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골 입구 메타세쿼이아길에서 출발하여 매자골 솔숲까지 앞산자락길을 걸었다. 지금까지 걸은 구간은 대구광역시 남구 관할이다. 지금부터 임휴사 아래까지 걸으면 앞산자락길을 모두 걷게 된다. 마지막 길은 달서구 관할이다.
달서구 관할의 앞산자락길은 남구쪽과 많이 다르다. 정비가 잘 되어 있는 남구쪽은 공룡발자국, 신라 고찰 고산사, 독립운동가 이시영을 기려 세워진 기념탑, 6.25 관련 낙동강승전기념관이 있다. 뿐만 아니라 왕건의 자취가 서려 있는 은적사, 안일사, 왕굴도 있다. 역사적 답사지가 많다는 말이다. 그러나 달서구쪽은 왕건이 마지막으로 쉬다 갔다는 임휴사를 제외하면 역사 유적지가 없고 정비도 되어 있지 않아 작은 계곡을 건널 때마다 땅을 보며 발을 내디뎌야 한다.
그러므로 이 구간은 걸으면서 눈길을 특별히 줄 만한 곳이 거의 없다. 그 탓에, 문득 오른쪽에 나타나는 말의 모습은 아주 경이롭다. 앞산승마장의 말들이 숲 사이로 오락가락하는 풍경이 마치 무슨 고대사회의 사냥터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임휴사는 927년 팔공산 아래 동수대전에서 견훤에게 대패한 왕건이 앞산으로 들어와 숨어 지낸 끝에 성주 방향으로 도주할 때 마지막으로 잠깐 쉬었다가 간 곳이다. 즉 '잠깐' 이 '임', '쉬다'가 '휴'가 되어 임휴사라는 절이름이 태어났다. 하지만 현재의 임휴사에는 오래된 느낌이 남아 있지 않아 그저 평범한 현대의 작은 사찰로 여겨질 뿐이다.
임휴사를 떠나 월곡지 둘레를 돌면 앞산자락길이 끝이 난다. 월곡지를 돌기 위해서는 임휴사에서 평안동산 방향으로 걷다가 오른편의 좁은 계곡을 건너야 한다. 못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이 계곡을 좁다고 하는 것은 그 폭 때문이기도 하지만, 물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풀쩍 뛰어 계곡을 건넌다. 이제 못을 오른쪽에 두고 하산하는 산길을 걷는다. 말 그대로 오솔길이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스산한 가을을 느끼게 해주는 오솔길을 걸으니 어쩐지 마음이 쓸쓸해진다. 이제 머지 않아 왕건처럼 나도 이 앞산을 떠나야 하기 때문인가. 못 수면 위로 가느다란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문득 눈에 들어온다.
월곡지에서 계속 앞을 보고 걸으면 평안동산을 지나 마침내 앞산 능선을 넘게 된다. 거기서부터 동쪽으로 대구 시내 풍경을 바라보면서 걸으면 산을 내려가게 된다. 물론 여러 갈래의 하산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길은 공룡발자국이 기다리는 고산골이다.
능선을 왼쪽으로 타고 걷다가 중간쯤에서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이시영 독립군 장군 기념비가 있는 큰골로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완전 정상까지 가서 오른쪽으로 내려오면 케이블카가 기다린다. 케이블카를 타도 물론 큰골이 나타난다.
안일사가 있는 안지랑골로 내려오는 길은 찾기가 좀 까다롭다. 정상 바로 오른쪽 턱밑에 나무 사이로 숨은 듯 좁게 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 말은 무심코 지나치기가 쉽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 길은 꼭 한번 걸어볼 만하다. 왕굴에 숨어 있던 왕건이 임휴사를 거쳐 성주로 도망칠 때 올라온 도주로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좁은 길은 왕굴을 구경시켜 준다.
능선을 오른쪽으로 타고 걷다가 '청룡산'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걷고 또 걸으면 마침내 비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닿는다. 그래서 안일사에는 '앞산 안일사'가 아니라 '비슬산 안일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현판은 앞산이 엄밀히 말해 '산'이 아니라 비슬산의 한 '봉'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