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가 넘쳐나는 10월입니다. 시골 고향집(구 이장님 댁)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받아먹은 것들만 챙겨도 적자난다고 궁시렁궁시렁 하시는 친정아버님의 소리가 멀리 사는 딸에게까지 들립니다. 더구나 이번주에는 여동생 칠순잔치가 있는데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나 안 갈란다'라고 심통을 내시는데,
"아니 아빠! 본인 칠순에는 멀리서들 다 와서 축하해 줬는데, 받아만 드시고 안 가면 되나?"이런 자식들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그날 입으실 옷을 받으신 후에 '내가 가야 잔치가 되지'하며 주말 잔치 투어를 결심하셨습니다.
그러고보니 울아부지 칠순잔치, 바로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때는 2009년, 하필이면 할아버지 생일과 하루 이틀 차이로 태어난 둘째 녀석 덕분에 양력으로 지내는 이 녀석 돌잔치와 음력인 할아버지 칠순잔치가 겹쳤습니다. 토요일은 돌잔치 그리고 일요일은 칠순잔치를 지내게 되어 정신이 쏙 빠지던 때입니다.
현수막 없이 타일벽을 배경으로 상을 차리고환갑잔치는 가족들끼리 식사로 대신했지만 그래도 칠순잔치는 친척들과 마을주민 몇명을 부르고 해야 섭섭하지 않다는 울아부지의 뜻에 따라 준비한 칠순잔치, 자식이 넷이니 준비는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잔치가 임박하도록 상 뒤에 붙일 현수막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던 주인은 슬그머니 다가와, 현수막 예약이 제대로 되지 않은것 같아 미안하다며, 대신 사회자를 공짜로 해주겠다며 설득했습니다. 뭐, 공짜라니... 잔치,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은, 케이크 커팅이었습니다. 근데, 뒤늦게 사진을 보고야 깨달았지만 마치 목욕탕 타일벽을 배경으로 칠순잔치가 열린 것 같았습니다. 또 예고 없이 터진 축포에 놀란 주인공의 표정까지... 그날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이 웃나 했는데, 그래서였던 겁니다.
칠순잔치의 하이라이트, 부모님 업어드리기갑작스레 '공짜'가 된 사회자가 잘하겠나 라는 의심은 잠시, 칠순잔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부모님 업어드리기 순서를 빼먹지 않았습니다. 아들 등에 업혀 한 바퀴를 돌아온 아버지. 이어 사회자는 설마 했던 어머님 업어드리기를 사위에게 주문했습니다.
당시 꽤나 무게가 나가시던 장모님을 업은 큰사위, 당당히 나갔다가 주춤했습니다. 그러자 작은사위가 뒤에서 장모님의 엉덩이를 받쳤고, 덕분에 안정된 느낌으로 워킹을 마쳤습니다.
그날 큰사위 등에 업히고 작은사위의 보필까지 받은 구 이장 사모님은 잔치에서 제일 신이난 분이셨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노래 한번 부르겠다고 하시기도 하고, 또 초대한 사람들 모두에게 상냥한 목소리와 함께 한잔씩 전하시며 잔치의 흥을 더하셨습니다.
구 이장 칠순잔치의 주인공, 구 이장과 구 이장 와이프십니다(동네 이장을 그만두신 지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구 이장'이라 불리우시는 걸 좋아하십니다). 칠순이란 연세에도 목에 맨 나비넥타이가 멋지고 귀여워보이는 울아부지.
구수한 입담과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친지가족들과 마을사람들을 재밌게 만들고 웃게 만든 사람. 당시 정신없이 연달아 치렀던 잔치,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도록 칠순잔치를 재밌게 만드신 주인공이십니다. 그 주인공 부부, 이번주에는 여동생 칠순잔치에 갑니다~!!
덧붙이는 글 | '잔치, 어디까지 해봤나요' 공모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