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여느 때와 다름없이 1시 수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한 분이 말한다.
"선생님 광주에서 개최된 전국노인서예대전발표가 발표가 2시인데요."
"아! 그러세요 그럼 그 시간에 사무실에 내려가서 발표확인하도록 하지요."
어르신들 20여 명은 한문서예와 문인화 이외에도 판본체와 민체, 궁체 등 다양하게 한글의 여러 가지 서체를 공부하신다. 줄 긋는 법부터 내게 배웠다. 그냥 임서에 그치지 말고 기회가 되면 건강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경제적인 부담이 없는 대회에 내도록 권유하고 있다.
몇 년 전 간암수술 받으신 분이 계셨다. 그 분은 오랜 투병을 하고 쾌차하신 것 같았다. 그러나 작품을 준비하고 마무리에 들어갈 즈음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한 달 쯤 서울의 병원에 가게 되어 출석을 못해 반회장직을 다른 분이 맡도록 해야겟어요."
"아 그러세요? 병원에서 많이 아프시지 말아야 할텐데...여기 걱정은 말고 잘 다녀오세요!"
그 분은 한 달 만에 안 그래도 가벼운 몸이신데 몸무게가 4~5키로 줄어들어 퇴원하셨다. 그리고 다시 나를 찾아오셨다. 나중에 들어보니 2번째 간암이 재발해서 수술을 하셨다고 한다.
"선생님 힘들디만 저번에 하다 만 작품 마무리해서 내려고 하는데요."
"어서 갖고 오세요! 잘 마무리 해서 파이팅 해봐야지요!"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대표로 사무실에 내려간 분이 합격자 발표 명단을 흥분해서 가지고 올라왔다. 그리고 손에 든 것을 흔드시면서 소리치셨다. 자신이 상을 받는 것이 아닌데 그렇게도 좋으실까?
"자! 여러분 박수칩시다! 우리 반에서 우수상이 나왔어요!"
" 선생님 힘들게 가르치셨는데 참 람있으시겠어요 하하하"
모두 전국의 각 기관에서 1300명이 출품한 대회에 600여 명 가까이 낙선되고 700여 명의 합격자 중에서 간암수술받으신 그 분이 2등인 우수상이 되었다. 그리고 출품을 포기하려 했으나 끝까지 손잡고 함께 공자의 삼계도를 작품한 할머니와 또 윤선도의 오우가를 훈민정음체 글씨로 표현한 다른 중증 투병 어르신도 나란히 특선하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궁체를 배워서 작품을 어렵게 만들어 출품한 분도 모두 입상권에 들었다.
나는 그 분이 우수상을 타서 고마운 것보다 6명이 출품해서 낙선한 분이 없다는 게 참 다행스러웠다. 내심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지면 나이가 많아서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잘 서운해하시는 마음도 있기 때문에 혹시 아픈 데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으니깐.
당분간 우수상 타신 분은 앞으로 10월 중순 시상식을 다녀오기까지, 아니 시상식이 끝나고도 한참은 구름을 탄 기분으로 한 여름날 병상에서 투병했던 그 아픔이 보상되는 신 나는 기운속에 계실 것이다. 항암투병을 하면서 항상 묵향을 가슴에 안고 그 묵향의 씨를 부지런히 부려 드디어 결실을 보았으니깐.
참 좋은 가을 날! 척박하고 외진 땅에 시험삼아 뿌려보았던 땅에 노오란 희망의 꽃이 피었다. 한 여름 스님에게 씨를 받아 심은 해바라기가 마침 알맞게 푸른 하늘을 향해 소박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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