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와 자법인 허용은 영리 병원 쌍두마차정부가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유망 서비스산업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후, 인천이 영리 병원과 내국인 카지노 도입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정부의 '유망 서비스산업 활성화 대책'은 보건·의료, 관광·콘텐츠, 교육, 금융, 물류, 소프트웨어 등 분야별 규제완화 정책을 종합한 것으로, 특히 보건·의료분야는 카지노 복합리조트 육성과 함께 파장이 일고 있다.
정부는 우선 중국계 의료법인 (주)시에스시(CSC)가 제주도에 설립할 국내 1호 투자개방형 병원을 이르면 다음 달에 허가하기로 했다. 2012년 10월 병원 설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지만, 아직까지 유치 사례가 없다며 이번 허가를 계기로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하지만 보건·의료단체는 투자개방형 병원이 이름만 바꾼 영리 병원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에 설립될 투자개방형 병원의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현재 경제자유구역에 외자 유치를 통한 투자개방형 병원을 설립하려면 외국인 의사를 10% 이상 고용하고, 병원장이나 진료 의사결정기구의 50% 이상을 외국인으로 채워야한다. 이러한 규정이 외자 유치의 걸림돌이 된다며 없애기로 한 것이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 6월 의료법인이 부대사업 목적의 자(子)법인을 설립해 운영할 수 있게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뒤,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과 규제완화는 영리 병원 도입의 쌍두마차나 다름없다.
현재 의료법인은 휴게음식점, 일반음식점업, 제과점업, 위탁급식업, 편의점, 슈퍼마켓, 자동판매기업, 산후조리업, 이·미용업, 의료기기 임대·판매업(의료법인 직영 제외), 안경 조제·판매업, 은행업, 숙박업, 서점 등을 할 수 있다.
입법예고한 의료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 의료법인은 자법인을 설립해 숙박업, 여행업, 국제회의업, 외국인 환자 유치, 종합체육시설업, 수영장업, 체력단련장업, 장애인보장구 등 맞춤 제조·개조·수리업, 건물 임대(네거티브 방식), 의원급 의료기관(의료관광호텔 부대시설), 건강기능식품 판매업, 복지부장관이 공고하는 사업을 제외한 건물 임대업을 할 수 있다.
"자법인 허용은 수익사업 허용한 것"정부의 의료 투자 활성화 대책의 핵심은 비영리 병원이 영리 목적의 자법인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즉, 비영리 병원이 자법인에 투자하고, 자법인은 영리행위로 얻은 이익을 다시 비영리 병원에 투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자법인이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주려면 돈을 벌어야하고, 그러기 위해 자법인은 의료기기 판매, 건강기능식품 판매, 임대 사업, 의료호텔 운영 등을 자신한테 투자한 모(母)병원의 비호아래 운영하게 된다"며 "자법인 또한 수익을 창출할 대상은 환자다.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권장하는 건강기능식품·의료기기·숙박을 이용하게 되고, 심지어 과잉진료 피해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성실공익법인이 출연자 등과 특수 관계에 있지 않은 법인의 주식 10% 이상을 비과세로 취득하고자 할 경우 복지부 장관 허가가 필요하고, 의료법인이 자법인으로부터 얻은 수익을 고유 목적사업에 재투자하게 의무가 부과돼있으며, 출자비율 제한과 명확한 회계기준을 적용해 자법인 설립 남용을 방지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는 또한 "의료법인이 이러한 의무를 위반할 시 의료법령이나 관련 세법에 의한 제재를 받게 된다. 자법인 설립 허용의 목적은 의료법인의 영리 추구가 아닌 의료기관 운영의 건전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유숙경 보건의료산업노조 인천부천지역본부장은 "의료법인이 자법인으로부터 얻은 수익에 대해서는 정부가 일정한 규제를 하겠다는 것이지만, 핵심은 자법인이다. 자법인은 비영리 의료법인과 달리 영리 법인이라 자신들의 수익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규제가 없다"고 말했다.
