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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청이 '산소통'으로 속여 다른 물품과 끼워팔기해 논란이 일고 있는 액화염소가스통. 현재 세종시에 있는 관련업체에서 보관중이다. 군산시가 1998년 매입한 것으로 제작된 지 약 16년 정도 됐다.
군산시청이 '산소통'으로 속여 다른 물품과 끼워팔기해 논란이 일고 있는 액화염소가스통. 현재 세종시에 있는 관련업체에서 보관중이다. 군산시가 1998년 매입한 것으로 제작된 지 약 16년 정도 됐다. ⓒ 제보사진

누군가 당신에게 독극물이 가득 든 통을 산소통이라고 속여 비싼 값에 팔았다면? 뒤늦게 속은 사실을 알고 환불을 요구하자 독극물을 '몰래 버리면 된다'고 회유한다면?

그 독극물을 판 곳이 자치단체이고 소속 공무원이라면? 이 공무원을 사법기관에 고소하자 달랑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에 그쳤다면?

믿기지 않겠지만 실제 군산시에서 일어난 현재 진행형 사건이다.

중고 '산소통' 매각 낙찰.... 알고 보니 애물단지 '염소가스통'

고물상을 운영하는 지보현씨는 지난 2008년 9월 군산시가 공개 입찰한 불용품 매각입찰에 참여, 낙찰권을 따냈다. 매각낙찰 품목은 산소통을 비롯 컴퓨터와 의자, 석유난로, 책상 등 모두 41개 품목이다. 낙출금액은 모두 4450만 원.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지씨가 예정금액(3718만 원)보다 높은 금액을 써내며 낙찰에 공을 들인 이유는 산소통 20개(1000kg) 때문이었다. 관련 업체를 통해 문의한 결과 같은 용량의 중고 산소통은 개당 150∼190만 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다른 품목에서는 큰 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산소통만 제대로 거래하면 실익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게 화근덩어리가 됐다. 낙찰 후 군산시로부터 인계받은 물품이 산소통이 아닌 인체에 유해한 '액화 염소가스통'(이하 염소가스통)이었던 것. 게다가 20개 통 중 대부분에서 쓰다남은 잔여 염소가 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염소는 독성과 부식성이 있는 황록색 기체로 눈과 호흡기관을 자극한다. 공기 중에 빠르게 확산되며 점막에 침범할 경우 호흡곤란 증세 등이 심해져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유독 기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염소통은 군산시가 지난 1998년 매입해 군산시 소재 정수장에서 사용해오다 지난 2007년 해당 정수장이 폐지되자 매각 처리하게 됐다.  

환경부는 염소를 사고대비물질로 분류, 고압처리 관련 지정폐기물업체에서 처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씨가 전문업체에 문의한 결과 매각은 고사하고 오히려 폐기물 처리비용을 지불해야만 처리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군산시청이 전문처리업체에 비용을 주고 처리해야 할 염소가스통을 컴퓨터 등 다른 물품과 비싼값에 '끼워 팔기' 한 것이다. 

매각 담당 공무원 "다른 업체에도 판매한 적 있다"

 군산시가 지난 2008년 매각 공고한  물품명세서.  군산시는 물품명세서에는 '산소병'이라고 기재해 매각 공고했으나 실제로는 낙찰자에게 염소가스가 들어 있는 '액화염소가스통'을 인계했다.  확인결과 해당 공무원은 지정고압가스 전문업체에 넘겨야 할 '염소가스통'임을 알면서도 '산소병'으로 허위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산시가 지난 2008년 매각 공고한 물품명세서. 군산시는 물품명세서에는 '산소병'이라고 기재해 매각 공고했으나 실제로는 낙찰자에게 염소가스가 들어 있는 '액화염소가스통'을 인계했다. 확인결과 해당 공무원은 지정고압가스 전문업체에 넘겨야 할 '염소가스통'임을 알면서도 '산소병'으로 허위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 심규상

 2013년 염소 누출사고가 일어난 구미캐미칼 공장 내부.
2013년 염소 누출사고가 일어난 구미캐미칼 공장 내부. ⓒ 조정훈

깜짝 놀란 지씨는 당시 입찰 매각 업무를 담당한 군산시청 담당 공무원인 'ㅅ'씨(현 60세)에게 왜 염소가스통을 산소통이라고 속여 팔았냐며 항의했다. 염소가스통을 반납하겠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하지만 'ㅅ'공무원은 지씨에게 "가스통 안을 물로 세척해 놓았으니 아무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씨가 '잔여 염소가스가 들어 있다'고 재차 항의하자 "통 밸브를 아무도 모르게 살짝 틀어 놓아라, 그러면 공기와 섞여 날아간다, 전에도 다른 업체에 판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인체에 유해한 액화염소를 몰래 공기 중에 흘러 보내라고 종용했다는 것이다.

지씨가 설마하며 보관하고 있던 한 염소가스통의  밸브를 시험 삼아 열어 보았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몇 분 만에 염소를 접한 주변의 풀이 모두 죽어 버렸다. 지씨는 얼른 밸브를 꼭 잠그고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씨는 "'ㅅ' 공무원 말만 믿고 밸브를 모두 열어 놓았다면 엄청난 인명사고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ㅅ'공무원과 후임 공무원은 '적법하게 처리돼 반품을 받아 줄 수 없다'며 계속 환불을 거부했다. 애원도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러는 사이 염소가스통 매입비용 외에 보관비와 운반비 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참다못한 지씨는 지난해 말 'ㅅ'공무원을 허위공문서 및 위조공문서 작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은 지난해 12월 말  'ㅅ'공무원이 "액화용소통을 산소통으로 허위 작성한 혐의가 인정된다"면서도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밸브 열자 몇 분 만에 죽은 풀 ..."엄청난 인명사고 났을 것"

 군산시청 누리집
군산시청 누리집 ⓒ 군산시청 누리집 갈무리

지씨는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 현재 군산지법에서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씨는 또 지난 4월에는 군산시장과 A공무원을 상대로 3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 현재 재판 중이다.

하지만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 'ㅅ' 공무원은 지난 7월, 지씨를 오히려 무고죄와 소송사기죄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지난 달 12일 '무고나 소송 사기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지씨는 최근 형사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를 통해 "군산시청 공무원의 범법행위로 물질적 정신적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는데도 반성과 속죄는커녕 역으로 무고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하고 있다"며 "엄중한 판결로 법과 정의가 존재함을 일깨워 달라"고 밝혔다. 다음 형사재판은 오는 11월 10일 열릴 예정이다.

지씨는 "제작된 지 16년이 지난 염소가스통은 외견상으로도 부식이 심한 상태"라며 "시한폭탄을 안고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해 구미에서 염소가스 누출로 인근 업체 주민 160여 명이 치료를 받는 등 전국에서 크고 작은 염소 가스 누출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군산시청#액화염소가스#고물상#허위매각#유기화학약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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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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