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점을 둘러보면, 한 사람에 대한 책이 앞다투어 출간되고 있다. 한 나라의 원수도, 사상가도, 유명한 CEO도 아니다. 바로 교황. 작년 즉위한 교황 프란치스코(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이다.
그는 즉위부터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다.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의 교황, 1202년만의 비유럽권 출신의 교황이다. 전 세계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 1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2013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교황의 이런 열풍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8월 방한 이후로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 간다. 그의 말과 행동은 SNS에 순식간에 퍼졌고, 많은 한국인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주고 있다. 그 때문에 출판계는 때아닌 '교황 특수'를 누리고 있다. 그 속에서 한 책이 흥미를 끌고 있다. 바로 <프란치스코와 프란치스코>.
저자는 김은식. <야구의 추억>,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등의 책을 쓴 스포츠 에세이 작가이다. 그가 왜 이런 교황 관련 책을 썼을까? 하지만, 작가 소개를 보니 그는 스포츠 외에도 청소년, 교양, 전기 등의 분야에서 30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공병우, 한글을 사랑한 괴짜 의사> 등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섰다.
이 책은 교황 관련된 여타 책들과 약간 다른 위치에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두 프란치스코의 삶을 보여 준다. 하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다른 하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 프란치스코는 베르고글리오가 교황이 된 뒤에 선택한 새로운 이름이다.
교황은 왜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썼을까? 흥미로운 사실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썼던 교황이 전에 한 번도 없었다는 것. 지금까지 266명의 교황 중에 '요한'은 23명, '그레고리우스'나 '베네딕토'는 16명(48쪽)인데 말이다. 교황 이름 선택부터 특이했던 프란치스코, 또 교황이 따르고자 했던 인물 성 프란치스코. 그동안 다양한 인물을 맛깔나게 독자에게 들려 주었던 작가의 눈에 비친 두 프란치스코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가난한 사람을 도왔던 성 프란치스코이탈리아의 아시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그는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싶었던 야망 있는 젊은이였다. 하느님의 성지를 되찾겠다는 부푼 꿈과 개인의 야망을 갖고, 그는 십자군에 합류한다. 그러나 심한 열병에 걸려 움직일 수 없게 되고, 그 상황에서 "네가 지금까지 사랑하고 즐기던 것들을 모두 버리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하느님의 뜻을 찾다가, 나병 환자들을 만난다. 그들의 썩어 문드러진 손과 뺨에 입을 맞추는 순간, 전에 알지 못했던 사랑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 진정 가난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그는 돌아다니며 가난한 사람을 돕고, 무너져버린 성당을 보수한다. 점차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도 생기게 되고, 같이 순례의 삶을 산다.
"그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주지 않는 일이야말로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96쪽)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그의 삶을 보니, 교황의 검소한 생활이 이해가 된다. 지하철을 즐겨 타고, 작은 차를 애용하며,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그의 모습이 언뜻 성 프란치스코를 떠오르게 한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떤 인물일까?
겸손하고 소탈한 교황 프란치스코교황 역시 젊은 시절 큰 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른 적이 있다. 21살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 때문에 쓰러졌던 것이다. 뒤늦게 심한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고 오른쪽 폐의 대부분을 잘라 내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136쪽) 실망하고 낙심한 그 때, 한 수녀의 "너는 지금 예수님의 흉내를 내고 있는 거란다"라는 한마디가 그를 사제의 길로 이끌게 한다. 질병을 통해 교황은 큰 깨달음을 얻는다.
"고통 그 자체가 미덕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미덕이 될 수도 있습니다." (137쪽)그는 겸손하고 소탈하게 신부, 주교, 추기경의 삶을 살아간다. 교황이 되어서도 그의 그런 모습은 바뀌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세상의 아파하고 있는 약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낸다. 전쟁과 내전의 와중에서 신음하는 아프리카의 난민과 성적 향락의 도구로 전락해 팔려 가는 소녀들, 시리아 민주화로 목숨을 잃은 2만여 명의 민간인.... 그들을 향해 아파하며 교황은 분노한다. 결국 그들을 방관하고 있는 사회를 향해 교황은 이례적으로 교황청 홈페이지에 '권고문'을 게재한다. 무려 200페이지가 넘는 내용.
"오늘날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도 우리는 분명히 거부해야 합니다. 이런 경제는 사람을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에는 주가 지수가 2포인트 떨어졌다는 소식은 나오지만 늙고 가난한 사람이 노숙을 하다가 죽었다는 소식은 나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176쪽)인간 존중을 펼친 두 프란치스코1999년, 미국의 <타임>은 지난 천년 사이에 살았던 가장 중요한 인물 10명을 꼽았다. 갈릴레이, 모차르트, 셰익스피어 등 각 분야의 대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인물, 바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였다. 종교가 인간 위에 군림하던 시대에 태어나 이웃과 함께하며 돕고 나누고 위로하는 시대를 연 선각자(190쪽)에게 주는 찬사였던 것이다.
2013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공교롭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약한 자보다는 강한 자의 편에 서서 관성에 휩쓸려 가는 종교와 사회 지도자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인정받은 것이었다(190쪽). 작가는 둘을 비교하며 이렇게 평가한다.
"그들이 시대와 종교를 초월해 우리 사회가 마땅히 공유하고 또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기본적이면서도 궁극적인 가치인 '인간에 대한 존중'을 가장 구체적이고도 분명하게 제시하고 구현한 이들." (191쪽)작가는 단순히 이 두 사람을 비교, 서술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간접적으로 묻고 있다. 세월호 사건을 언급한 프롤로그를 읽으며 아직도 아파하고 있고, 불확실함 속에서 울고 있는 그들을 떠올리게 된다.
성 프란치스코와 프란치스코 교황. 그들은 시대는 다르지만, 각 시대 속에서, 상황 속에서 아픈 자들과 우는 자들과 함께 아파하고, 울고 있다. 종교가 있든, 없든 한 번 읽어 봄직한 책이다. 200페이지의 짧은 내용이지만, 곱씹을 내용은 많다.
"예수 닮는 길을 생각하고, 또 점점 더 악하고 잔인해지는 세상을 이겨나갈 길을 고민하며, 온갖 사랑이라는 말에 결부된 진실과 허위와 빛과 어둠 사이에서 방황하는 많은 이들에게 두 프란치스코의 삶은 좋은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8쪽)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blog.naver.com/clearoad)에 실렸고, 거인의 서재 블로그(http://blog.naver.com/gshoulder_kr)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