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20일 아침. 서울 광화문에는 빗줄기를 타고 전단지 비도 같이 내렸다. 전단지에는 머리에 꽃을 꽂은 박근혜 대통령이 고개를 떨구는 이미지와 'WANTED(원티드)' 'MAD GOVERNMENT(매드 거버먼트)'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것은 희뿌옇고 답답하기만한 한국 사회에 내리는 작은 꽃망울처럼 보였다. '나는 이 세계가 짜증납니다'라고 외치는 예술가의 절규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예술가는 곧장 연행됐다. 그리고 밤 늦은 시간까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관련기사: 이하 작가 "불통 박근혜에 제대로 엿 먹였다")같은 날 서울 신촌. 나는 한 건물 옥상에 올라가 그 예술가가 뿌린 것과 같은 전단의 비를 뿌렸다. 나 역시 이 답답한 세상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모두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차지만 딱히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다. 문제는, 가만히 있으면 이 정부는 그것을 동조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가만히 있으라'세월호에서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방송뿐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메시지다. 함부로 까불면 혼날 테니 '가만히 있으라'.
나는 음악도 하고 글도 쓰고 퍼포먼스도 하는 예술가다. 광대이고 각설이가 되기도 한다. 가만히 있으라고 정말 가만히 있는 것은 광대의 자세가 아니다. 때로는 시시껄렁한 수다를 늘어놓다가도 뼈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웃고 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광대에게 조롱과 풍자는 절대 놓을 수 없는 무기다. 진짜 양반이라면 광대가 어떤 조롱과 풍자를 해도 허허허 하고 웃어 넘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정부는 이제 국민의 미소마저도 빼앗아 가고 있다.
미소를 잃지 않고 싸울 겁니다
나는 내일(31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간다. '건조물침입죄'라고 한다. 내가 올라간 건물은 옥상이 일반인들에게 개방돼 있는 건물이다. 그들도 물론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일반인이 올라가면 바람 쐬러 가는 것이고, 나같은 사람이 올라가면 침입죄가 되는 것이다. 나를 단죄해야만 두 번 다시 나같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만 자신들의 입지를 단단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겪는 동안 우리들의 행동반경은 급격히 좁아지고 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자유가 우리가 모르는 새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욕하기'는 하나의 '국민 스포츠'였다. 허나 지금은 그것을 '국격을 낮추는 일'이라며 금하겠다 한다. 재밌는 사실은 노무현 정부 시절 그 스포츠에 가장 열을 올렸던 사람들이 지금 정부의 실세들이란 사람들이다.
특별히 비장하지 않게, 결기에 차 있지도 않게, 쫄지도 않게 콧노래 부르듯 조사받고 나올 생각이다. 이런 싸움으로 세상이 바뀔 만큼 저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세상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랜 패배 경험으로 알고 있다.
장기전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지치지 않아야 하고, 무엇보다 미소를 잃지 않아야 한다. 나는 계속해서 저들을 조롱할 생각이다. 그들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걸어가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