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장소와 여러 시점에 걸쳐 일련의 쾌락살인을 범한 사람'일반적으로 연쇄살인범을 위와 같이 정의한다. 즉 연쇄살인범들은 금전이나 원한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사람을 죽인다. 특정 유형의 여성들만 납치해서 강간하고 살해하는 연쇄살인범들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연쇄살인범도 있다. 그중 하나는 자신만의 알 수 없는 사명감에 사로잡혀서 사람들을 죽이는 경우다.
영화 <세븐>의 연쇄살인범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일곱 가지 죄악에 걸맞은 사람들을 골라서 한 명씩 살해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는 '요한묵시록'에 묘사된 방법대로 수도사들이 연속으로 살해 당한다.
이런 살인범들은 자신의 살인을 통해서 세상을 정화 시킨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점점 타락해가고 있고, 그 타락을 부추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과 사고를 가지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다. 그럼 그 사람들을 차례로 없애면 세상은 그만큼 깨끗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무서운 믿음이다.
신념을 가진 연쇄살인범의 등장안치우 작가의 2014년 작품 <재림>에도 이런 살인범이 등장한다. <재림>의 살인범이 노리는 대상은 기독교도, 그 중에서도 교회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다. 희생자들은 모두 근본주의 교회를 성토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 오류 주장, 전도 방식 비난, 헌금 개혁 선동, 목사 비리 폭로 등.
그렇다면 범인의 정체는 일종의 기독교 근본주의 광신도일 가능성이 있다. 종교적 망상과 개인적 망상이 결합되서 범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범인은 자신을 신성한 응징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범인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서 자신의 명분을 장렬하게 실천하고야 만다.
<재림>은 예술가 박진우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단순 실종이라고 생각됐지만, 실종현장에서 강력범죄의 흔적을 발견하고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동시에 박진우의 가족은 한 사립탐정에게 수사를 의뢰한다. 그 탐정은 현직 변호사이기 때문에 탐정 활동을 하는 데에도 그만큼 유리한 면이 있다. 탐정은 자신의 일을 돕는 두 명의 조사원과 함께 사건을 추적하고, 곧 이것은 광신도에 의한 연쇄살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범인은 피해자들에게 공통적으로 거꾸로 된 십자가를 택배로 보냈다는 것도 알아낸다. 거꾸로 된 십자가. 이것은 흔히 '베드로 십자가'라고 불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심각한 범죄와 다소 가벼운 캐릭터어찌보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살인을 하는 사람보다도, <재림>의 범인처럼 뚜렷한 목표와 가치관(?)을 가지고 살인을 하는 사람들이 더 위험한 존재일 수 있다. 특히 그것이 종교와 연관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수사망이 좁혀오거나 현장에서 꼬리를 밟히더라도 좀처럼 범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긴 자신의 범행으로 세상이 정화된다고 생각하고, 나아가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쉽게 범행을 멈출 리가 없다. 그 범행은 범인의 목표이자 삶의 이유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고 나서야 멈추게 될 피투성이의 과정인 것이다.
잔인하고 심각한 범죄와는 달리, 작가는 등장인물 몇 명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작품을 읽다 보면 탐정과 그의 조사원이 주고받는 썰렁한 농담을 여러차례 접하게 된다. 이런 장면은 <재림>의 분위기가 너무 심각하게 흘러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살인은 금전이나 원한에 의한 우발적 살인인 경우가 많다. <재림>에서처럼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살인을, 그것도 연쇄살인을 하는 사람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두려워진다. 종교가 인간을 얼마나 극단적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지를 상상하면.
덧붙이는 글 | <재림> 안치우 지음. 황금가지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