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재보강 : 22일 오후 8시 54분]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와 그 가족을 비판하는 글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 검찰이 정몽준 전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아들의 '국민 미개' 발언 등을 비판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20대 남성을 기소해,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불거질 조짐이다. 본인이 혐의를 자백했지만, 글의 내용이나 대법원 판례에 비춰볼 때 의아한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1부(부장검사 이현철)는 22일 전아무개(26·대학 휴학 중)씨를 후보자비방죄(
공직선거법 251조)로 전날 기소했다고 밝혔다. 그가 정 전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 후보자와 그 가족을 비방하는 글을 작성했다는 이유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정 후보자 쪽을 비판하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4월 21일 정 후보의 아들이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두고 "미개하다"고 했을 때(관련 기사 :
정몽준 아들, 세월호 실종자 가족 향해 "미개하다" 글 논란)와 5월 9일 정 후보 부인의 불법선거운동논란이 불거진 직후였다(관련 기사 :
정몽준 부인, '국민 미개' 아들 발언 두둔 논란 확산).
4월 22일 : "정몽준 의원은 미개한 국민들 상대로 7선 의원을 했고, 미개한 국민들 교통비 70원 아니냐 해놓고 욕먹으니 해명하겠다고 자기도 쓴다고 <학생용> 버스카드들과 '미개한 쇼'하던 전적이 있었는데 최후의 양심이 있다면 후보 자진사퇴하길. 7선 했음 됐지." 4월 23일 : "몽심지심… 국민 미개 + 시체 팔이 시장 후보와 논객 직함… 새민련 야당은 새누리에 정몽준 후보 사퇴를 촉구해야 한다." 5월 9일 : "정몽준 부인 선거법 위반ㅋㅋㅋㅋㅋㅋㅋㅋ 몽가루 집안이래 ㅋㅋㅋㅋㅋㅋ 온가족이 정몽준 안티라고 ㅋㅋㅋㅋㅋ" 대법원 판례 "경멸적 표현... '사실적시로 후보자 비방' 아냐" 그런데 대법원은 후보자비방죄가 성립하려면 ▲ 특정 후보를 당선 또는 낙선시킬 목적으로 ▲ 사실을 적시해 후보자와 그 가족 등을 비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목적성을 판단할 때에는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판시했다.
1997년 대법원은 15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 박지원 국민회의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그를 비방하는 글을 PC통신 커뮤니티에 게시, 후보자비방죄로 기소당한 A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가장 많은 저질 발언을 한 박지원이 수필집을 썼다니 우습다, 박지원이 과거 전두환 정권에 붙어 아부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 등의 내용이 담긴 A씨의 글은 주관적 평가라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또 A씨가 평범한 은행원으로 평소 정치 분야 등에 관심이 있어 관련 글을 작성한 점 등을 볼 때 그에게 '박지원 후보 낙선'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씨 사례처럼 트위터 글 때문에 후보자비방죄로 기소된 김문수 서울시의원 역시
무죄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는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계정에 "서울 성북갑 정태흥 (통합)진보당 후보 완전 맛이 갔다, 진보당 후보가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민주당 유승희 후보를 이기려고 정태근 무소속 후보와 연대하는 모임에 참여했다"는 글을 작성, 정태흥 후보를 비방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런데 1심부터 항소심,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재판부는 "경멸적인 표현을 사용, 사실 적시에 의한 후보자비방죄가 성립한다"는 검찰의 주장을 단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황식 지지자, 트위터 영향력 고려" - "사실 말고 견해 썼을 뿐이다" 물론 검찰은 이번 기소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검찰 관계자는 22일 오후 기자들에게 "이번에 사이버사찰 논란이 있고, 하필이면 정몽준 후보 일이라 굉장히 특이해 보이는 것 같은데, 몇 가지 오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씨는 트위터 팔로어를 약 20만 명 거느린 사람으로 트위터의 파급력이 강하고, 스스로 김황식 전 총리 지지자라고 했다"며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정몽준 후보가 김황식 전 총리에게 심하게 해서 화가 났고, 정 후보의 공천 탈락을 바라는 마음에 그런 글을 게재했다'더라"고 밝혔다. 전씨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또 전씨가 쓴 글이 많지 않고, 비방정도가 심하지 않은 편인데도 정식 재판에 들어간 이유는 법 때문이라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을 구형하려고 해도 법률상 공판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며 "대신 전씨가 혐의를 자백한데다 반성하고 있으니 합당한 범위 내에서 구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씨의 행동이 후보자비방죄의 요건을 충족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사실을 적시해야 후보자비방죄가 성립하는 것인데 전씨 글은 수위가 다소 과한 견해일 뿐"이라고 말했다. 기소 자체가 모순이란 뜻이다. 그는 또 글의 내용은 당시 언론이 보도한 사안인 만큼 유권자로서 충분히 거론할 수 있고, 사적인 내용이 아니므로 공익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후보자비방죄 자체도 논란거리다. 박 교수는 "검찰이 형법상 모욕죄의 선거법 버전으로 후보자비방죄를 쓰고 있다"며 사실을 말하더라도 처벌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후보자비방죄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008년 후보자비방죄를 공직선거법 독소조항 중 하나로 꼽으며 폐지를 청원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공직선거법 독소조항 폐지해야" )
한편 정몽준 전 후보 측은 "선거 때 발생한 지나간 일로 곧 고소를 취하할 예정"이라며 "사법당국이 선처해 주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