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 올려.""와, 올라가라."회색빛 군복을 입고 베레모까지 쓴 사람들은 투명 풍선이 하늘로 올라갈 때마다 환호하며 손을 흔들었다. 탈북자 단체가 대북 전단을 날렸다.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를 슬로건으로 내건 인천아시안게임이 개막한 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21일 오전 10시 50분께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 주차장에 나타난 '북한인민해방전선'과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 10여 명은 예고한 대로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전단 20만 장을 하늘로 올려 보냈다. 지난 13일 북한이 대북 선전물을 보내면 물리적 보복을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이었지만, 현장에 있던 경찰은 이들을 특별히 제지하지 않았다.
대북 전단은 세로 10미터 남짓 비닐 풍선에 가스를 주입해 날리는 방식으로 살포됐다. 총 10개의 풍선을 다섯 개씩 두 번에 걸쳐 보냈다. 두 번째로 보내진 풍선에는 '공갈협박 중단하라', '인민에게 자유민주를', '김정은 선군독재 타도' 등이 쓰여졌다. 북한 체제를 풍자하는 그림이 그려진 펼침막도 달렸다. 풍선 끝에는 대북 전단과 1불짜리 달러 1000장, 한국의 경제발전 역사를 요약한 책 400권 등이 담긴 꾸러미를 매달았다.
북한 3대 세습 비난하고 이승만·박정희·박근혜 찬양 내용
대북 전단에는 북한의 3대 세습을 비난하는 내용과 함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도 뒷면에 나란히 실렸다. 전단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두고 "조국과 민족을 가난으로부터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군사혁명을 성공시켰다"고 적었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표현했다.
이날 같은 장소에서는 대북 전단 살포를 중단을 촉구하는 시민단체와 탈북자 단체 사이에 일촉즉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고양평화누리, 통일의길, 한국진보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은 탈북자 단체들이 풍선에 가스를 주입하기 시작하자 항의를 위해 다가왔다.
이를 본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도 "빨갱이 XX들"이라고 소리치며 시민단체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또 경찰에게 "싸움을 붙이는 것이냐"고 항의하며, 시민단체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제지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현장에 출동해 있던 경찰이 경찰버스 5대와 병력 100여 명을 동원해 이들 사이를 가로막으면서 상황은 충돌 없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전단을 띄워 보내는 동안에도 시민단체와 탈북자 단체 사이에는 신경전이 계속됐다. 시민단체 회원들은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국민안전 위협하는 대북 전단 살포 즉각 중단하라', '누가 당신들에게 평화를 파괴할 권리를 주었는가' 등의 피켓을 들고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한다면 국민이 반대할 것"이라며 항의했다. 탈북자 단체들은 그들을 향해 "(북한의) 손발이 되어 돌격대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라며 "애드벌룬에 실어 북한에 떨어뜨려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전달 살포 단체 "정부에서 자제 요청 없었다"한편 탈북자 단체들이 지난 9일에 이어 21일에도 대북 전단을 살포하겠다고 밝히자 북한은 이를 비난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북한은 지난 13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 국가안보실 앞으로 전통문을 보내고, '전단 살포가 개시되면 도발 원점과 그 지원 및 지휘세력을 즉시에 초토화 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통일부는 '확실한 법적 근거 없이 우리 국민의 표현 및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다, 지난 18일에 '논란을 일으키는 등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경우에는 신중히 접근해 줄 것을 요청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대북 전단 살포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정부에서 오늘 행사를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통일부에서 그런 요청이 오지 않았다"며 "우리는 민간 북한 인권 단체이므로 통일부의 말을 들을 이유도 없다"고 전했다. 또한 아시안게임 중에 전단을 살포하기로 한 것은 "풍량이 좋아 결정한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밝혔다.
오전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함께한 최은아 한국진보연대 자주통일위원장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교류협력법상 북측으로 물자가 들어가는 것은 통일부 장관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며 "정부가 이를 제지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탈북자 단체들이 명백한 불법행위를 했음에도 이를 수수방관한 것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통일부와 경찰청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