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담뱃세를 올렸잖아요? 같은 논리로 당연히 주세 인상도 고려될 수밖에 없죠."(안창남 강남대 교수)정부가 담뱃세, 주민세, 자동차세 등을 차례로 전격 인상하면서 세수 확보를 위한 다음 목표가 어디인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조세 전문가들은 15일 "다음에도 주류세, 부가가치세 등 상대적으로 서민 부담이 큰 세금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들은 "정부가 모자란 세수를 확충하려는 의도라면 가장 먼저 MB정부에서 했던 부자감세부터 원상태로 되돌려야 한다"면서 "그 다음에 다른 세금을 올리는 게 순서"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실행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올해 예산 최소 8조 5000억 원 부족... 담뱃세로 메우나정부는 올해 국세 세입예산으로 216조 5000억 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상반기 걷힌 세금은 98조 4000억 원. 세수진도율은 45.5%로 10조 원 가량의 세금이 부족했던 지난해보다도 2.7%p 더 낮은 수준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세수 부족분만 해도 최소 8조 5000원이 넘는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1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올해 세수는 8조 5000억 원에서 9조 원 정도 덜 걷힐 것"이라고 보고했다.
돈 들어올 구멍은 마땅치 않은데 쓸 곳은 많다.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약 20조 원(5.7%) 늘려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중기재정운용계획(2013~2017년)에서 제시했던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3.5%)을 상당히 초과하는 수준이다. 최 장관은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을 제시했다.
같은 날 발표된 정부의 담뱃세 2000원 인상안에 '우회증세 꼼수'라는 딱지가 붙은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 건강 증진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세금 모자라니 담뱃세를 올렸다'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는다. 정부는 다음날 주민세·자동차세 등 지방세 인상안도 내놨다.
이들 세금 인상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내년에 확충되는 세수는 약 4조 2000억 원으로 예상된다. 담뱃세 인상으로 2조 8000억 원의 세금이,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으로 지방세가 1조 4000억 원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세수 부족분의 절반도 채우기 어렵다.
조세 전문가들 "법인세 인상 등으로 MB 때 '부자감세' 되돌려야"
조세 전문가들은 "MB정부 때 대규모 부자감세를 한 데다 경기가 침체되어 있으니 세금이 적게 걷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증세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세수를 확충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부자증세 철회가 꼽혔다. 2008년 감면해준 법인세와 소득세를 원상태로 되돌리고 고소득층에게 가는 각종 비과세 감면 혜택 등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의 조세 정책이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담뱃세는 소비세기 때문에 소득이 적은 서민들에게 불리한 세금"이라면서 "결국 부자감세 때문에 세수가 부족한 것을 서민증세를 통해서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 정부가 세수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손댈 수 있는 항목으로 법인세를 추천했다. 현재 22% 수준인 법인세율을 기업이 최고 30%까지 부담하도록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도 법인세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법인세 인하가 세계적인 추세라고 하는데 미국과 유럽의 법인세는 30%대"라고 일축했다. 안 교수는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 경쟁률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럼 미국과 유럽의 기업이 한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고전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지금의 법인세 수준은 기업 경쟁력과 큰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지난 2012년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받은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법인세 과세표준 1000억 원 이상 구간을 신설하고 해당 구간의 세율을 30%로 올릴 경우 5년간 증가하는 세금 수입은 약 50조 7000억 원에 달한다.
박 의원은 이같은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자신들의 전통적 지지세력을 등지고 야당과 함께 법인세를 인상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그렇게(법인세 인상) 할 거면 이렇게 복잡하게 (담뱃세,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런 식 '우회증세', 내수 활성화에도 부정적"안 교수는 "현 정부의 고민은 무슨 일은 해야겠는데 돈은 없고 '증세는 안 하겠다'고 미리 국민들에게 얘기해놨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앞으로도 국민 합의 없이 담뱃세 인상과 비슷한 추가 '우회증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술에 붙는 주세도 담배와 같은 맥락"이라면서 "한국은 유럽 등에 비해 술 가격이 낮기 때문에 당연히 (세금인상) 검토 대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앞서 지난 6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담배처럼 술에도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성인 교수는 "국민 동의가 없는 이런 식의 우회증세는 최근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내수활성화에도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담뱃세처럼 누구에게나 같은 세금이 부과되는 항목을 건드릴 게 아니라 소득세·법인세처럼 소득재분배 효과가 있는 세금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계소득성향이 커서 번 돈을 바로 바로 소비하는 서민·저소득층의 소득을 상대적으로 늘려주는 조세정책을 써야 내수가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부자가 확실히 세금 더 내도록 과세 형평성을 확보한 다음에 담뱃세 같은 간접세를 올려야 국민들도 정서적으로 납득이 가능하다"면서 "그 다음에 부가가치세 올리면 복지예산에 필요한 세수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