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에서 진행되는 주민투표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삼척시에서는 오는 10월 9일 민간 기관 주도로, '삼척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다. 원전 유치 문제를 놓고 시민의 힘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삼척시가 처음이다.
주민투표는 '주민 수용성이 결여된 삼척원전 유치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인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투표로 지역 사회에 내재된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주민투표는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삼척원전 유치 백지화'를 최대 공약으로 내건 김양호 후보가 삼척원전을 유치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김대수 전임 시장을 큰 표 차로 물리치고 시장에 당선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김양호 시장은 당선과 동시에 먼저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약속했다. 삼척 시민들이 직접 원전 유치 문제를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원전 유치 관련 삼천 시민의 의사를 묻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삼척시는 지난 2011년 3월 9일,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원전 유치에 찬성하는 주민이 96.9%를 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조사는 삼척시 공무원들과 통·리·반장들이 대거 동원돼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원전 유치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주민투표'를 강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그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전 유치, 삼천시민이 투표로 결정한다"주민투표 실시 요구가 받아들여진 건 김양호 시장 체제가 들어선 뒤다. 지난 8월 26일 시의회에서 주민투표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문제는 계속됐다. 선관위는 지난 9월 1일 원전 유치 신청 철회는 국가 사무에 속하는 사안으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렸다. 결국 주민투표를 민간이 주도해 실시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후 삼척시에서는 지난 12일 '삼척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가 구성됐다. 위원장은 인제군에서 DMZ평화생명동산을 운영하는 정성헌 이사장이 맡았다.
투표 실시를 위한 절차는 차근차근 진행됐다. 주민투표 관리위원회는 지난 15일 주민투표 실시를 삼척 시민들에게 공고했다. 16일에는 주민투표 자원봉사자 460명을 모집하는 공고도 냈다. 15일부터 10월 8일까지는 공정한 주민투표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원전 유치 찬반 운동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이 기간에 시민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토론회와 설명회가 함께 열린다.
삼척 시민들은 1998년과 2005년에 정부의 원전, 방폐장을 건설 시도를 물리친 경험이 있다. 이번이 세 번째 싸움인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민투표가 삼척 시민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판이다. 이 투표는 정부의 원전 정책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정성헌 위원장을 만나 주민투표 의미 등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16일 고성군 거진읍사무소 안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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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투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원전 관련 주민투표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민투표는 원론적으로, 시민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 중요하다. 생명의 안전 문제를 다루면서 국가 사무와 지방 사무를 나누는 것은 관료적 발상이다. 법을 좁게 해석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문제를 공동체 구성원들이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법 이전에 법 정신의 문제다.
지금까지는 중앙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왔다. '원전 마피아'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에너지 정책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상당히 좌우하는데도, 모두 자본과 권력의 입장에서 결정이 됐다.
엄청난 생명의 안전성과 관계된 문제인데도 생활인의 입장에서 결정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에너지 정책에서 시민은 없었다. 그냥 백성만 있었지. 그런데 이제 최초로 시민이 '우리 의견 좀 얘기 하겠소'라고 하는 것이다. 시민 의식이 최초로 투표라는 행동으로 표출되는 거니까,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 원전 유치와 관련해 주민 의사를 물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주민투표 관리위원장 처지에서 그 문제를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은 정도에서 벗어나는데... 이전에 실시된 (원전 유치 찬반) 조사가 공정하고 열린 조건에서 이루어졌으면 이런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얘기가 안 나온다. 결국 과거에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여러 문제가 있었다. 그것이 삼척시 공동체를 크게 갈라놨다.
찬반 의사를 표시하는 데서 갈라지는 것은 괜찮은데, (찬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좋지 않은 방법과 절차로 갈라놓은 것은 옳지 않다. (주민투표는) 그때 잘못으로 생긴 갈등을 치유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주민투표를) 이전에 있었던 찬반 조사와 비교하면 안 된다. 그때 한쪽에서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자고 했다. 공정하게 투표를 해서 찬성이든 반대든 한 표라도 더 나온 쪽에 승복하자고 했다."
- 주민투표가 원전 문제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100점짜리는 없다. 그렇지만 (주민투표 결과가 나오면) 주민 간 갈등은 상당히 치유가 될 것이다. 먼저 아주 자유롭고 열린 공정한 조건 속에서 찬반이 이야기 될 것이다. 투표 인명부를 만드는 것 등 모두 삼척시 예산이 아닌 성금으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하기로 했으니까, 매우 자발적으로 치러지는 투표다.
물론 일부 예산이 모자르면 시·도에서 얼마 도와줄지 모르겠지만, (투표 자체는) 철저히 시민의 자발성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이전 찬반 조사는 동원과 내리꽂는 식으로 진행돼 (찬성 의견이) 96% 넘게 나왔다. 이전 조사를 공격, 부정,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주민 의사를 공정하고 자유롭게 물어보자는 의미로 투표가 진행될 것이기에 (주민 갈등은) 상당히 치유가 될 것으로 본다.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원전 반대 사람들로만 구성돼 있지 않다. 민변 변호사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변호사도 있고, 바르게살기운동 쪽 사람도 있다. 나도 '원전 반대 의사를 가진 사람들로만 위원회를 구성하면 틀림없이 투표 이후 정당성 문제제기가 나온다, 생각이 다른 사람도 골고루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투표는 민주주의 교육장, 삼척시민 자부심 가져야"- 주민 대다수가 인정하는 공정한 주민투표가 돼야 할 텐데."주민투표는 국가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과 똑같다. 투표를 실시하기 전에 원전 유치 관련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시민들 중에는 찬성-반대가 아닌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다. 주민투표를 치르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이 되기를 바란다. 너무 많은 욕심을 낼 수는 없지만, 이런 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삼척만 그런 게 아니지만 원전을 유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꼭 돈 이야기를 한다. 원전을 유치하면 몇 조 원을 지원하니 어쩌니 하는데, 돈으로 (사람들의) 투표 심리를 사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 권력이나 지방 권력이 할 일이 아니다. 천민 자본이 하는 짓이다. 경제유발 효과가 얼마고 하는데 그것을 사실대로 분석을 하면,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는다. 자본들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은, 원전 문제 이전에 진짜 안 좋은 일이다. 수단에 불과한 돈이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다."
- 삼척 시민들이 얼마나 투표에 참여할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투표율이 높을 것이다. 현지(삼척)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를 한다.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얘기를 한다고 한다. 투표율은 크게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 나올 것 같다. 사람은 자기 인생을 자기 의사대로 결정하고, 행동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시민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이제 삼척 시민은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자기 의사를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에 책임지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삼척 시민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번 투표가, 우리나라 대한민국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민주 시민으로 다시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 것을 삼척 시민들이 앞장서서 한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자존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더군다나 원전은 생명의 안정성을 다루는 문제다. 지구 생태계를 위해 인류가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민주시민으로서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다 생각하면, 투표에 참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번 주민투표는 삼척시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고 민주시민 전체를 교육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