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은 올해에 비해 20조 원 가량 지출이 늘어난다. 정부는 국가 지출을 확대해 경기부양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예년에 비해 흐름상 늘어나는 지출은 많지 않아 실효성 논란이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 증가세는 노무현 정부는 물론 이명박 정부에 비해서도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는 18일 2015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총 수입 382조7000억 원에, 총지출이 376조 원. 지난 2014년 예산안에 비해 세입은 3.6% , 세출은 5.7% 늘어난 적자 재정편성이다.
이에 따라 내년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33조6000억 원(GDP 대비 -2.1%), 국가채무는 570조 1000억 원(GDP 대비 35.7%)으로 불어나게 됐다. 재정건전성 우려가 나오지만 정부에서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증세 없는 재정정책' 때문에 기형 예산안 나와"정부는 이번 예산안의 핵심으로 확장적 재정 편성을 강조했다. 세입증가율은 3.6%인데 지출증가율을 5.7%로 높게 잡았다는 것이다. 경기가 좋지 않아 세금이 잘 안 걷히는 상황 속에서도 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지출하는 돈을 늘렸다는 설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예산안과 관련해 "경기회복 속도가 더디고 소비·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황"이라면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위기가 발생할 수 있어 재정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게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몇 해간 예산안을 보면 내년도 지출 수준은 확장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건호 내가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5.7% 증가율은 역대 예산 총지출 증가율에 비해 높은 게 아니다"라며 "최근 3년간 총지출 평균 증가율은 5%대이고 MB 정부와 비교해서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오 위원장은 "이번 예산안의 핵심은 세입이 정체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도입된 복지정책 등이 정책에 반영되면서 세출은 증가했는데 이렇다 할 세금 수입은 없다보니 마치 예산안을 확장 운용하는 것 같은 착시효과가 나타난 것이라는 얘기다.
오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천명했던 '증세 없는 재정정책' 때문에 예산안이 기형적으로 일그러진 셈"이라면서 "이걸 가지고 확장적이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정책 실현을 위해 증세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그것을 배제한 예산안을 내놓고서 '확장적 재정편성'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생색내고 부담은 뒷 세대가" 예산안을 적자 운영으로 확정하면서 내년도 박근혜 정부의 관리재정수지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1%까지 떨어졌다. 노무현 정부 이래 최악의 성적이다.
재정수지란 세입과 세출의 차이를 의미한다. 정부 세입 중에는 연금처럼 지금 걷어서 먼 미래에 지출하는 성격의 돈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단순 재정수지를 봐서는 재정건전성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관리재정수지는 이런 목적으로 사회보장성 기금 흑자와 공적자금상환 소요액을 제외한 값을 말한다.
2015년 예산안을 포함해 역대 정부의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율을 살펴보면 노무현 정부는 -0.26%, 이명박 정부는 -1.76%인데 반해 박근혜 정부의 3년 평균치는 -1.93%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특수상황을 겪었던 2009년을 제외하면 이명박 정부의 관리재정수지 비율은 -1.18%로 급감한다.
국가채무 증가분 역시 박근혜 정부가 압도적이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각각 연평균 22조5000억 원, 30조2000억 원씩 국가채무가 늘었다"며 "반면 박근혜 정부는 지난 3년간 연평균 41조6000억 원씩 국가채무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이런 통계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 대부분이 재정적자와 국가 부채로 실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생색은 박 대통령이 내고 부담은 뒷 세대가 지는 촌극이 전개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재정전문가들은 지금의 재정적자는 상당히 경계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GDP관련 통계 기준을 바꾸면서 무형고정자산이 대거 포함되는 바람에 이전에 비해 8% 가량 GDP가 늘어났다"면서 "분모가 커졌음에도 재정적자가 GDP 대비 -2.1%로 늘었다는 것은 상당한 속도"라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한국은 앞으로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복지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라 재정건전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20년 내에 국가가 지속가능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면서 "내년처럼 예상보다 적자폭이 커지면 그 시기가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정부가 그 부분에 대해 책임지고 적자가 심화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증세 노력을 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정적자 폭 더 늘어날 것"내년도 재정적자가 정부가 발표한 것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지난 2012년부터 2년 연속 예산안에서 설정한 세입 규모를 실제 나라 살림에서는 달성하지 못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역시 최소 8조5000억 원의 세수가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내년에도 수입으로 잡은 382조7000억 원을 다 걷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올해 예산안을 기준으로 잡고 내년에는 3.6% 수입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올해 8조5000억 원 세금이 덜 걷힌다고 가정하면 실제로는 6.1% 정도 세수가 늘어야 예산안 내용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정부가 예산안을 작성할 때 내년도 경상성장률을 6.1%로 잡았는데 그정도 성장률로 세수가 6.1% 늘어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제성장에 따른 세수 증가비율을 국세탄성치라고 하는데 박근혜 정부가 이 비율을 1정도로 실제보다 부풀려 잡았다는 것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국세탄성치는 0.9 정도였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 7월 발표한 2013 회겨연도 총수입 결산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의 국세탄성치는 0.7 수준이다.
전 교수는 "올해 덜 걷히는 세금이 8조5000억 원보다 많을수록 내년에 걷히는 세금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배당소득에 대해 분리과세를 해주는 등 사실상 감세 정책을 이어가는 게 사실 잘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서 지난 8월 발표한 세법개정안에서 고배당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배당소득 증대세제를 예고하며 '부자 감세' 논란을 빚었다. 배당금에 대한 세금을 15.4%에서 9.9%로 내려주고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는 27.5%의 분리과세를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었다.
전 교수는 "고소득층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분리과세 제도를 대폭 정리하고 소득세, 법인세 등 본질적인 증세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면서 "증세가 없다면 내년 재정적자폭은 정부가 예산안에서 밝힌 것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