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알바연대·알바노조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만난 첫 인터뷰이는 공교롭게도 과외하던 학생 중 하나였다. J는 교사가 되고 싶어 성적에 맞춰 사범계열로 진학했지만, '비주류 대학', '비주류 전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외같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자주 가던 집 근처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 글은 J와의 첫 만남 이후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 기자말 2009년 수능 시험을 보고 난 뒤 얼마 안 되어 알바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친구와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는데 그 가게에서 일했다. 자주 가다보니 사장님 부부와 친해졌고 '수능보고 나면 여기서 알바를 하겠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는데, 농담이 진담이 된 것이다.
다양한 커피 음료를 만드는 법과 간단하게 쿠키를 굽는 법도 배웠다. 카페는 지하에 있었지만 공간이 넓은 편이었고 비흡연구역이었다. 때문에 주로 학생들이 공부를 하거나 동네 아줌마들의 놀이터 공간이 될 만큼 나름 쾌적했다. 또 집과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오후 11시에 마감을 하고 집에 가더라도 따로 차비가 들지 않았다.
내가 들어간 대학의 역사교육과는 임용고시 합격률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대신 1학년 때부터 교수들이 엄청나게 공부를 시켰다.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기도 벅찼다. 중고등학교 때 학생회 활동을 해서인지 대학에 들어가서도 학생회 활동을 하고 싶어 학생자치기구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기도 하고 활동이 잘 맞지 않아서 그만 두었다.
여전히 알바는 계속되었다. 엄마 혼자 돈을 벌어서 등록금을 제외한 용돈까지 달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카페에서 일을 했고, 주말에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카페에서 일했다. 사장님 부부는 이모, 삼촌처럼 정말 잘 대해줬다. 근로계약서 같은 것은 쓰지 않았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도 없었다. 시급 외에 딱히 주휴수당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그 때 나는 주휴수당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정식으로 알바를 하지 않을 때도 가게에 일할 사람이 필요하면 가끔 가서 일을 도와주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새로운 매장을 오픈한 사장님 부부는 나에게 오픈 멤버로 일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학교와 매장이 가까웠고, 직원으로 채용하겠다는 말에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4대보험을 들어줬고, 학교를 다니는 내 편의를 봐줬으며, 고용보험 환급과정으로 개설된 바리스타 교육 과정도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주변 사람들이 내 전공과도 맞지 않는 카페 알바를 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처음부터 카페 알바를 시작했고 다른 알바를 구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부분 처음 시작한 알바와 비슷한 알바들을 전전하는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임용고시를 보지 않겠다며 객기(!)를 부리며 영화관에서 알바를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내가 한 알바들은 모두 카페 알바였으니 말이다.
힘들고 고되었던 대기업 영화관 알바
대학교 4학년, 다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때 나는 C영화관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교생실습 단 한 달 만에 교사의 꿈을 접어버렸다. 그만큼 힘들었다. 그리고 나서 방황하던 그때 친구가 극장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내가 일한 곳은 기존에 있던 영화관을 인수하면서 재오픈을 앞둔 지점이었다. 지원서를 넣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전국에 체인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극장이었다. 이곳은 체계적으로 알바들을 관리했다.
알바들은 여러 분야를 맡는데, 크게 플로어, 영사, 정산의 일을 담당한다. 영사와 정산 업무는 이름만 보더라도 딱 정해진 업무가 있다. 반면 플로어 알바는 하는 일이 아주 많다. 매표 발권, 매점 판매, 로비 관리, 수표 및 영화관 청결유지, 고객서비스 응대 등 모든 업무를 해야 한다.