유 본부장은 "즉, 자법인이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노력할수록 환자는 진료 목적 외에 부대비용 지출을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비영리 병원은 병원에서 얻은 수익을 병원에 재투자하는 게 아니라 수익을 내고 이를 자유롭게 처분하는 자법인에 투자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의료산업 규제완화를 발표하자, S의료법인은 인천시에 총1000억 원을 투자해 해외 환자 유치 목적의 병원(심장·미용 등)을 건립하기로 했다. S의료법인은 병원 건물 내에 자법인 형태로 메디텔(=의료숙박시설)을 설립하고자 현재 외부 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S의료법인은 정부가 자법인이 운영하는 메디텔 내에 의원급 의료기관을 허용한 만큼, 외국인 환자 유치효과가 큰 성형외과도 임대 형태로 함께 유치할 계획이다.
현행법상 메디텔업 등록을 위해서는 외국인 환자 유치실적이 필요하다. 신설 자법인의 경우 유치실적이 없어 메디텔업 등록이 불가능하다. 이에 정부는 자법인을 통한 메디텔 등록 시 모법인의 유치실적을 자법인 실적으로 인정하기로 조건을 완화했다(관광진흥법 시행령 개정, 2014.8.).
"한진그룹도 투자개방형 원해"vs"영리와 비영리 둘 다 검토 중"정부가 경제자유구역에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 시 외국인 의사를 10% 이상 고용하고, 병원장이나 진료 의사결정기구의 50% 이상을 외국인으로 채워야하는 규정을 없애면서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영리 병원 논란이 다시 점화됐다.
지난해 10월 16일, 송영길 인천시장과 조양호 한진 회장은 송도에 '한진 메디컬 콤플렉스(Hanjin Medical Complex)'를 건립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한진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약 5000억 원을 투입해 송도지구 갯벌타워 건너편 7만 7550㎡(=약 2만 3500평)에 병원과 연구교육단지, 복합지원단지 등을 단계별로 건설할 예정이다.
약 2700억 원을 투자해 학교용지 3만 3000㎡(=약 1만 평)에 1300병상 규모의 병원을 짓고, 약 1100억 원을 들여 연구개발용지 2만 3100㎡(=약 7000평)에 연구기반시설을 짓고, 약 1200억 원을 투자해 복합지원단지 2만 1450㎡(=약6500평)에 메디텔과 노인요양원, 메디컬 비즈니스 시설 등을 건립하기로 했다.
인천시와 한진이 이 양해각서를 체결할 때 한진이 송도에 짓기로 한 병원은 비영리 국제병원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보건·의료분야 규제를 완화하고, 자법인 설립을 허용하기로 하면서, 변화가 감지됐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영리냐 비영리냐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안 하고 있지만, 인천시는 영리 병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는 "민선5기 때는 비영리 병원으로 추진했으나, 정부 발표 후 상황이 바뀌었다. 정부가 제시한 투자개방형 병원에 대해서 한진도 긍정적이다. 글로벌 항공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대한항공도 환자 유치에 용이하다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현재 정해진 것은 없다. 시민의 뜻, 시민 이익을 토대로 방향(=영리냐 비영리냐)을 결정할 것이다. 비영리 병원으로 가닥이 잡히면 한진 병원 부지는 양해각서에 명시된 송도1교 왼쪽 갯벌타워 건너편이 될 것이고, 비영리가 되면 송도3교 오른쪽에 있는 '송도국제병원' 부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은 인하대병원 내에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송도에 국제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진이 송도에 설립할 병원은 인하대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아니라 별도의 의료법인 시설이라, 한진 또한 정부 정책 변화에 따라 영리 병원 도입에 따른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는 중이다.
인하대병원 관계자는 "전에는 비영리 병원을 염두에 두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지금은 영리 병원 도입에 따른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인천시의 입장이 공식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만큼 두 가지 시나리오를 모두 검토 중인데, 비영리 병원은 지난 시기 어느 정도 검토가 끝난 터라 보완하면 되고, 영리 병원은 이제 검토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편, 인하대 의과대학은 2500억 원을 들여 인하대병원 옆 한진택배 부지 1만 8512㎡에 600병상 규모의 신관을 2016년 초에 개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송도 국제병원을 설립하기로 하면서 이 계획은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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