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한국의 거리는 영어 간판으로 도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진격(進擊)'이란 말을 자주 쓰며(예 : 진격의 파스타, 진격의 샐러드) 아무개 신문에서는 '간지터진다' 같은 해괴한 말도 마구잡이로 만들어 쓰고 있다.
우리말의 기본 담은 사전... 엉망이다일본어 전공자인 기자는 우리말 속에 아직도 똬리를 틀고 있는 "일본말 찌꺼기"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는 세태를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들어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표준국어대사전>이 민족적 자존심을 해치는 말을 슬쩍 한국식으로 풀이해놓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국민의례'다. 국민의례란 <일본위키피디아>에 따르면 "国民儀礼とは、日本基督教団が定める儀礼様式のことで、具体的には宮城遥拝、君が代斉唱, 神社参拝」である。" 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를 번역하면 "국민의례란 일본 기독교단이 정한 의례 의식으로 구체적으로는 궁성요배, 기미가요제창, 신사참배"로 풀이된다.
이러한 '국민의례'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공식적인 의식이나 행사에서 국민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격식,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따위의 순서로 진행한다"고 점잖게 풀이하고 있다.
일본말 '국민 의례'를 대신할 만한 말을 찾지 못했다면 이 말의 유래라도 밝혀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례'를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현재 국민의례는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부르기"가 전부인 경우가 많으니 식순에서 직접 '의례' 행동만 언급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일제 강점기에 황국신민용으로 썼던 '멸사봉공' '서정쇄신' '국위선양' 따위도 마찬가지다. 이 낱말 역시 모두 한국식으로 바꿔 설명해 놓으면서도 그 유래는 침묵하고 있다. '국위선양'은 아예 등재되어 있지 않다.
김연아 선수처럼 스포츠로 나라의 위신을 높이 올리는 일 등이 '국위선양'의 뜻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 말은 일본 명치 정부를 널리 알리자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많이 쓰이는 말이 빠진 것에 시비를 거는 게 아니다. 이에 대신 할 말을 찾지 못했다면 그 말을 싣되 그 뜻과 유래를 널리 알려주어 국민 스스로 더 좋은 말을 찾아볼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달라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국민의례'는 등재되고 '국위선양'은 없어 지난 2012년 11월 5일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에 "왜 '국위선양'이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 뜻을 알려 달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돌아온 답은 국위선양이란 "국위 + 선양"에서 온 말이며 유래는 모르겠다"고 했다.
'국위선양'이란 말은 단순한 4자로 된 한자 말이 아니며, 밑바탕에는 "명치정부"를 찬양하는 뜻이 내포된 말임을 모르고 답한 것이다. 답답한 노릇이다. 현재 국립국어원의 온라인가나다마당에 올라오는 질문 중 "일본말의 유래냐?"고 묻는 질문에는 거의 "모르쇠"로 답하고 있는 것도 많다.
문화적 표현 담은 쉬운 풀이 필요
두 번째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는 일본 사전 베끼기를 계속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동장군(冬將軍)'을 설명하기를 "겨울 장군이라는 뜻으로, 혹독한 겨울 추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했는데 일본국어사전 <다이지센(大辞泉)>에는 "ふゆ‐しょうぐん[冬将軍]:<モスクワに遠征したナポレオンが、冬の寒さと雪が原因で敗れたところから>冬の厳しい寒さをいう語。また、寒くて厳しい冬のこと。"로 되어 있다.
번역하면 "후유쇼군(동장군), 모스크바를 정복(원정)하러 간 나폴레옹(1812년)이 겨울 혹한과 눈으로 실패한 데서 유래한 말로 겨울 혹한을 이르는 말. 심한 겨울 추위 그 자체"라고 풀이하고 있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일컫는 '동장군'이란 말이 생긴 것은 1812년 이후의 일이다. 그럼 이 말이 들어오기 전에는 뭐라고 했을까?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중 한 사람인 계곡 장유 선생의 시문집 <계곡집(谿谷集)>에 보면 '현명(玄冥)'이라는 혹독한 겨울 추위를 나타낸 단어가 있다.
세 번째 문제는 낱말 풀이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원앙새 풀이를 보자. 일본사전에는 "원앙 한 쌍, 원앙은 항상 함께 다니므로 부부 사이가 좋은 경우를 비유적으로 말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오릿과의 물새. 몸의 길이는 40~45cm이고 부리는 짧고 끝에는 손톱 같은 돌기가 있다. 수컷의 뒷머리에는 긴 관모가 있고 날개의 안 깃털은 부채꼴같이 퍼져 있다. 여름 깃은 머리와 목이 회갈색, 등은 감람색, 가슴은 갈색 바탕에 흰 점이 있다. 여름에는 암수가 거의 같은 빛이나 겨울에는 수컷의 볼기와 목이 붉은 갈색, 가슴이 자주색이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지에 분포한다. 천연기념물 제327호"라고 생물학적 설명이 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부부금실이 좋음을 견주어 말한다"는 말은 빠져 있다.
부끄러운 표준국어대사전... 개선해야
일본 사전의 우수성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원앙에 대한 생물학적 사항은 일본 사전보다 잘 해놓았지만 정작 '원앙 금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부터 부부 금실이 좋은 새를 일컫던 원앙에 대한 문화적 표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문학적인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표현은 빼고 장황하기만 한 '원앙' 설명은 이대로 정말 괜찮은 것일까?
이 밖에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꽃이 피는 모습의 일본말 표현인 "총상화서(콩꽃), 원추화서(담배꽃), 육수화서(토란꽃) 등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그대로 옮겨 적고 있는가 하면, '양돈(돼지치기)' 같은 말을 일본말로 잘못 분류하고 있다. 그 대신 조선시대 때 중요한 국가 정책으로 말을 키우던 일 "양마(養馬)" 같은 말은 빠져 있는 등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민이 올바른 국어생활을 하려면 그 기본이 되는 사전이 충실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국립국어원이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은 부실함이 구석구석 노출되어 있다. 기자는 이러한 점을 지적해 <오염된 국어사전: 표준국어대사전을 비판한다>는 책을 낸 바 있다. 올해도 이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 없이 제568돌 한글날이 지나갔다. 안타까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신문 얼레빗과 대자보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