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모를 쓰고 가학광산동굴에 들어가기 위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양기대 광명시장이 가학광산동굴을 매입해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을 때만 해도 폐광산이 이렇게 화려하게 변신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학광산동굴 안에서는 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동굴 안에서 <동굴, 빛의 세계 展>
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바다생물을 형상화한 발광체가 동굴 위에 떠다녔다. 어둠을 밝히는 빛은 동굴을 새로운 공간으로 화려하게 바꿔내는 역할을 한다. 바다 속으로 탐험을 떠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곳이 한 때 광부들이 땀을 흘리면서 금이나 은과 같은 광물을 캐내던 공간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화려한 빛의 세계에서 벗어나 안으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민물고기들이 활기차게 헤엄치는 수족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학광산동굴 안을 흐르던 지하암반수가 수족관을 가득 채웠고, 그 안에서 1급수에서만 산다는 갈겨니, 산천어, 금강모치, 버들치 등이 활기차게 헤엄친다.
광물전시공간에서 마주친 어린아이들은 참새처럼 신나게 재잘거린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단체로 견학을 온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진다. 동굴해설사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동굴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었다. 동굴의 어둠을 밝히는 건 조명만이 아니었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은 동굴에서 빛이 되고 있었다.
40여 년 가까이 버려진 폐광인 가학광산동굴은 이처럼 화려하게 변신했다. 지금은 주말이면 수도권에서 방문객이 몰려드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주말에만 만여 명이 동굴을 방문하고 있다는 것이 광명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올해 안으로 동굴 방문객 수는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시 말해 광명가학광산동굴은 광명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관광자원이 거의 없는 광명시가 '관광'에 방점을 찍고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야심차게 세우게 된 것은 순전히 가학광산동굴 때문이다.
가학광산동굴이 없었다면 광명시는 '관광 정책을 추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가학광산동굴은 광명시가, 광명시민이 소중하게 지키면서 개발해야 하는 자산이 분명하다.
1912년 9월, 가학광산은 채굴을 시작했다. 은·동·아연을 주로 캐내던 가학광산은 수도권에서 가장 큰 광산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문을 연 가학광산은 1972년, 폐광됐다.
새우젓 보관하던 광산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다가학광산은 폐광될 때까지 500여 명의 근로자가 하루에 250톤의 금, 은, 동, 아연 등을 캐냈다. 수직갱도의 길이가 420m, 내부갱도 전체길이는 7.8km, 깊이 275m인 가학광산에서 캐낸 광물들은 시흥역까지 트럭으로 운반되어 그곳에서 철도로 장항제련소로 보내졌다.
광물을 캐내던 시기, 광산 일대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그것은 한 때의 전설이 되고 말았다.
폐광된 가학광산은 일 년 내내 내부온도가 12도로 유지된다는 장점(?) 때문에 새우젓 저장고로 활용되었다. 한 때 이곳에 보관된 새우젓이 3000여 통이나 된단다. 엄청나게 넓은 내부 때문에 가능했다. 덕분에 동굴은 새우젓 냄새가 진동하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한 때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가학광산은 대중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듯 했다. 그런 가학광산이 문을 연지 100년 만에, 폐광된 지 40여 년 만에 새로운 관광지가 되어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현실에서 잊힌 존재도 세월이 흐르면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다. 바로 가학광산이 그렇다.
2011년, 광명시는 가학광산의 '잠재적 가능성'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달았다. 그 중심에 양기대 광명시장이 있었다. 그는 새우젓 냄새가 진통하고 바닥이 지하 암반수로 질척거리는 광산 안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양 시장은 그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광명시는 가학광산을 매입해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새우젓이 담긴 드럼통을 모조리 꺼내고, 지하암반수로 질척거리는 동굴 내부를 깨끗이 치우고 새 단장을 한 가학광산이 일반에게 처음 공개된 것은 2011년 8월 27일. 폐광산이 '가학광산동굴'로 화려하게 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난 현재, 가학광산동굴은 방문객이 1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주말이면 만여 명에 가까운 방문객들이 가학광산동굴을 찾게 되었다.
그 사이 동굴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예술 공연이 가능한 무대가 만들어지면서 공연장이 되었고, 다른 공간은 전시장으로 활용되었다. 공연장에서는 음악회, 뮤지컬, 패션쇼 등이 주기적으로 펼쳐지면서 가학광산동굴은 광명시 문화의 중심이 되고 있다.
