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한글박물관을 치면 국립 한글박물관이 나온다. 2014년 10월 8일 국가기관으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한글의 문자·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한글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관으로 성장할 것을 목표로 세워졌다. 용산구 가족공원 내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로 지어졌다. 2011년 5월부터 2013년 8월까지 2년 3개월간 326억 원의 예산을 들여 만들었다.
인터넷상에서 한글박물관을 검색하면...국립 한글박물관은 전시, 수장, 연구, 교육, 체험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인은 1층의 한글누리 도서관, 2층의 상설전시실, 3층의 기획전시실과 교육체험실을 이용할 수 있다. 개관기념으로 10월 9일부터 상설전시실에서 "한글이 걸어온 길", 기획전시실에서 "세종대왕, 한글문화시대를 열다" 전시가 열리고 있다.
상설전시실의 대표유물로는 훈민정음 해례본, 정조어필 한글편지첩, 공병우 타자기, 초등 국어교과서 '바둑이와 철수'가 있다.
그러나 국립과는 다른 사립 한글박물관이 있다.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 있는 우리 한글박물관이다. 이곳에는 고소설, 고문서, 목판본, 한글 가사, 민속품 등 1500점의 한글 관련 문화유산이 있다.
이곳에만 있는 유일한 한글 자료도 5점이나 된다. <어로불변(魚魯不辨)>, <충무공 행장>, <당문자승현록>, <부댱냥문열효록>, <응조가라>가 그것이다.
<어로불변>은 어자와 로자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고쳐주기 위해 만든 일종의 옥편이다. 어로불변이라는 말은 <동국정운>에 나온다. <충무공 행장>은 충무공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쓴 충무공의 간략한 일대기다. <당문자승현록>은 필사본 언문소설이다. <부댱냥문열효록>은 댱문열의 애국충정과 효행을 그린 필사본 언문소설이다. <응조가라>는 매를 주제로 한 가사집이다.
한글 고소설뎐을 준비하다
우리 한글박물관에서는 한글 창제 571돌(반포 568돌)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으로 <한글 고소설뎐>을 열고 있다. 한글로 쓰여진 고소설을 중심으로 고문서, 목판본, 한글 가사, 민속품 등 200여 점의 한글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10월 9일부터 2015년 8월까지 계속된다. 이번 전시의 포인트는 '민중과 함께 한 한글자료'다. 생활 속에서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 한 한글자료를 선별해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글 고소설은 갑오경장 이전에 한글로 쓰여진 소설을 말한다. 최초의 한글소설은 17세기 초에 나온 허균의 <홍길동전>이다. 최근에는 1511년(중종 11)에 채수(蔡壽)가 쓴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최초의 한글소설로 보기도 한다. 한글소설은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창작되어 유통되고 읽혀졌다. 우주적인 이야기를 담은 대설(大說)에 싫증난 사람들이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은 소설(小說)에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문으로 된 사서삼경 중심의 학문에서 <춘향전> <심청전> 같은 한글 소설로 관심이 옮겨졌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도덕과 윤리보다는 사랑과 효심, 배반과 복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한글소설은 남녀간의 사랑, 안타깝게 죽은 영웅 이야기, 여인의 한과 복수, 야사(野史) 등 당대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글 고소설은 작자미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시 소설은 쓴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쓸 정도의 필력이 있으려면 지식과 언어적인 소양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글소설의 저자는 평민보다는 사대부 또는 중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 소설은 처음에는 필사되어 전해지다가 18세기부터 방각본(坊刻本)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방각본이란 지방에서 인쇄된 판본으로 경판본, 완판본, 안성판본이 있다. 경판본은 한양에서, 완판본은 전주에서, 안성판본은 안성에서 출판되어 나왔다. 이곳에 전시된 방각본으로는 <홍길동전> <심청전> <춘향전> <뎐운치젼> <삼국지> <구운몽> 등 20여 점이 있다. 서포 김만중이 쓴 <구운몽>은 영조 임금이 읽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를 통해 한글소설이 왕으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읽혔음을 알 수 있다.
1900년대 들어서 방각본을 대신해 신활자본 한글소설이 나온다. 이를 일명 딱지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책의 표지가 딱지처럼 울긋불긋하게 인쇄되었기 때문이다. 또 이 소설책으로 딱지를 접기에 아주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딱지본 한글소설은 국수 한 그릇 정도의 싼 값으로 살 수 있어 육전소설(六錢小說)이라 불리기도 했다. 판형은 대개 4․6배판이었다.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딱지본 소설은 수십 종이 넘는다. 딱지본의 인기는 고소설에서 신소설로 계속 이어진다.
