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5개월째인 9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부분의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문제점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런 괴리감 속에서 5개월을 보낸 가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가족들이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동안 마주친 사람들에게 편지를 띄우고, 또 다른 사람이 편지를 이어 써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으로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메아리가 전해오기를 바란다. [편집자말] |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님들에게
푸르른 하늘이 눈에 띄게 높아 보이고 단풍이 여기저기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찬바람도 조금씩 불기 시작하네요. 안녕하세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타고 수학여행을 가다 희생을 당한 안산 단원고 2학년 4반 임경빈 엄마 전인숙입니다.
사고 첫날 사무실 출근해서 9시 30분께, 사람들이 인터넷 방송 속보로 세월호 사고 소식이 올라왔다고, 혹시 아들이 단원고 다니지 않았냐고 물어보았을 땐 정말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별일 아닐 거란 생각으로,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라고 하며 마음에 주문이라도 걸 듯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가 더 심하게, 90도 넘게 넘어갔다고 얘기해주는 동료에게 순간 버럭 화를 냈습니다. 마음 졸이며 앉아 있지도, 가만히 서 있지도 못하는 거 안 보이냐고 하면서요. 벌써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우리 사무실엔 단원고에 재학 중인 2학년 여자아이 2명의 부모가 있었는데, 그 중 여자아이 한 명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물이 차고 배도 기울고 있다고. 그런 아이들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하라는 대로 방송 소리에 귀 기울여 따르면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선상에서 뛰어내려서 다른 배에 승선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와 사무실 다른 여학생 소식을 물어도 봤습니다. 하지만 같이 손잡고 뛰어내렸던 친구조차도 안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아들한테 전화도 해보고 문자도 해보았습니다. 답이 없는 전화만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아이 아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당장 진도로 내려가겠다고 하길래 어떻게 운전하려고 하냐고,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 아빠는 막무가내로 내려가야겠다고 했습니다. 아이 아빠는 아들이 물에 젖어서 추울 거라고 아들 옷을 챙기러 갔습니다.
엄마인 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경빈이 동생을 데리고 나와야 하는데 몇 학년 몇 반인지 생각이 안 나,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그 시간마저 너무도 길었습니다. 그렇게 경빈이 동생인 딸아이 데리고, 아들에게 1분 1초라도 빨리 가겠다며 딸 손을 잡고 아이 아빠에게로 뛰어 갔습니다. 아이 아빠와 만나 차를 타고 진도로 무조건 달렸습니다.
4월 16일 밤 11시... 결국 통곡하고 말았습니다운전하는 아이 아빠가 불안해 해서, 문자 메시지나 뉴스에서 전원 구조했다고 하니 조금만 차분하게 가자고 얘기하면서 가고 있었습니다. 친구 엄마에게 '인솔하는 분'이라며 전화가 왔다기에 연락처를 물어 전화를 했습니다. 현장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며 아비규환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심각성을 얘기했을 때, '아 뭔가 잘못됐다' 느꼈습니다.
하지만 운전하는 아이 아빠에게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아이 아빠는 이성을 잃고 내려가는 내내 눈물을 흘리며 운전하고 있었거든요. 이런 아이 아빠 때문이라도, 바들바들 떨면서도 저마저 이성을 잃으면 안 될 것 같아 정신만은 차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힘들게 힘들게 내려갔습니다.
결국 우리 사무실 동료 아이들 중에 여자아이 한 명만 생존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고, 다른 한 명의 여자아이와 경빈이는 세월호 사고의 희생자가 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의 생일날 떠난 여행…. 선물을 사오겠다며, 너무 해맑게 들떠서 떠난 여행…. 수학여행 가던 날 운동장까지 가서 손 흔들며 보냈는데 그것이 끝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답니다.
사고 첫날 밤 11시가 되어서 경빈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목포한국병원에 가서 확인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좋은 소식이 아닌 것 같다고, 다른 아이들은 살아있다고 하고 있는데... 더 이상 버티고 서있을 수가 없어 그 자리에서 통곡을 했습니다. 경빈이를 만나러 병원으로 향하면서도 제발, 제발 아니기를, 경빈이가 아니기를 빌었습니다.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와 버렸습니다. 그런데 경빈이가 어떻게 발견돼서 이렇게 오게 됐는지, 그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에는 심전도를 꽂았던 자국이 있는데 누가 어디에서 한 것인지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알아보니 이미 병원을 두 차례 거쳐왔다고 하는데, 기록도 없고 사진도 없다고 합니다. 해경이며, 119구조대, 병원 모든 곳을 돌아도 기록이 없답니다. 왜일까요? 저녁에 아이를 발견했다면, 사고가 난 시간이 오전인데 오후 6시 넘어서 찾았다면, 도대체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아이들을 왜 방치했을까요? 왜 구조를 안 했을까요?
오직 '진실 규명'...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뿐입니다사고가 일어난 지 170여 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경빈이가 사고 당시 얼마나 힘들었을까, 순간순간 떠오를 때마다 숨이 턱 막히면서 가슴이 아파옵니다. 주먹을 쥐고 가슴을 내려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고, 아이가 금방이라도 뛰어 들어올 것 같아서 기다립니다. 아들 생각이 나서 아직 주방에 들어가 음식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 아빠는 직장생활도 못하고 방황 아닌 방황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그만 하면 되지 않았느냐고, 세월호로 인해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세월호 유가족이 법과 질서를 무너뜨리고, 심지어 정치까지 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질책을 받게끔 언론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진실 규명만을 원한다고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도, 앞으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도 단호하게 외칠 것인데 말이에요. 진실이 꼭 밝혀져야 지금의 대한민국 모든 가족들, 청소년들, 우리 미래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에 부모인 우리가 이렇게 싸우고 있는데….
제발 지치지 말고 우리와 함께 힘내서 가시면 좋겠습니다. 우리처럼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이 후벼파지고 심장이 도려내지는 아픔을, 숨조차 쉽게 쉬어지지 않는 아픔을 안 겪기를 바랍니다.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정의사회, 깨끗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함께해주세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만들어요. 가만히 있으면 절대 바뀌지 않을 대한민국을, 부모인 우리가 모두 한뜻으로 이제 행동해 바꿔나가면 좋겠습니다.
맑은 날도 슬프고 흐린 날도 슬프고 가을이 오는 소리들도 슬프네요. 아들과 함께 주말마다 산에 올랐는데 언제쯤 그 산에 올라갈 수 있을는지…. 그 산을 오를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우리 아들 경빈이랑, 이 편지를 읽을, 자녀를 둔 대한민국 부모님들과 약속을 합니다.
약하지만 강한 경빈이 엄마 전인숙 드림.
* 다음 편지를 이어서 써주세요. 최성호 아빠 최경덕님, 전 와동중 1학년 6반 김광래 선생님, 고려대 김보영 학생, 가수 이승환님 부탁드립니다.
자상한 오빠 경빈이 |
* 전인숙 님은 단원고 2학년 4반 임경빈 학생의 엄마입니다. 임경빈 학생은 공부는 학교에서 알아서 한다며 부모님은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키던 아들이었고, 맞벌이 하는 부모님 대신 친구들 만나야 하는 시간을 뒤로 좀 미루고 동생에게 밥이나 라면, 계란프라이까지 챙겨주는 자상한 오빠였다고 합니다. 성격이 좋아서 친구들이 많았고 운동하고 게임하고 영화도 보러 다니면서 스승의 날은 꼭 은사님을 뵈러다닐만큼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랐습니다. 자주 아프던 엄마에게 꼭 지켜주겠다고 말하던, 누구보다 듬직했던 아들 임경빈 학생은 4월 16일 자정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