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부평아트센터 달누리극장에서 '판소리유파대제전'이 열렸다.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가 주최한 이 행사는 44년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한다.
판소리유파대제전은 동편제ㆍ서편제 등 판소리 전승계보와 음악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공연으로, 이날 공연은 전석 매진으로 성황리에 끝났다. 10월 10일,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 사무실에서 김경아(41ㆍ사진) 인천지부장을 만났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공연, 관객이 화답해
"공연장에 못 들어오고 돌아가신 분들이 계셔서 정말 죄송했어요. 정성스럽게 공연을 준비하니까 효과가 있었나 봐요. 못 보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같이 공연하신 선생님들께 칭찬 많이 들었어요. 공연 분위기가 좋으니까 노래하신 분들도 신이 나셨어요. 신이 나니까 노래도 더 잘됐고요."판소리유파대제전은 매해 한 번씩 서울에서 열렸다. 각 유파를 대표하는 명인들의 소리를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권위 있는 행사다. 공연자들의 평균연령이 75세 이상이라,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명창들은 최고의 소리를 들려준다. 이 공연을 서울만이 아닌 전국에서 개최하기로 했고, 인천아시안게임을 맞아 올해는 인천에서 열었다.
"판소리는 객석과 무대가 따로 있지 않아요. 부르는 사람이 고조되면 관객들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여요. 하나가 되는 듯하고 관객이 가족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번 공연은 꼭 보고 싶은 사람만 왔으면 해서 일일이 티켓을 보내주고 연락했어요."모든 음악 장르에 자신 있던 소녀, 국악에 도전하다김 지부장은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년이 안 돼 서울로 와 대학 졸업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대여섯 살 때는 동네 가수였어요. 그때는 집집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아버지가 별표 전축을 월부로 사셨어요. 제가 5남매 중 막내여서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셨어요. 그래서 학교 오시는 것도 창피했고, 친구 아버지는 신식 음악을 듣는데 우리 아버지는 판소리를 듣는 것도 싫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영향으로 지금의 제가 있다는 걸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죠."김 지부장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반마다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고,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는 게 좋았다. 심지어 선생님들의 요청으로 교무실에서도 노래를 부르곤 했다. 당시 유행하던 김연자와 이선희의 노래를 주로 불렀는데, 장르 불문하고 모든 노래를 야무지게 소화했다. 그의 노래 공연은 중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교사들은 그가 당시 유명했던 고교생 가수 '문희옥'처럼 트로트 가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중학교 때 티브이로 우연히 국악 프로그램을 봤어요. 따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예사로 들리지 않았죠."때마침 국악예술고등학교에 다니는 선배들이 자신들의 학교를 홍보하러 방문했고, 중3 때 국악학원에 다니기 시작해 그 이듬해 국악예고에 입학했다.
"이런 길인 줄 알았으면 안 했어요. 너무 오만했죠. 판소리를 하는 건, 도를 닦는 것 같아요. 알수록 어려워요. 판소리는 성음을 만들어야 해요. 공력이 있어야 몇 시간씩 노래를 해도 목이 상하지 않아요. 10년쯤 했을 때는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죠. 벼가 익을수록 고개가 숙여진다는 게 진짜 맞아요. 할수록 어렵고 두렵습니다."김 지부장은 80세 명창의 판소리 공연을 보러간 적이 있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한 공연이었는데, '득음을 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 노인은 '글쎄요. 제가 아직 득음을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입으로 그리는 그림, 판소리판소리는 '이야기가 있는 노래'다. 완창을 하면 8시간까지 걸리기도 한다. 판소리 사설은 판소리를 글로 엮어 가사로 만든 것을 말한다.
김 지부장은 "사설을 보면 한시를 인용해 멋있는 부분이 많아요. 사설을 풀어서 노래를 하면 그림이 그려지는 듯해요"라고 말한 뒤, '춘향전'의 한 대목을 들려줬다.
"어때요? 경치가 그려지나요? 판소리는 입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이에요. 소설을 읽으면 상상이 되잖아요. 판소리도 노래를 부르면 그림이 그려져요."'춘향전'에는 남원 오리정에서 이몽룡과 춘향이가 헤어지는 부분이 있다.