신소설은 새로운 문화 전파, 교육을 통한 계몽을 목적으로 쓰여졌다. 개화라는 시대상황과 계몽이라는 사명이 합쳐져 태어난 소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은 이인직의 <혈의 누>로, 1906년 <만세보>에 연재되었다. 문명사회에 대한 동경과 자유연애 결혼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고소설, 신소설로 이어지는 소설의 계보는 1917년 이광수의 <무정>이 나오면서 현대소설에 그 바통을 넘겨주게 되었다.
20년 이상을 한글 문화유산 수집에 몸 바친 사람
우리 한글박물관은 20여 년 전부터 한글 문화유산을 모으기 시작한 김상석 관장이 2009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 문을 열었다. 그동안 모은 한글자료는 모두 1500점이 넘으며, 그 중 200여 점만 선별해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는 생활 속의 한글자료를 주로 수집해 왔다. 고소설, 고문서, 목판본, 한글 가사 등 학술성이 있는 것도 있지만, 옹기, 도자기, 장기, 부적판, 상여 꼭두 등 민속자료까지도 수집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글박물관은 생활사 또는 자연사박물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 한글박물관은 대학 등 학술단체와 연계해 매년 전시회를 개최해 왔다. 2005년 <조선후기 언간>을 시작으로 이번 <한글 고소설뎐>까지 지속적으로 전시를 하고 있다. <조선후기 언간> 전시에는 송병필(宋秉弼: 1854-1903) 집안의 한글 편지가 전시된 바 있다. 2007년 김상석 관장은 구한말 일본공사를 지낸 인동식의 일기 29권을 공개했다. 이 일기는 1885년부터 1930년까지 45년의 삶을 기록한 내용으로, 일본여행기 <화동기행(和東紀行)> 등이 있어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2011년에는 한글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한글 수기(手記)문서'가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 이 수기에는 먹고살기가 어려워 딸을 노비로 팔 수밖에 없는 부모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2013년에는 새로 발굴된 조선말기의 음식조리서 <음식방문> 필사본을 중심으로 <한글 음식방문전>을 개최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던 명문접시와 주칠명문소반, 한글이 들어간 음식과 관련된 생활사 자료 약 200여 점을 전시한 바 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한글
우리 한글박물관에서는 현재 <한글 고소설뎐>이 열리지만 다른 볼거리도 많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물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자기와 옹기는 입체적이어서 눈에 띤다. 의류에 새겨진 한글작품도 여럿 있다. 윷놀이판과 부적판, 승경도판 등 평면적인 것도 있다. 3벌식 공병우 타자기도 보인다. 상여의 위에 설치하는 목각 인형 꼭두도 있다. 또 간판과 포장지도 상당히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 중 인상적인 것은 누가 뭐래도 한글이 들어간 청화백자다. 청화백자 자체로는 예술성이 떨어지지만 한글이 들어가 학술성이 높아졌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가갸거겨고교구규'가 쓰여진 단지가 있다. 서울 장안평에서 구입한 것으로, 100여 년 전 황해도 해주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가나다'가 쓰여진 등잔도 있다. 그리고 '가거라 三八선! 오거라 통일!'이라고 쓰인 항아리도 있다. 이것은 해방 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글 간판도 눈에 띠는데, 석유회사의 것이 많다. 석유 판매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 1900년대 전반기 작품이다. 이 간판을 통해 당시 미국의 솔표 쓰탠다드 석유회샤, 별표 택사스 회샤, 조개표 석유 등이 팔렸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간판에는 한글, 영어, 일본어, 한문이 있어 언어의 변천사를 아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목각 인형 꼭두는 한글소설 <구운몽>에 나오는 팔선녀를 상징한다. 이들의 이름은 영양공주 정경패, 난양공주 이소화, 진채봉, 가춘운, 계섬월, 적경홍, 심요연, 백능파다. 이번 전시에는 그 중 네 명만이 나와 있다. 이들은 망자의 시중을 드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망자를 북망산천 지나 극락으로 안내하고 호위하는 남자 꼭두도 있다. 이들은 대개 할아버지로 표현되어 있다.
전시장 한편에는 고소설을 대상으로 한 연구서, 사전, 단행본 등도 전시되고 있다. 또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포스터도 벽에 부착되어 있다. 9일 오후 개막식을 하고 난 후에는 고소설 낭독행사가 열렸으며, 간호윤 다산학술연구소장의 고소설에 대한 해설도 있었다.
간호윤 소장은 "고소설을 통해 선인들의 가치관과 생활상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당대 출판문화와 놀이문화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우리 한글박물관의 누리집은 http://www.hgnara.net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