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은 숨을 내쉴 때마다 머리가 띵하다. 숨을 들이쉬면 허벅지와 어깨에 묵지근한 통증이 전해온다. 종아리는 아까부터 당겨서 한발 한발 움직일 때마다 그 통증이 뒤통수를 때린다. 근육통과 리듬을 맞춰 땀이 툭툭 떨어진다. 굵다. 이미 쉴 새 없이 배어 나오는 땀으로 온 몸에 옷이 달라붙어 질척거린다. 땀은 아무리 닦아내도 또 방울방울 떨어진다. 눈썹에 매달린 땀을 닦는 것도 귀찮다. 그저 등에 진 배낭을 내려놓고 다리쉼을 했으면 좋겠다. 그때 머리꼭지가 환해지는 느낌이다. 내내 발 끝에 둔 시선을 들어 위를 쳐다본다. 비탈길 끝이 탁 트였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파란빛이 남은 10월의 하늘이 보인다. 그렇게 학도암에서 출발하고 30여분. 불암산 능선에 올라섰다.
동호회 게시판에 산행이 공지된 것은 이틀 전. 평소 같으면 그것은 그림의 떡. 18개월 애가 있는 처지에 동참을 한다는 건 무한도전. 산으로 도망은 칠 수는 있으되 뒤에 터져 나올 아내의 타박을 어찌 견디리오. 하지만 난 떠나와버렸다. 아내와 몇 주째 냉전 중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냉전 중에 전쟁터를 버리고 도피행을 감행한 만큼 확실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크게 낭패를 볼 것이다. 나름 계산은 있었다. 차가운 산바람을 맞으면 복잡하게 얽힌 머릿속이 좀 풀릴까 싶었다. 무엇보다 해결책을 얻고 싶었다. 냉전을 끝낼 열쇠.
남자 셋이 모여 학도암 뒷길을 통해 불암산의 어둠속으로 들어갔다. 예의 산행이 그렇듯 처음 비탈이 가장 고역이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왜 여기서 생고생 중? 이라는 말조차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힘을 쓰고 땀을 쏟고나서 찬 물 한 모금 마시면 그제야 정신이 들고 몸이 풀린다.
그렇게 능선에 올라서니 달이 환하다. 가로등 사이로 보는 달이 아니다.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본연의 달. 보는 이의 가슴을 데우는 밝은 달이다. 도시의 달이 그저 배경이고 조연에 불과하다면 능선 위에서 바라보는 달은 세상의 중심이고 주연이다. 게다가 소나무 가지에 걸린 송월이니 산행길은 내내 낭만길이 된다. 길을 걷는 동안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 아마도 이래서 닭이 밝으면 도깨비에 홀리고 늑대도 사람이 된다고들 했는지 모르겠다.
불쑥 도깨비 타령을 하는 이유가 있다. 선두에 섰던 노원구 주민이 길을 잃고 나폴레옹이 되었기 때문이다. 불암산 밑에 살며 수시로 드나드는 길이라 손바닥 보듯 할 텐데도 능선산행 20여분 후 헬기장에서부터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내려갔던 길을 두 번이나 다시 돌아왔다. 필시 황홀한 달빛에 마음을 두고 온 탓이리라.
원래의 목적지는 포기. 차선책으로 강북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바위 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자리를 폈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한다. 아파트만 즐비한 삭막한 풍경이 어둠이 깔리고 불빛이 깜빡이니 레드카페 위에 선 여배우의 드레스 못지 않게 화려하다.
그 화려함 속에서 나는 인생 선배들께 질문을 퍼 부었다.
'여자는 알 수 없는 존재라 답답합니다. 어찌 하면 좋을까요?'
나의 우문에 형들은 한 목소리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여자는 끝내 알 수 없는 존재임을 자인하고 그저 위하라.'
그 답이 나오기까지 앞서 이어졌던 형들의 인생경험담. 세월을 꾹 눌러 짜내어 농축시킨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깊은 식견이 녹아 있었다. 하지만 다툼으로 내상을 입은 남자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공감은 하지 못한다. 형들에게 몇 번이고 되묻지만 아내를 이해하고 나 스스로도 설득시킬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더 큰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토해냈다.
나에게는 큰 일이나 남에게는 사소한 갈등. 어쩌면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인데 두 인생 선배는 귀기울여준다. 내 말 들어주는 사람 있고 소리쳐도 핀잔 주는 이 없다. 나는 신이 나서 실컷 떠들었다. 요즘은 술집에서도 그렇게 크게 떠들면 쫓겨날 거다. 하지만 산자락에 깃든 작은 인간이 목소리를 낸들 얼마나 클까. 산들바람에도 묻히고 만다. 걱정 없다. 그렇게 외침 아닌 외침을 하고 조언을 듣고 또 외쳤다.
"부부관계란 게 너처럼 논리적으로만 접근해서는 해결이 안 나. 지금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우리한테 속이나 풀어."
끝내 형들의 명언에도 설복당하지 않는 나에게 돌아온 말이다. 맞는 말씀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에서 정답이 어디 있겠나. 그저 내 속 풀고 여유가 생기면 그 여유 안에서 상대를 보듬어 주는 것일 뿐이지. 형들 덕분에 깨우침과 약간의 아량이 생긴 듯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몸이 개운하고 머리는 가볍다. 내 마음속에서 이미 냉전은 끝이 났다. 부부싸움이 다 그렇듯 우리의 투닥거림도 그 시작이 사소하다. 그 만큼 누구 하나가 먼저 말만 걸어도 스르륵 풀리고 말 일. 산에 오르기 전에도 알았고 형들의 조언을 듣기 전에도 알고는 있었으나 꼭 이렇게 한바탕 속풀이를 해야 먼저 싸움을 끝낼 용기가 생긴다.
산에 오길 잘했다. 큰 짐을 내려 놓고 나는 다시 불암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본분을 외면하고 도망쳐왔으니 어서 내려가 집안에 평화를 되돌려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내와 약속한 귀가 시간을 맞춰야 한다. 덕분에 장딴지에 힘 꽉 주고 또 땀 한바가지를 쏟으며 서둘러 도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