죄의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앞장 선 것이 이 땅에서는 '정치'였다. 일제에 나라를 넘긴 것도, 한국전쟁과 분단을 고착화시킨 것도, 군부독재도, 또 보통의 시민은 무엇인지도 모를 IMF니 FTA도 그렇다. 공통점은 사회의 심각한 황폐화이며, 절대 다수 시민의 고통이었으며, 사회적 약자의 양산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백성이 고통을 겪었고, 한국전쟁으로 고통을 겪었고, 독재로 고통을 겪었고, IMF와 FTA로 고통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무수한 시민이 변두리로 밀려나 잉여의 시민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하루하루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사투를 벌인다."박 신부는 '책임을 일반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일제 강점은 우리 민족의 시대의 흐름을 거슬렀기 때문이었고, 한국전쟁과 분단은 민족의 분열 때문이었고, 군부독재는 시민사회의 무질서와 혼란 때문이었고, IMF는 시민들이 주제넘게 흥청망청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책'하며,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며, 심지어는 '내 탓'이라며, 겪는 고통과 시련을 마치 짊어져야 할 숙명인 것처럼, 사회적 유전인자처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다.그런데 우리가 그러는 사이, 그 폐쇄된 지배집단은 더 정교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마음껏 '경제적 이익이라는 탐욕'과 '권력에의 욕망'을 채웠다. 흔히 국가의 구성요소로 영토와 주권과 국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폐쇄된 지배집단'은 끊임없이, 무슨 수를 다해서라도 영토를 사유화했고, 지금도 사유화 하고 있으며, 주권을 내팽개쳤으며, 지금도 내팽개치고 있으며, 절대다수 시민을 경제적 이익의 탐욕과 지배권력의 욕망의 제물로 삼았으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면서 박철현 신부는 "세월호 침몰과 억울한 죽음, 실종,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습은 바로 사회의 황폐화, 국가의 실패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또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 신부는 "현실에서 교회의 교회다움,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다움의 기준은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에 투신하는' 그런 아름답고 숭고한 영혼을 가진 이를 찾아, 그들과 공감하고, 동행하는 것, 그것만이 교회다움과 그리스도다움의 유일한 기준"이라 강조했다.
박 신부는 강론 마지막에 '기억'과 '동행'을 당부했다.
"신앙인은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바라보셨고, 만나셨고, 일으켜 세우셨고, 동생하셨던 그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 예수님과 공감하며 동행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걷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며 교회다."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위는 오는 18일 저녁에도 같은 미사를 올리고, 25일 저녁에는 장소를 옮겨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