"서방님이 말을 타고 떠나는 부분이 나오는데 춘향이가 보기엔 그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는 거예요. '춘향이 기가 막혀 가는 임을 우두머니 바라보니 달만큼 보이다 별만큼 보이다가 나비만큼 보이다가 십오야 둥근 달이 떼구름 속에 잠긴 듯이 아조 깜박 박석치를 넘어가니 춘향이 그 자리에 법석 주저앉아'라는 부분이 나와요.그냥 글로 보는 것과 판소리로 듣는 거는 엄청 다르죠.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무너지는 거 같아요. 달에서 별처럼 작아지다가 나비만해지는 거죠. 나비만큼 보이는 게 어떤 거냐면 나비가 날개를 폈다가 접었다하니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는 거예요. 얼마나 멋있어요? 점점 애가 닳는 춘향전 '이별가'의 클라이맥스라, 노래는 최고조가 되고요."북 하나가 50여 명 오케스트라보다 훨씬 풍요로워판소리에서는 '1고수 2명창(一鼓手二名唱)'이라 해서 고수의 기능을 매우 중요시해왔다. 고수는 지휘자 역할도 하고 창을 부르는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기도, 힘이 되는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판소리는 오로지 북 하나에 의지해서 하는데, 중간에 삐꺽 거리면 노래를 할 수 없어요. 고수들도 좋은 팔자는 아니죠. 스포트라이트는 판소리 하는 사람이 받는데, 잘 하는 건 당연한 기본이고 못하면 공연 망쳤다고 죽일 놈이 되죠."김 지부장은 50여 명의 관현악 오케스트라와 춘향가의 눈대목(판소리의 가장 대표적이거나 극적인 상황인 대목)을 협연한 적이 있다. 곡도 좋고 음악적으로 공이 많이 들어간 대목인데, 오케스트라가 북 하나를 이기지 못했다.
"잘 모르는 사람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밋밋하지 않아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판소리를 가둬놓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렇게 저렇게 자유롭게 노래를 해야 하는데 악보에 갇힌 듯했죠. 악기 여러 가지가 합쳐지면 더 풍요로워져야하는데 오히려 북 하나 놓고 하는 게 훨씬 풍요롭게 느껴지는 거예요. 판소리는 정말 대단한 음악입니다."오선지와 계이름이 없는 판소리는 서양음악과는 달리 악보가 따로 없다. 구심전수(口心傳受)로 스승한테 배운 대로 온몸으로 체득해 내 것으로 만든다.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배우는 음악이다.
역시 사람이었네단국대 국악과를 졸업한 김 지부장은 15년 전 인천민예총의 요청으로 인천에 내려와 교육을 한 적이 있다. 부천에 사는 언니도 있어,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 인천에 살고 있다.
"인천에 와보니 좋은 사람이 많더라고요. 정이 많이 들었어요. 역시 사람이에요."그러나 사람들이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25년간의 판소리 생활에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사람 때문이었다.
"판소리가 힘든 건 사실이지만 연습하거나 공연하면서는 힘들지 않아요. 판소리 세계에서 정정당당하게 평가받는 게 아닌 여전히 편법과 인맥이 살아있는 문화는 견디기 힘들죠."그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중이다.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상이 걸려있는 국악제가 7개 있다. 그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이 '임방울 국악제'이다. 김 지부장은 작년과 올해 2회 연속 수상했다.
"가장 행복할 때는 공연이 잘 됐을 때예요. 열 번을 한다면 평균 여덟 번은 괴롭고, 두 번 정도 잘 되는 거 같아요. 한 번은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공연했는데 어떤 분이 주차장까지 오셔서 노래 정말 잘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연락처를 받아 인천이나 다른 지역 공연 때 몇 번 연락을 드렸더니, 먼 곳까지 와주시는 거예요. 고맙고 행복하죠."내년에 인천 최초로 완창을 할 계획을 갖고 있는 김 지부장은 "판소리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일단 와보세요. 한번 와보시면 그 느낌을 알 거에요. 어떤 음악이 이렇게 교감이 가능할까요? 처음 봤는데도 내 마음을 다 읽고 있는 거 같다니까요. 방송매체를 통해 들으면 거리감이 느껴지고 다른 나라 말처럼 전달이 잘 안 돼요. 공연현장에 오면 달라요. 가사도 들리고 깊은 교감이 됩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