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동서남북 지역별로 대표 관광 상품이 따로 있다. 북부는 '강화 평화 전망대'와 '강화 화문석 문화관', 남부는 마니산 참성대와 전등사, 서부는 석모도의 보문사, 중부는 팔만대장경 제작 현장인 '선원사 터'와 이규보 묘소, 그리고 고천리 고인돌군을 각 지역별 대표 관광 상품으로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강화도 동부의 대표 관광 상품은 어디일까?
강화대교를 넘어 강화도로 들어간 답사자는 가장 먼저 갑곶돈대를 방문하게 된다. 강화도의 돈대는 대략 포대로 이해하면 되는데, 이곳 갑곶돈대로부터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좌강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초지진 등이 줄곧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남쪽 해안에도 후애돈대, 분오리돈대, 미루지돈대, 북일곶돈대가 있고, 서쪽 해안에도 장곶돈대, 검암돈대, 굴암돈대, 건평돈대, 망양돈대, 섬암돈대, 계룡돈대, 망월돈대, 무태돈대가 줄지어 구축되어 있다.
나열된 이름만 보아도 강화도에는 돈대가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돈대는 고인돌, 화문석과 더불어 '강화도'하면 떠오르는 중요 상징물의 한 가지이다. 하지만 그 많은 돈대들을 모두 답사할 수는 없다. 갑곶돈대, 오두돈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덕진진, 초지진 등 대표 돈대들 중에서 골라 답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강화도 동해안에 있다. 돈대가 곧 강화도 동부의 대표 관광 상품이라는 뜻이다.
만약 허다한 돈대들 가운데 단 한 곳을 답사할 시간밖에 없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추천자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필자는 용두돈대가 으뜸이라고 치켜세우고 싶다. 그 까닭은 잠시 후 용두돈대를 답사할 때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갑곶돈대를 답사하는 분들께 꼭 가보시라고 권하려는 한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갑곶돈대 주차장 입구에서 왼쪽으로 난 도로로 들어간다. 순교자기념관 앞으로 난 오르막길로, 끝까지 가도 거리는 100미터 정도밖에 안 된다. 구 강화대교로 가는 옛날 도로이지만 다리가 폐쇄되면서 길이 막히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갑곶돈대를 찾아온 관광객 중 그 길을 가보는 이는 드물다. 꼭 살펴보아야 마땅한 낡은 입간판 하나가 구 강화대교 입구 왼쪽에 세워져 있는데도 말이다.
'이곳 구 대교 밑(옛 선착장 자리)은 1951년 1.4후퇴 당시 강화향토방위특공대에 의해 부역자의 가족, 칠십 세가 넘은 할머니, 집에서 살림만 하던 부녀자, 1살 먹은 아기 등 아무 죄도 없는 억울한 인명을 아무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무참하게 살상한 장소이다. 남 45, 부녀자 약 15명이고, 시일은 1951년 1월 6일에서 8일까지라고 한다. 그 후에 각 해안에서 희생자 수는 약 3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강화 양민 학살 희생자 유족회' 명의로 세워진 입간판이다. 입간판에 적혀 있는 '옛 선착장 자리'는 다리 아래가 철조망으로 막혀 있고, 다리 입구 순교지 일대마저 천주교에서 막아 놓아 접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유족회도 입간판을 이곳에 세웠을 터이다. 결국 이 입간판이라도 보아야 한다.
용두돈대를 찾아간다. 흔히 초지진의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다양하고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용두돈대보다는 못하다. 용두돈대는 안해루,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어재연 어재순 형제 쌍충비, 신미순의총, 신미양요 순국무명용사비, 조선 시대 우물 등 숱안 유적을 거느린 사적 227호인 광성보 안에 설치되어 있다. 홀로 남아 있는 초지진은 애당초 용두돈대의 적수가 될 수 없는 조건인 것이다.
게다가 용두돈대는 20만 평 광성보 중에서도 가장 끝에 있다. 많은 유적들을 두루 본 다음에야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존재하기 때문에 용두돈대를 답사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레 그 많은 유적들을 둘러보아야 한다. 자연스레 역사 '여행'이 된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용두돈대는 다른 돈대들처럼 그냥 땅 위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용머리처럼 바다 안으로 쑥 들어간 곶 끝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용두돈대로 가는 길은 좌우가 바다로 에워싸인 성벽 위를 걷는 특이한 체험을 선사해준다.
강화도 동부 지역의 돈대 중 가장 남쪽에 초지진이 있다. 사적 225호인 초지진에서 놓치지 말고 꼭 보아야 할 것은 성벽과 소나무에 남아 있는 대포 맞은 흔적이다. 관리소에서 흰 페인트로 동그라미를 쳐두었기 때문에 찾기도 쉽다. 그 흔적을 보노라면 '만약 내가 양요 당시 이곳에서 싸우고 있었다면 저 서양 포탄이 날아올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하는 생각이 저절로 일어난다. 그런 사유 과정을 거치는 것, 그것이 바로 역사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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