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희끗한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붓대를 잡고 씨름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투박한 손과 얼굴에 골골이 파인 주름은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긴 거룩함마저 깃들어 있다.
낙향하고 나서 딱히 전념하는 곳이 없어서 슬슬 서울이 그리워지던 차에 남편이 나에게 붓글씨를 써보라고 은근히 권했다. 벌써부터 마음에는 있었지만,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살살 꾀를 부리다가 읍내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붓글씨 교실에 등록했다.
성격 급한 나와 안 맞아 그만둘까 하다가...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성격 급한 나와는 안 맞아서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심각하리만치 열심인 어르신들을 보니 '나도 하면 될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디 가는 데까지 가 보자'는 오기도 생겼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 두 시간짜리 수업이 짧게 느껴지면서 재미가 있다. 강태공은 낚시터에서 세월을 낚았다지만, 나는 그만은 못해도 그 시간만큼은 서울에 두고 온 자식 생각도, 즐겨 찾던 인사동 거리도, 머리 아픈 세상사 근심도 까맣게 잊는다. 급한 성격을 다스리는 데에도 아주 좋을 것 같다.
처음에는 연세 많으신 분들 사이에 끼는 게 좀 어색하고 서먹했지만, 이젠 교실에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먼저 인사한다. 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에는 책상 사이를 슬슬 돌아다니며 지가 뭘 안다고 다른 사람 글씨 쓰는 것을 구경도하고 간섭도 한다.
"어머, 이제 글씨 들어가셨네요. 잘 쓰시네요.""에이, 이게 뭐 쓰는 건가요. 그리는 거지."
선생님도 같이 들여다보시며 처음에는 그리는 거라며 잘 만 그리라고 하신다. 다만 덧칠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붓대를 잡고 달팽이 모양의 동그라미를 계속 그리는 데 그게 만만치가 않다. 동그라미는 글씨 들어가기 전에 거쳐야 하는 마지막 과정이다. 몇 장을 그려 놓고 봐도 별로 신통치가 않아서 선생님 몰래 살짝 덧칠해서 예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덧 칠 하셨나요?""아니, 어떻게 아셨어요?""저는 알지요."선생님 말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같은 벼루의 먹물인데 어떠랴 싶어서 덧칠했지만, 그 자리는 나타난다. 빨리 글씨를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덧칠했다고 합리화해 보지만 참 부끄러웠다.
집에 돌아와서 여태까지 그린 것들을 펴 놓고 찬찬히 들여다봤다. 한 번에 그린 것은 못 생겼지만 은은한 향을 담은 모과 같다면, 덧칠한 것은 파란 감을 따서 억지로 익힌 겉만 빨간 떫은 감 같았다.
어디 붓글씨만 그렇겠는가! 사람 역시 다시 살고 싶은 삶이 있고, 있는 사람보다 '저 사람이라면'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이 더 좋아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천은 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범하는 사람도 있다.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나 아무도 모르겠지 하고 마음에 두는 사람이나 덧칠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살아 온 삶이 아무리 보잘 것 없고 힘들었어도 그건 결코 덧칠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며 나만의 역사이다. 사람마다 역경이 왜 없겠는가!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참을 줄 알고, 상처 입은 마음들을 서로 보듬어 주는 게 참삶이 아닐까!
거칠고 주름진 손에 붓대를 잡고 지나온 세월의 숱한 사연을 화선지 위에 한 점 먹물로 대신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들의 고요한 미소가 '나는 덧칠하지 않았어요'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