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7월 17일 오후 8시 31분, 뉴욕 JFK 국제공항을 이륙해서 파리로 향하던 TWA800 보잉747 비행기가 대서양 상공에서 폭발했다.
이륙한 지 12분 만이었고 해안에서 13킬로미터 떨어진 고도 4000미터 상공에서 일어난 폭발이었다. 승무원을 포함해서 탑승객 230명 전원이 사망했다. 파리에 대한 이들의 상상은 이륙 후 12분 만에 끝나버린 셈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항공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이 참사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노후된 기체의 결함, 적대 세력의 테러, 군사훈련 도중의 사고 등.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고의 원인은 기체결함이었다. 합선으로 인해서 항공기 중앙 연료 탱크 속의 연료 수증기가 폭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 있었던 다수의 목격자들 증언에 의하면, 폭발 직전에 하얀 빛줄기가 수평선에서 항공기를 향해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고 한다. 마치 지대공 미사일처럼 보이는 물체가.
항공사고의 진실을 밝히려는 주인공이런 대형 사고에는 항상 모종의 음모론 같은 것들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 음모의 핵심은 정부가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점이다. 목격자들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 항공기는 테러리스트들의 미사일 또는 당시 주변에서 훈련 중이던 미군의 미사일에 의해서 격추된 것이다.
넬슨 드밀은 자신의 2004년 작품 <나이트 폴>에서 바로 이 사고를 전면으로 다루고 있다. 작가는 우리나라에도 여러 편 출간된 연방 대테러 특수팀 요원 '존 코리 시리즈'로 유명하다. <나이트 폴> 역시 존 코리 시리즈의 한편이다.
작품의 배경은 2001년, 사고가 일어난 지 무려 5년이 지난 뒤이다. 해마다 7월 17일이 되면 사고가 일어난 해변에서 추도식이 열린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지가 죽은 이유가, 단순한 사고인지 아니면 의도된 학살인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거기에 대해서 '수사종료'라는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있다.
주인공 존 코리 역시 사고 5주년 추도식에 아내와 함께 참석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한 FBI 요원을 만나게 된다. 그 요원은 존 코리가 왜 이 추도식에 참석했는지 캐물으며 앞으로 절대 이 사고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말라고 말한다. 깊이 관심을 가졌다가는 다칠 수 있다면서.
반골기질을 타고난 존 코리는 그 요원의 협박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5년 전의 사고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한다. 목격자와 관련 전문가들을 차례로 만나보지만, 이들의 얘기는 서로 상반되는 면이 있다. 이 항공사고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5년 후에 조금씩 밝혀지는 진실사고이건 범죄이건, 어떤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응하는 방법을 보면 그 사회를 평가할 수 있다. 200명이 넘는 사람이 한꺼번에 사망한 대형사고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는 그런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 예산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벌 없이 눈감아지는 강력범죄가 없고, 불가피했다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대형사고도 없는 곳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TWA800 항공기 사건은 그렇지가 않았다.
참사가 일어나고 수년이 지난 후에도 기체고장이 아니라는 의심을 잠재울 수 있는 조치가 거의 없었다. 진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작가 넬슨 드밀은 사고의 진상을 추적하면서 동시에 해변에서 열리는 추도식의 모습도 함께 묘사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해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또 다른 사람은 가족이 죽어간 바다 속으로 한참을 걸어가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져온 꽃이나 기념품을 파도에 띄워 보내고 서로 끌어안고 흐느낀다. 비극과 참사의 역사도 반복되기 마련이다.
덧붙이는 글 | <나이트 폴> 넬슨 드밀 지음 / 정경호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