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적어도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다. 후다닥 세수하고 옷 입고 20~30분 운전하여 '××교회'라고 이름 붙여진 건물로 뛰어든다. 강단으로 가 그 밑에 쭈그리고 앉아 기도한다. 오전 5시가 되어 일어나 찬송 부르고 설교를 한다. 새벽기도회가 끝나고 집으로 오면 오전 7시가 다 된다.
그는 오전 8시쯤 아침을 먹고 다시 '××교회'로 출근을 한다. 오전 9시부터 직원예배, 목회자회의, 찬양제 준비, 교사회의, 양육교제 집필, 찬양 연습, 새 신자 교육, 성경공부 인도, 심방 등으로 바쁘다. 심방은 성도들 가정이나 일터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고 상담하는 목사의 주된 임무 중 하나다.
새새에 성경을 읽고 독서를 하며 설교를 준비한다. 그가 맡은 설교만 해도 일주일에 6번이다. 이 숫자는 아주 적은 경우다. 대부분의 목사는 일주일에 적어도 10번 이상을 설교한다. 일요일에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여러 번의 예배에 사회, 설교, 상담 등으로 하루 종일 파김치가 된다.
월요일이 휴일이지만 제대로 쉬는 적은 거의 없다. 장례식이다 행사다 해서 대부분 정상 근무를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오후 9시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는 한국의 도시교회 대부분의 목사 모습이다. 이런 목사에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목사조차 행복하지 않은 나라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 펴냄)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목사가 행복하면 나라가 행복할 수 있다. 내가 목사이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려니.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개개인이 행복하면 나라가 행복하다. 책에 따르면, 덴마크인들은 택시기사에서부터 의사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나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미국으로부터 직수입된 신자유주의 사고와 자본주의 논리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주류 사상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물질의 풍요가 곧 길이요 진리다. 경제발전이 곧 성공이고 법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게 이 나라의 슬로건이다. 이런 나라에서 숭고한 진리를 따른다고 하는 목사인들 행복하겠는가.
한국에서는 교회 사이즈가 목회의 성패를 나눈다. 교인 숫자가 목사의 영향력을 대변한다. 이게 바로 미국에서 들어온 기독교의 한계다. 그러니 경제 대통령 운운하는 것이나 대형교회 운운하는 게 무엇이 다르랴. 당연히 부자교회 목사는 부자 대통령 편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들이 일벌레, 권세벌레, 물질벌레인지는 몰라도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목사인 내게 많은 도전을 준다. 덴마크를 그다지도 행복하게 만든 사상의 근저에 목사가 있다. 80%가 기독교(루터교)도인 덴마크는 그룬트비의 '행복하려면 사랑하라'는 기독교적 교육철학이 지배하는 나라다. 그룬트비(1783~1872)는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목사, 신학자, 시인, 역사가, 정치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덴마크 중흥의 할아버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저자는 덴마크 교회가 예배 출석률은 낮지만 믿음이 이미 문화가 되어 사회를 꽉 채우고 있다고 말한다. 사랑과 신뢰도가 없이 교회를 꽉 채우는 한국교회와 10분의 1만 채웠지만 사랑과 신뢰로 다져진 덴마크교회를 비교하고 있다. 저자가 만난 튀센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덴마크는 가난한 사람이나 아픈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이 분명한 사회입니다. 그런 연대 정신의 핵심은 기독교의 '사랑'에서 왔다고 봅니다. 이 기독교 정신이 덴마크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관점에 매우 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147쪽)밑으로부터의 사랑이 회복되어야목사가 시키는 믿음과 자기 주도적 믿음, 둘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전자다, 덴마크는 후자다. 루터교가 국교인 나라에서 그룬트비는 설교권을 빼앗기는 사태를 맞으면서도 '자기 주도적 믿음'을 주장했다. 덴마크의 행복은 바로 스스로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기 주도적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덴마크를 닮자는 시도가 이미 우리나라에 있었다. 박정희 정권 때 '새마을 운동'이 그것이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이 슬로건은 그럴싸하다. 그러나 그룬트비의 생각과는 너무 다르다. 잘 사는 걸 경제부흥이라고 생각한 점이 다르다. 그룬트비는 평등, 자유, 사랑 등의 공동가치를 추구했지만, 새마을 운동은 오직 먹고사는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경제부흥은 이뤘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자살률 세계 최상위의 국가다. 그러나 아직도 경제부흥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으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형국이다. 정치가 그렇고 사회 전반이 그렇다. 심지어는 그룬트비처럼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해야 할 교회가 그렇고 종교가 여전히 '잘 살아보세'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일례를 들어보자.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는 일간 신문에 광고를 내 나라가 4월 16일로 멈추게 해서는 안 되니 농성도 서명운동도 그만두라고 했다. 그는 "세월호를 인양하기 위해서는 9000억이 든다"며 그 돈으로 유가족을 돕고 추모비를 세우자고도 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가 터지자 성금모금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고 성금 5천만 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보로 볼 때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신자유주의 사고는 목사에게까지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낮은 자, 힘들어 하는 자, 고통당하는 자의 이웃이기보다 나라 경제가 어떻게 되느냐에 깊은 관심이 있다. 이런 사고는 한 목사의 것만이 아니란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내가 목사다 보니, 그룬트비 목사의 실천적 이웃사랑 정신을 중심으로 썼다. 저자는 이외에도 덴마크 전반을 두루 살피며 그들이 왜 행복한지를 말한다.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이라는 여섯 키워드를 중심축으로 일터, 사회, 교육, 역사적 배경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분석해주고 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답은 '행복할 수 있다'이다. 각자가 행복하면 나라가 행복하다. 목사가 행복하면 성도가 행복하다. 택시기사가 행복하면 승객도 행복하다. 학생이 행복하면 교사가 행복하다. 국민이 행복하면 대통령도 행복하다. 그 반대도 같다. 그러나 문제는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다. '새마을 운동'이 아니라 '새 마음 운동'이다. 행복하기 원하는 당신께 일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펴냄 / 2014. 09. / 318쪽 / 1만60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