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끝났어요, 이제 여기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됐어요."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에서 주민 김의균(51)씨는 허탈해했다. 그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집안 대대가 이 동네에서 400년 넘게 살았다. 그런 그가 고향을 두고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라고 규정했다. 규제완화 바람을 타고 무분별하게 지어진 공장들 때문이다. 그는 집 옆 주물공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소리를 들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공장에 포위된 주민들지난 17일 김씨의 집을 방문했다. 그의 집 안에 들어서자 습한 공기가 느껴졌다. 김씨 가족은 모든 창문을 닫고 지낸다. 피부에 와 닿은 공기는 초가을의 선선한 바깥 날씨와 확연히 달랐다. 거실에는 희망온도를 26℃로 맞춘 에어콘 한 대와 공기청정기 두 대가 가동되고 있었다.
김씨는 중금속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는 황토를 집안 벽에 발랐다. 날아오는 먼지를 막기 위해 공장과 집 사이에 주목나무와 잣나무를 심기도 했다. 하지만 미세한 먼지는 계속 김씨의 집으로 날아들었다.
김씨는 지난 2012년 3월 담벼락 바로 옆에 주물공장이 들어온 뒤 호흡기 질환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주물공장에서 금속을 깎을 때 나오는 금속먼지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병원에서 CT(전산화 단층 촬영장치)를 촬영한 결과 폐에 이물질이 있다는 진단도 받았다. 매일 약을 복용한다는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에도 끓는 가래를 내뱉었다.
김씨의 2층집 옥상에 오르자 논과 밭 사이사이로 빼곡하게 공장이 들어선 거물대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36가구, 주민 7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은 공장에 포위된 것처럼 보였다. 김씨는 회색빛 공장에 둘러싸인 붉은 벽돌집을 가리키며 "집주인이 건강 악화를 호소하며 올해 초에 인근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갔다"라고 설명했다. 집을 둘러싼 가구공장과 주물공장에서 날아오는 먼지와 악취 때문이었다.
주물공장이 들어선 2013년, 김씨의 집 1층에서 10년 넘게 살던 세입자가 이사를 가버린 일도 있었다. 세입자는 공장이 가동된 지 4개월 만에 건강 악화를 호소하며 떠났다.
대곶면 일대에는 김씨와 비슷한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또 있다. 마찬가지로 무분별하게 공장이 난립한 대곶면 초원지리, 쇄암리, 월곶면 고양리 등의 주민들이다. 이들은 공장이 들어선 이후 동네에서 암으로 사망한 사람이 늘어났다며 김포시에 민원을 제기해왔다.
김포시는 지역 내 건강 피해를 밝히기 위해 예비 환경역학조사를 벌였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거물대리와 초원지3리가 대상이었다. 주민을 상대로 인체 역학 조사도 실시했다. 그 결과 토양과 식물, 공기 등에서 카드뮴과 니켈 등이 관련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뮴과 니켈은 암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이다.
주민들의 주장대로 암 사망률이 높다는 결과도 나왔다. 환경역학조사단(연구책임: 인하대학교 임종한 교수)은 최종보고서를 통해 거물대리 일대의 총 사망률이 전국 평균보다 1.9배가량 높다고 밝혔다. 이어 암 사망은 2.9배, 소화기암 사망은 4.9배, 위암 사망은 5.4배가량 높은 것으로 결론내렸다. 또 향후 정밀조사에서 주민의 건강장애에 대한 정밀검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김포시는 지난 5월부터 2차 정밀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지금도 주민들은 유해물질배출로 인한 피해를 호소한다. 김포시는 내년 5월께 마무리되는 조사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다.
4년여 만에 공장 1119개 증가... 부작용은 고스란히 주민에게
이 일대의 '악몽'은 1990년대 후반 시작된 규제완화 바람과 함께 시작됐다.
김포에 공장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6년 공장 신설, 증설 승인 기준이 완화되면서다. 여기에 지난 2008년 수도권 공장총량제의 적용을 받는 공장 면적을 200㎡에서 500㎡로 완화하면서 소규모 공장의 난립이 가속화됐다. 이로 인해 2009년 12월 3959개였던 김포시의 공장은 지난 2월 말 5078개까지 늘어났다. 4년여 만에 1119개가 증가했다.
이어 2009년 7월에는 특정유해물질만 배출하지 않으면 모든 업종이 거물대리와 같은 '계획관리지역'에 들어설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이때부터 가장 많은 민원을 유발하는 주물공장이 들어섰다.
여기에 지역 주민이 생활하는 데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공장의 입지를 제한할 수 있도록 마련해둔 '산업입지의 개발에 관한 통합지침' 조항도 2008년 없어지면서, 집 앞에 주물공장이 들어온다고 해도 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사라졌다. 경제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의 부작용이 고스란히 지역주민에게 전가된 것이다.
지난 12일 김포 시민회관에서 열린 '김포 환경·건강피해 사례 발표 대회'에 참석한 김영환 환경부 국토환경정책과 사무관은 "7년 동안 환경영향평가를 담당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김포시와 같은 현장은 처음 봤다"라면서 주민 피해의 심각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사 가고 싶은데 집도 안 팔려... 정부 규제완화 방침 걱정"
상황이 이러함에도 주민들은 더 '화끈'하게 풀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가 걱정스럽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올해 3월, 산지에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도시형공장의 입지규제와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완화했다. 또 지난 12일에는 녹지·관리지역(산과 밭) 안 공장 증설에 따르는 규제를 완화하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입법을 예고했다.
지난 17일에 만난 쇄암리 주민 신서현(45, 주부)씨는 "아이들과 건강하게 살아보겠다고 시골로 들어왔는데, 꿈이 산산조각 났다"라면서 "왜 이렇게 공장을 허가해주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6년 전 빚을 내 지은 그의 단독주택은 가구공장과 주물공장에 둘러싸여 한 여름에도 문을 열 수 없다. 신씨는 "아이들 건강이 염려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데 집이 팔리지 않는 상황"이라며 "경제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라지만 너무 걱정된다"라고 전했다.
김포시는 빗발치는 주민들의 민원과 규제완화에 속도를 내는 정부 시책 속에서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김포시청 종합허가과 김기원 주무관은 18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규제완화 바람 속에서 공장 입지를 제한하는 고시도 다 없어진 상황"이라며 "새로 들어오는 주물공장은 제한하고 있지만, 이미 들어와 있는 공장을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