내가 가학광산동굴을 처음 찾은 것은 2012년 4월 27일. 천연동굴이나 폐광이 된 석탄광산은 구경했지만 광물을 캐던 폐광산에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궁금했다. 대체 어떤 폐광이기에 광명시가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려는 것인지, 가능성이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부를 둘러보고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솔직히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폐광산이 폐광산이지 뭐 별 거 있겠어, 이게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전 내 생각이었다.
서늘한 기운을 잔뜩 머금은 광산 내부는 엄청나게 넓고 깊었다. 자연이 만든 천연동굴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광물을 캐내던 광산인데 내부가 이렇게 넓을 수 있다니, 놀라웠다. 영화나 드라마, 만화를 통해서 피상적으로 접하던 광산은 실제로 보는 것과 전혀 달랐다.
다이너마이트 등으로 동굴 내부를 폭파해 넓어졌겠지만 광산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든 것은 사람의 손이었다. 처음에는 공간이 아주 좁았겠지만 6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광산 내부는 점점 깊어지고 넓어졌을 것이다.
가학광산동굴 안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나는 2011년 여름에 여행했던 터키의 카파도키아를 떠올렸다. 카파도키아는 화산의 폭발로 이루어진 특별한 지역이다. 화산재와 용암이 덮이면서 형성된 카파도키아는 아주 특이한 모습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한여름이면 진가를 발휘하는 가학광산동굴카파도키아에서는 지하도시도 유명하다. 이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외적의 침입 때문에 응회석으로 이뤄진 땅 속에 도시를 건설했다. 응회석이라 쉽게 구멍을 낸 수 있어 지하도시를 건설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는 깊이가 80m로 지하 7층의 규모인데, 가학광산의 깊이는 275m다. 응회석은 쉽게 파들어 갈 수 있지만 광물로 가득찬 광산은 절대로 그렇지 못했으리라. 하나의 지하도시를 건설해도 될 만큼 동굴 내부는 넓고 깊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바깥의 온도는 20도 이상을 오르내리는데 가학광산동굴 안은 서늘했다. 여름에 더위를 피하기에 아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때쯤 "겨울에는 따뜻해서 좋다"는 말이 돌아왔다. 겨울에는 바깥 기온이 영하로 뚝뚝 떨어질 때 내부온도가 12도라면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렇더라도 가학광산동굴의 진가는 한 여름에 발휘된다. 엄청나게 더워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 저절로 가학광산동굴이 생각난다. 덕분에 지난여름, 가학광산동굴의 인기는 최고였다.
동굴 안을 흐르는 지하 암반수는 바깥의 열기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냉기를 뿜어냈다. 동굴 안을 찾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동굴 안에 머물 수 있기를 희망했다. 바깥으로 나가봐야 열기를 잔뜩 품은 땡볕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동굴의 인기가 사뭇 올라간 것은 당연했다.
가학광산동굴은 수도권에서 가장 큰 동굴로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광명시는 이 동굴이 찾아와서 한 번 휙 둘러보고 가는 공간이 아닌, 방문객들이 오래 머물면서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 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가학광산동굴 개발은 관광지를 하나 만들어낸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일자리를 창출했고, 방문객들이 찾아오면서 인근 상권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2012년 4월 27일, 가학광산동굴을 처음 찾았을 때 동굴입구에서 양기대 광명시장을 만났다. 양 시장은 "가능하면 동굴의 형태를 보존하면서 공연과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동굴 개발계획을 밝혔다. 3D를 상영관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굴을 수도권 최대의 관광지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더불어 밝혔다.
당시만 해도 양 시장의 꿈은 실현 가능성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 같았는데 동굴 개관 3년이 지난 지금, 그것은 전부 현실이 됐다.
가학광산동굴 개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동굴의 넓은 공간은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 때 새우젓 저장고로 활용되었다는 것에 착안, 새우젓을 저장하면서 동굴의 역사를 다시금 보여준다.
또 와인 숙성에 최고로 좋은 온도를 갖췄다는 점에 착안, 와인도 저장한다. 가학광산동굴의 와인 맛, 아주 좋다. 내년 상반기에 이곳에서 '와인동굴'이 새롭게 문을 열 예정이다. 동굴 안에서 마시는 와인의 맛을 어떨까? 기대된다.
아직까지 가학광산동굴에 가지 않았다면 한 번쯤 들러보기를 권한다. 보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기억하자. 일제강점기에 처음 문을 연 폐광산이 그대로 버려지는 것보다는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 나 오래 기억되고 활용되는 것이 훨씬 우리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현재는 과거에서 비롯되며, 미래 또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