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군자가 직접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공손추가 맹자에게 물었다.

맹자가 답하기를 "그것은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다. 교육하려는 목적은 자식을 올바른 인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공부에 열중하지 않으면 화를 내게 되고, 성을 내게 되면 결국 아이와 사이가 나빠지게 되는 것이다. 아이 쪽에서는 '나더러 올바로 되라고 하시지만 아버지 그 자신도 올바르지 못한 것이 아니냐.'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래서 아버지와 자식 사이가 의가 상하는 것이다. 의가 상해서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옛날에는 자식을 바꾸어 가르쳤다.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 좋은 일은 강요하면 의가 상하는 것이다. 의가 상하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논어>에 실린 <군자는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글이다.

자녀교육 문제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교육을 업(業) 삼아 사는 내가 논리로 설득하는 입장이 된다. 하지만 논쟁 뒤에는 "네 말이 맞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론대로 안되니 어렵다"라는 말로 끝을 맺게 된다. 나 또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녀 교육은 이론의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아무리 자녀교육이론에 해박하더라도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춰 키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부모는 집에서 아이를 가르치지 말고 방치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위에서 인용한 맹자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군자는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말의 뜻

'군자는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맹자의 말은 부모가 자녀를 직접 가르치기 어렵다는 말이지만 그 숨은 의미는 부모의 자녀교육관이 바로 서 있어야 자식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는 말 속에 숨은 의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부모는 자기자식을 바라볼 때 좀더 객관적인 눈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자기 새끼 예뻐하는 부모의 본능적인 시각으로는 자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시각으로 자녀를 가르칠 때 오히려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염려가 있다는 말이다. 실제 교육컨설팅을 하다 보면 위와 같은 이유로 자녀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부모를 만날 수 있다.

초보 교육컨설턴트였을 때 만났던 한 아이의 이야기이다. 그 아이의 부모는 둘 다 국책연구원에 다니는 박사 부부였다. 부모의 직업으로만 봐도 자녀교육에는 일가견이 있어 보이는 가정환경이었다. 실제 방문해보니 부모의 교육열이 누구보다 높아 아이가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육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었다.

집을 살펴보니 웬만한 책들은 다 있었고 최신 자녀교육관련 정보를 모아 놓은 스크랩 파일도 보였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방문 후 부모의 태도와 아이 상태를 직접 눈으로 보니 문제의 심각성이 금방 알 수 있었다.

아이 상태를 살펴보니 발달 단계는 오히려 또래 아이들보다 늦어 있었고, 정서적으로도 무척 산만해 보였다. 내가 그 아이를 잊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 때문에 일어난 작은 소동 때문이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범상치 않은 행동을 보이던 아이는 부모와 이야기 하는 중에 갑자기 내 얼굴에 침을 뱉어버린 것이다.

아이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하며 우왕좌왕 하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고,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아이 부모가 보인 행동이 아주 충격적이었다. 보통 그런 경우 먼저 상대방에게 사과 하고 아이를 제지하며 달랬을 텐데 그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아이 엄마는 갑자기 봉변을 당한 나의 상황보다는 자기 아이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얼굴에 침 세례를 당한 나에게 사과는커녕 '괜찮아 괜찮아! 아저씨 무서운 사람 아니야" 하면서 자기 아이만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엄마 모습을 보니 참 할 말이 없어졌다. 눈물 한 방울 없이 울어 제치던 아이는 엄마의 '괜찮아 괜찮아' 말 한마디에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이것저것 헤쳐 놓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마도 상담으로 잠시 자기 관심을 벗어남에 따른 부모 관심끌기용 행동 같았다. 문제는 그런 행동이 습관처럼 보였다. 그 가정은 교육정보 부족이나 교육열의 부족이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의 부재로 인한 문제였다.

상담이 끝나고 난 후 함께 갔던 상담 파트너와 술 한 잔하면서 신세한탄 겸 나눴던 말이 생각 난다.

"군자는 자기 자식 가르치지 말라고 했던 이유를 알겠다. 그저 자기 자식만 예뻐 보이니 그렇지."

우리는 그날 서로의 처지를 한탄하며 '부모 교육열이 높은 것을 탓할 수 없지만, 문제 있는 부모 때문에 아이 장래가 걱정된다'며 술잔을 비웠다. 맹자의 말을 빌어 보면 그 박사부부는 절대로 자기 자식을 가르치면 안 되는 부모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분들은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모의 교육철학과 그에 따른 가정교육 준비가 전혀 안된 부모들이었다. 그 아이는 지금 아마도 성인이 되었을 텐데 늦게라도 부모가 깨닫고 잘 키워 줬기를 기대해 본다.

 성룡 주연의 영화 <취권1> 한 장면.
성룡 주연의 영화 <취권1> 한 장면. ⓒ 영화 캡처

무협영화 속 사부들의 큰 가르침

80년대 홍콩 무협 영화가 유행하던 시절 수많은 무협영화들은 다 내용이 비슷비슷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악당들에게 부모를 잃은 어린 주인공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우여곡절 끝에, 진정한 스승을 만나 무술의 고수가 되고, 결국 부모의 복수를 한다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이었다.

영화를 보면 복수를 꿈꾸고 사부를 찾아 들어간 주인공에게 스승은 절대로 무술을 쉽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한 때 무림고수였으나 숨어 살고 있는 사부는 재능을 가졌으나 복수심에 불타는 제자를 처음부터 받아 들이지 않는다.

물 길어 오기, 장작패기, 밥짓기, 마당 쓸기 등 전혀 무술과 관계없어 보이는 일들만 몇 년을 시킨 다음 죽기 전에 진짜 무예의 비법을 알려준다. 스승의 그 큰 뜻은 무엇이었겠는가. 강호무림에서 수많은 고수들을 물리치고 진정한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스승을 뛰어 넘어야 한다. 스승은 몇 년 동안 무술 기술에 필요한 기본(잡일을 통한 기본 근육 기르기)을 충실하게 가르치고, 인내를 가르치고, 기준보다 더 높은 기준을 정해 놓고 그것을 넘는 실력을 끊임없이 가르쳤던 것이다.

진정한 스승은 그런 것이다. 당장 현실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기술만 가르치려는 자세는 진정한 가르침이 아니다. 비록 흘러간 무협영화 속 얘기지만 진정한 스승,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 시대 부모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누구나 교육전문가의 시대, 교육과잉의 시대, 교육정보가 넘쳐 나는 이 시대에 오히려 옛 선현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옛 선현들이 말했던 '군자는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말의 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도 넓은 의미에서는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바로 서야 함을 내포하는 말이다. 우리는 지난 몇 차례 선거에서 자녀 문제로 부모가 얼마나 큰 낭패를 보아야 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이 시대 부모로 살아 간다는 것은 군자가 되는 길보다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랴, 그러한 부모들의 노력으로 인류는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었으니. 그렇게 자녀교육에 노력했던 선현들의 결과물이 바로 오늘을 만들었듯, 힘들어도 지금 우리 부모들의 노력으로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길이다.

'부모로 살아 간다는 것은, 내일을 만드는 아이들에게 밑거름이 되어야 하는 숙명의 길인 것이다.'


#자녀교육#교육#부모교육#부모의 길#군자교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