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마당에 감이 채 익지도 않고 떨어진다. 덜 익은 감이 떨어진 감나무에는 홍시 대신 감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뒤뜰의 자두나무는 빨갛고 탐스러운 자두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우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던 시절은 기억에도 없다는 듯 자두나무의 지난 영화가 퇴색 되고 있다. 여름에 극성이던 매미 소리는 간 데 없고 귀뚜라미가 밤잠을 설치게 만든다.
가을이 오면서 무거워지는 마음벌써 가을이 오고 있다. 아마 이봉조 마라톤 선수도 달리는 초침을 앞지르지는 못할 것이다. 가을! 벌써 가을이라고 한 해의 허리를 훌쩍 넘겨버린 시간에 초조해하는 사람들!
이런 마음속에는 계획을 세워놓고 못 다 이룬 일들 때문에 조급증이 들어있다. 늘어나는 잔주름 때문에 주름 골마다 시름을 담았을 게다. 어떤 이는 '괜히 회한이 들어서'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왜 시름이 고였다고 하지 않고 '시름을 담았다'고 말하는가? '고였다'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고, '담았다'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나는 "가다가 중단하면 아니 간 것만 못하다"는 말을 "가다가 중단하면 '갔던 만큼' 아니 간 것만 못하다"는 말로 바꾸어서 가슴 속에 넣어 둔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입속으로 중얼거린다. 하던 일에 진척이 없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내 자신을 다독이는 데 이 말을 쓴다.
만약 가다가 중단하면, 간 것만큼 소비한 시간과 정열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가다가 아니다 싶으면 약간의 조정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가 봐야하지 않겠는가. 가다가 중단하는 것 역시 조급증 때문이고, 그 조급증은 시름을 불러온다.
지난 여름, 언젠가 수업을 하는데 한 녀석이 느닷없이 질문을 했다.
"선생님, 몇 살이예요?""왜?""흰 머리가 많아서요."거울을 봤다. 눈가에 잔주름은 어느새 기본이 됐고, 머리카락마저 희끗희끗하다. 딸아이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흰 머리카락을 뽑으라고 하자 아이는 난감해하며 말했다.
"엄마, 흰 머리카락 다 뽑으면 대머리 되겠는데요!" 창문 밖 먼 곳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하늘에 흐르는 구름을 보니 "저것이 다 세월 가는 것이거니" 싶었다. 마음이 서글프고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별별 회한에 입맛도 없고 사람 만나는 것도, 쇼핑도, 사 놓았던 옷이나 보석을 보는 것도 아무 재미가 없었다. 오로지 드는 생각은, "나는 누구인가? 그동안 무얼 했나? 해 놓은 일은 있는가? 불같은 사랑은 해 봤던가?"
'벌써'보다 '아직'을 생각해야겠다
두어 달 후, 나는 급격히 늙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얼굴색이 우중충하고, 얼굴 표정은 세상 근심 혼자 짊어진 사람 같았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우선 집안 대청소를 했다. 경쾌한 음악을 쾅쾅 틀어놓았다. 덮어 뒀던 글머리를 열어보았다. 가닥이 안 잡혔다.
집안 분위기를 밝게 하고 진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내가 왜 이렇게 됐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벌써'에 얽매인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잔주름과 흰 머리카락은 나에게 지혜와 경험을 선물했다. 마음 상한다고 방황하거나, 이불 뒤집어쓰고 몇 달을 누워 있어도 가족이나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안정을 가져다줬다. 이 모두가 세월이 내게 준 선물이 아닌가!
이 가을에, 아름다운 가을의 초입에서 나는 깨닫는다. 벌써 가버린, 흔적조차 없는 초침의 소리보다 아직 하지 못한 일과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벌써'보다 '아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