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유치원에서는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각자 한 일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한 주에 네다섯 명의 친구들이 주말에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사진과 함께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린이집을 포함, 유치원 5년차인 둘째 녀석은 다른 주말과는 달리 유독 발표가 있는 주말엔 뭔가 눈에 보이는 실적(?)을 올리고 싶어 합니다.
발표를 앞둔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아빠가 토요일에도 일하는 바람에 일요일에서야 비로소 모두 모일 수 있었습니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집 근처에 나가 자전거를 탔습니다. 이 자전거 타기로 말하자면, 요즘 둘째 녀석이 가장 흥미로워 하는 대상입니다. 유치원 등원시간에도 쪼르르 타고 가고 하원시간에도 '자전거 좀 끌고 오지, 왜 그냥 왔냐'고 투정부릴 정도로 요즘 폭 빠져있는 놀이입니다.
자전거 사랑에 대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얼마 전까지 유아용 자전거에 보조 바퀴를 메달고 타던 녀석은 어느 날 유치원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친구로부터 들은 "너 아직까지도 보조바퀴를?" 이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며 자전거 타기 잠정 중단선언을 했습니다.
그랬던 녀석이 언니를 따라 자전거를 몇번 타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보조바퀴를 떼고 탈 수 있게 되었고, 또 조금 더 큰 자전거를 시도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이 녀석의 머리 속에는 온통 자전거 생각뿐입니다. 그러니, 이번 주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큰 자전거 승차 시도'가 될 거라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오후에 집 근처에 있는 박물관에 다녀와야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자전거 타기는 너무 시시한 거라 발표하기 싫고, 박물관에 다녀온 얘기를 해야겠으니 박물관에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박물관이라 처음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다녀온 곳을 무엇하러 또 가느냐, 발표를 위해서라면 자전거 타기로 하자고 설득해도 막무가네... 어쩔수 없이 아빠랑 둘이서 박물관을 다녀오고, '주말 지낸 이야기'의 주제는 '박물관에 갔다왔어요'로 정했습니다.
어처구니 없어하며 그동안 아이가 가져온 주말 지낸 이야기 그림을 보았습니다. 다양하게 주말에 어디 다녀왔다, 무엇을 했다 라고 그려진 그림들 사이로 눈에 띄는 그림이 하나 있었습니다.
'집에 있었어요' 사실 주말에 집에 있었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도 없고,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편히 잘 쉬었겠다 싶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 그림이 왠지 모르게 계속 맘에 걸렸습니다. 엄마 아빠가 주말에 모두 일해야 해서 부모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 괜시리 속이 상해지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주말은 말 그대로 주중에 바쁘게 살아가던 것을 멈추고 쉬기도 하고, 또 가끔씩은 아무 일도 안 하고 편히 집에서 쉴 수도 있는 건데 언제부터인가 어른도 아이도 무엇인가 해야만 하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자연스럽게 주말에 뭘 했는지 실적(?)이 필요해지는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을 조금씩 눈치 채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조금은 씁쓸해졌습니다. 녀석의 보여주기식 주말 지낸 이야기, 앞으로는 특별하지 않더라도 너만의 생생한 체험과 감동이 있는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꼭 알려주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