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집집이 마당에 물을 끌어 올리는 펌프가 있었다. 펌프에서 물이 잘 안 나올 때, 위에서 물을 한 바가지 부어 다시 펌프질하면 갑자기 물이 콸콸 쏟아졌다. 이 물 한 바가지를 '마중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도 지금 이 '마중물'이 필요할 때다. 우리나라 지역 경제는 훌륭한 하드웨어와 기술력, 근면 성실한 인력을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원활한 흐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어딘가 막혀있음이 틀림없다.
특히 농가들이 있는 지자체는 '쌀 수입 전면개방'에 비상사태나 마찬가지다. 단순히 답습해온 쌀 소비 진작 정책이나, 중앙 정부의 처방에만 기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논 재배면적이 급격히 줄어든 데는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고생한 만큼 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잘 살펴보자. 우리가 그동안 상대적으로 등한시하고 외면했던 '쌀'과 '밀'에 지역경제 활성화의 해답이 숨어 있다.
유럽 경제의 큰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관광업과 농업이다. 이를 받쳐주고 있는 것은 과일로 만든 '와인'이다. 일본의 경우도 전체 벼 재배 면적 중 15%가량이 고급 사케 용 쌀을 재배한다. 단순히 술 생산을 넘어 유사시 식량자급률의 상당 부분을 대신할 수 있는 시스템도 준비되어 있다.
많은 지자체가 국내를 넘어 세계 곳곳에 자매·우호도시를 두고 있다. 가끔 결연 국가를 방문해보면 그 나라와 지자체를 대표하는 술이 반드시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는 별다른 주종이 없다. 우리도 지역을, 나라를 대표하는 제대로 된 술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소주, 막걸리는 물만 국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조 방식 또한 우리의 전통 방식은 아니다.
이렇게 된 데는 일제 침탈과 배고픈 시절을 넘겨야 했던 고난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1917년 전통주 제조 장수는 12만 1823개였고, 1930년대에는 술을 빚는 직업을 가진 인구가 42만여 명으로 당시 인구의 1/7에 달했다. 전통주 문화 육성이 절실한 때다. 국민들에게 전통주에 대해 바르게 알리고, 제대로 소비하게 하는 정책적 뒷받침만 있다면 전통주 육성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미국 와인은 과학이고, 유럽 와인은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비유하자면 일본 사케가 과학이라면 우리 전통술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쌀로 빚는 술이지만 재료 가공과 주조방식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주 육성은 과거 문화유산을 답습하는 일이 아니다. 전통주 산업은 창조적 분야고 전·후방 연관 효과가 뚜렷이 나타나는 산업이다.
민관협력의 거버넌스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분야는 단연 전통주 산업이다. 관 주도가 아닌 민 중심의 문화를 녹여낸 산업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는 지역마다 향교가 있었고, 이곳에서 청년들에게 '향음주례(鄕飮酒禮)' 예법을 가르쳤다. 이를 통해 공동체 간 소통이 있었고, 규율과 질서가 바르게 잡혔던 것이다.
마시고 취하기만 하는 술 문화와는 엄연히 다르다. '향음주례'는 수직적 관계 적용되던 메커니즘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민·관·산·학의 수평적 협력관계가 절실히 필요할 때, 이 메커니즘은 더 효율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 지자체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 수도 있다. 한바탕 어우러진 축제처럼 즐겁고, 유쾌한 모범 답안을 낼 수 있는 분야가 우리 전통주 산업인 것이다.
우리나라 식 문화의 두 개 축이었던 김장 문화와 가양주 문화. 지금은 김장 문화만 겨우 남았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에 등재되기까지 했지만 가양주 문화는 일제 침탈 이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글로벌 시대. 다시 한번 '술의 나라, 불의 나라, 문화대국'을 꿈꾼다.
덧붙이는 글 |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경제 진작을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입니다. 이를 위해 신성장 동력을 찾는 대신 우리 고유 것을 다시한번 챙기는데서 해법이 나올 수 있습니다. 특히, 수입쌀 전면개방은 식량주권과도 밀접히 관계된 문제입니다. 대책은 탁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살림살이를 면밀히 살펴보는 데서 효율적인 방안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