로비 청소를 하거나 영화관 청결을 유지하는 업무는 그나마 쉬운 편이다. 문제는 매표 발권이다. 할인되는 카드가 200여종인데, 발권시 할인되는 카드는 표를 보고 확인해 줄 수 있지만, 청구 할인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요일에 따라 할인되는 카드도 있고, 포인트로 돌려주는 카드도 있고, 제휴포인트로 결제가 되는 것도 있다. 고객들에게 제대로 안내와 응대를 하지 않을 경우, 컴플레인이 쏟아지기 때문에 매표 업무를 볼 때면 언제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매점 알바는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매점에서는 어떠한 박스도 바닥에 놓을 수 없으며 모든 물건은 진열해야 한다). 또 화상의 위험도 있었다. 상영관 관리를 할 때는 시간별로 온도와 습도를 체크해서 위에 보고를 해야 했다.
업무만큼 엄격하게 정해진 것은 복장이었다. 유니폼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머리는 망으로 묶어야 했고, 정해진 립스틱 브랜드와 색상이 있었으며, 검정 구두에는 장식이 없어야 했다. 출근 첫날 나는 구두 장식을 지적받았고, 결국 떼어냈다.
다양한 직원 혜택, 어쩌면 빛 좋은 개살구물론 대기업답게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거나 하는 사례는 없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오후 10시 이후에는 야간 근로수당을 지급했고, 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 연장근로수장을 줬다. 심야상영(자정 12시 이후 마감)을 담당하면 하면 교통비를 지급했다.
시급에는 주휴수당이 포함되어 있어 최저임금보다 높았으며(그래봤자 2014년 기준 시급 6260원) 4대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었다. 1년 이상 근무 시 퇴직금을 준다. 이곳에서 나는 알바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월급명세서'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년 이상 장기 근무하면 본사 채용 시 서류전형 면제 혜택도 있어서 부러 이곳에서 알바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교육생 신분을 떼고 정식(?) 알바가 되면 혜택도 다양하다. 나는 운이 좋게 교육생 신분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정식 알바가 되었는데, 이때 명찰과 OOOO카드가 나온다. 이 카드로 한 달에 영화 10편을 무료로 볼 수 있다.
물론 조건이 있다. 주중 영화여야 하고 4D영화는 볼 수 없으며 잔여좌석이 20% 이상 되어야 매표가 가능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매점 할인율도 높은 편이다. 만약에 징계를 먹거나 하면 이 카드가 정지되기 때문에 평소 근태 관리도 철저해야 한다.
다양한 직원혜택 뒤에는 불합리한 정책들도 있었다. 내가 일했던 지점은 정해진 스케줄 없이 매달 매니저와의 면담 후에 근무일정이 정해졌다. 면담에 참여하지 않으면 애매한 시간에 스케줄이 배정되었다. 어느 달에 대타 등을 뛰어서 급여가 평소보다 많으면, 형평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로 그 다음 달에는 근무스케줄을 줄였다. 또한 알바가 해야할 업무가 다양하다보니 그날그날 내가 어떤 업무에 투여될지 모르는 것도 문제였다.
근태 기록이 알바 후에도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켜 해고된 경우에는 다른 지점에서 근무하는 것은 물론, 본사 입사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본사 입사를 꿈꾸려고 한다면 아예 C멀티플랙스에서는 근무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도 생겨났다고 한다. 일의 만족도도 높고 재미도 있었지만 6개월 만에 일을 관두었다. 순환되지 않는 공기 덕에 아토피 피부염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비전 없는 알바, 다시 임용고시의 길로대학을 졸업을 하고, 무엇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집 근처 카페에서 다시 알바를 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였지만 주휴수당도 없었고, 시급도 높은 편이 아니었다. 경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최저임금보다 높은 급여를 받았는데, 사장은 시급에 주휴수당이 포함되어 있다고 강조를 했다. 그러나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금방 관두었다.
요즘 나는 학교에서 한 달 반 남은 임용고시 준비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임용고시. 한 번에 붙을 수 있을까. 떨어질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내 인생의 두 번째 수능시험 같다. 서울시 공립 중등교사 임용고시 사전예고에 의하면, 내가 지원하고 있는 분야의 선발인원은 10명 남짓이다. 그 안에 내가 들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강서희 님은 알바노조 홍보팀장입니다.
- 이 글은 월간 <좌파> 2014년 10월호에서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