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학교에서 수학과 연구수업이 있었어요. 이름이야 그럴 듯했지요. '스토리텔링 수업'이라고 했으니까요. 아무튼 며칠 동안 열심히 연습하여 각본대로 잘 끝냈어요. 물론 수업 시간에는 한 명도 졸지 않았고, 지정된 몇 아이들은 정확하게 발표할 때 발표했으며, 가끔 웃음이 필요한 지점에서는 다들 정말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 줬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종소리가 울리고 수업이 끝나고 반장이 차렷 경례 인사하는데 뒤에 앉아 계신 분들이 박수까지 치더라고요. 뒤를 돌아보니 교장, 교감 선생님, 멀리서 오신 장학사 선생님들 모두 만족하신 표정이었으니, 우리 잘한 거 아니에요?
그러고 나서, 다음 시간부터는 예전의 풍경으로 돌아갔어요. 잘 놈 자고, 들을 놈 듣고. 그런데도 불쌍한 우리 쌤은 열심히 뭔가를 가르치고.
"어른들도 우리처럼 수학을 포기하고 싶었대요"우리는 학생들이나 선생님을 제외한 일반인들이 수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알고 싶어서 길거리 인터뷰에 나섰어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내 중심가에서 패널을 들고 스티커 응답을 부탁하면서 가능하면 많은 분과 인터뷰도 했지요.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으며 대학생, 주부, 회사원 등 직업도 다양했지요. 다들 수학은 너무 어려웠다고 했으며, 도대체 써먹을 데가 없는 그런 수학을 왜 그리 열심히 하라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 중에서 스스로 예비군 2년차라고 하는 박아무개(20대, 덕충동)씨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지요.
- 학창시절에 수학 공부를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하셨나요?"이과였으니까 거의 4시간 가까이 했죠. 수업시간 제외하고는 수학에만 매달리다시피 했어요. 학교 야자 때도 하고, 학교 끝나고 독서실에서도 하고."
- 수학 공부가 재미있던가요? "전혀! 솔직히 힘들었죠. 미분 거꾸로가 적분이고 적분 반대가 미분이잖아요? 막상 미적분 배워봤자, 100℃짜리 커피가 70℃까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7분이라면, 그 7분 계산하려고 공부하는 건데, 이런 게 고등학교 과정에서 필요할까요? 정말이지 말이 안 돼요.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미적분 가르치는 곳은 일본하고 우리나라 둘밖에 없어요."
- 그렇게 어려운 수학, 사교육 없이 혼자 하셨나요?"아니에요.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을 드나들었죠.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 없이 수학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러다 중학교가 되면 이게 더 심해지고, 고등학교 때는 아마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은 다들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 받았을 거예요. 선생님도 그걸 전제로 가르치는 분들이 많았으니까요."
- 독학으로는 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제 여자 친구가 독학을 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1등급을 받더라고요, 신기하게. 근데 2학년 때부터 밀리더니 3등급까지 내려간 거예요. 사교육 없이 혼자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느꼈죠."
"저 많은 '수포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우리는 학생들이 수학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여수 관내 5개 고등학교 2학년 문·이과 각 3개 반(242명)을 대상으로 하여 설문조사를 해 보았어요.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이 학교수업을 마치고 새벽 1시까지 버틴다 하더라도 하루 4~5시간 정도밖에 공부할 수 없는데, 그중에 2시간 동안을 수학에 투자하고서도 수학이 싫다고 하는 학생이 51%라는 사실은 충격이었지요. 그래서 결국 수학을 포기하게 되고, 이 '수학포기(수포)'가 급기야 '공부포기(공포)'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하였어요. 그래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만나서 속이야기를 들어 보았어요.
- 학생들이 생각하는 한국 수학의 방향은?"수학은 쉬워져야 해요. 꼭 필요한 게 아니면 뺄 것 다 빼고, 문제도 괜히 비비꼬지 말고 쉽게 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냅다 문제만 푸는 그런 수업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활동도 하며 수학을 재미있게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그 복잡하고 어려운 교과서는 그대로 둔 채, 스토리텔링이니 뭐니 하며 우리를 더 성가시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충무고 ㄱ 학생)
"미분과 적분, 기하와 벡터같이 실생활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분야는 과감히 없애야 해요. 우리가 수학 공부하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잖아요. 실제 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를 배운다면 수학을 공부하려는 마음이 더 생기지 않을까요?" (중앙여고 ㄴ 학생)
"저는 꿈이 체육 선생님인데, 이렇게 어려운 수학을 공부하는 건 교단에 서더라도 쓸 기회가 없을 것 같아요. 학생들이 필요한 공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주든가, 내용을 확 줄여 주든가 했으면 좋겠어요." (여수고 ㄷ 학생)
- 선생님들이 생각하시는 한국 수학의 방향은 어떠한가요?"수학을 포기한다는 것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거예요. 그만큼 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요. 그래서인데 모든 학생들이 다 잘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제까지 수포자라도 수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만큼, 내용도 쉬워지고 분량도 줄었으면 좋겠어요." (여수고 ㅇ 교사)
"수학이 중요하긴 한데, 너무 점수 위주로 등급을 나누다 보니까, 문제를 적정 수준으로 낼 수 없어요. 상위 몇 %를 가려내려고 자꾸 '그 이상'을 요구하는 문제를 내다 보니 수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그러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게 된 것 같아요. 수학 포기는 기본소양과 학습능력 배양 자체를 가로막을 수 있는데, 참 걱정입니다." (여수여고 ㅈ 교사)
학생들도 그랬지만, 만나는 선생님들마다 다들 그러셨어요. 수학적 사고력이야말로 과학이나 공학 등 모든 학문의 기본이라고. 그런데 요즘 학교는, 하고 싶지 않지만 대학 가려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공부가 수학이 되어 버렸다고요.
이를 해결하려면, 교과서 분량이 대폭 줄어들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어요. 그리고 난이도도 낮추고, 평가 방식도 획기적으로 바꾸자고들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 모든 걸 바꾸어도 '입시'가 안 바뀌면 모든 게 허사래요. '그놈의 꼬리'가 몸통을 또 흔들 테니까요.
(기사 작성 : 동아리 <사랑해여수> 5기 박상욱, 백형민, 조은준, 하지우, 고은비, 김나경, 김혜연, 조민희, 채지원 기자)
덧붙이는 글 | 수학 교육의 문제점을 취재하다가 알아낸 사실이에요. 학생들만 불쌍한 게 아니라 선생님들도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더라고요. 수업할 때마다 자는 아이들 깨우는 게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라고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수학이 쉬워져야 한다는 데 선생님들이 우리보다 더 적극적이셨어요. 하지만 이 모든 희망을 집어삼키는 ‘입시’라는 거대한 괴물은 그대로이네요. 앞으로 한 번 더 관련 기사를 실을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여수지역 고등학생 연합동아리 <사랑해여수> 5기, 팀장 : 박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