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 : 1일 오후 8시 30분]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 200여명이 시민들 사이로 빠져나가 행진 앞머리에 섰다.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쓰인 노란 풍선을 든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사진이 아로새겨진 펼침막을 앞세우고 행진을 시작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유가족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면서 "힘내세요", "잊지 않을게요",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건넸다. 유가족들은 시민들의 박수에 연신 "고맙습니다"라며 눈물을 삼켰다.
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200일 범국민 추모대회에는 유가족들을 포함해 1만여 명의 시민(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은 3500명)이 참여했다. 청계광장에서부터 청계천의 첫 다리인 모전교까지 촛불바다를 이뤘다. 시민들은 한 손에 촛불을 들었고, 다른 한손으로는 '끝까지 밝혀줄게', '성역 없는 진상규명'이라고 쓰인 팻말을 쥐었다.
유가족들은 국민의 성원에 고개를 숙였다. 유경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지난 200일 동안 저희에게 보여준 그 뜨거운 마음과 응원이, 저희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을 잘 안다, 서로 손 놓지 말고 함께 가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또한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우리 가족들이 앞장서겠다"면서 "우리가 쓰러질 때 국민들이 일으켜 줄 거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9명을 거론했다. 유 대변인은 "오늘이 범국민 추모대회이긴 하지만 아직 추모할 때가 아니다"면서 "9명의 실종자가 모두 돌아올 때까지 진정한 추모는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특별법 많이 부족하지만, 엄마 아빠들이 만들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전날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을 통한 진상규명을 강조했다. 박래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은 많이 부족하고, 우리가 생각한 것에 한참 모자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아이들 얘기만 나오면 울고불고 하는 엄마 아빠들이 만든 특별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별법을 가지고 첫 발을 뛰자,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라고 외쳤다. 박래군 공동운영위원장은 또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이란 자가 붉은 카펫을 밟고 올라가며 그 옆의 울부짖는 유가족을 외면했다"면서 "국민이 국가대개조에 나서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석자들은 선언문에서 "특별법은 이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쥐는 연장일 뿐이다, 미완의 특별법에 그친 여야 합의 소식에 우리는 좌절하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이 가족과 국민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기억한다, 연장이 부실하다는 것은 우리가 길을 멈춰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200일을 기록한 영상은 유가족들을 눈물짓게 했다. 또한 고 권오천군의 형 권오현씨와 가수 이상은씨가 차례로 노래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참석자들은 1시간 가량 이어진 추모대회가 끝난 뒤, 종로와 을지로를 거쳐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행진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은 분향소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것으로 이날 행사를 마쳤다.
[1신 : 1일 오후 5시 04분]안산 정부합동분향소 앞 추모식... "친구들 몫까지 다하며 살게요"
영구차 한 대가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 앞에 섰다. 차에서 가장 먼저 내린 이는 고 황지현양의 부모였다. 눈물을 꾹꾹 참은 두 사람은 외동딸인 지현양의 영정 사진과 위패를 앞세우고 두 손을 맞잡은 채 분향소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달 28일 295번째로 수습된 희생자인 지현양은 사고가 일어난 지 200일이 돼서야 친구들 곁으로 왔다.
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참사 200일 추모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지현양의 영정 사진과 위패를 보자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유경근 세월호 가족 대책위원회 대변인은 "많은 사람들이 이제 포기하자고 할 때, 우리 지현이가 '더 기다려 달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지현양의 영정 사진과 위패가 제단에 안치되자, 지현양의 가족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이후 지현양 가족들이 분향소 밖으로 빠져 나오자, 유가족들은 이들을 향해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나직이 말했다.
유가족-생존학생 편지 낭독... "이 잔인한 세상은 그대로"
1일 오후 정부합동분향소 앞에서 열린 추모식에는 유가족과 생존학생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유가족들과 생존학생들은 희생된 학생들을 추모하며 편지를 낭독했다
.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추모식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씨는 '천사들이 떠난 지 200일에 보내는 글'에서 "너희들의 엄아 아빠와 가족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친구를 기다리느라 진도에서, 만나주지 않는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운동에서, 특별법을 만들어달라고 국회에서, 국민들과 이 진실의 길을 가려고 광화문에서, 쪽잠을 자고 때론 도보, 간담회, 집회로 거친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다.
"너희를 그리워하는 밤이 많아질수록 '이대로는 안 된다'면서 다시금 힘을 내서 거리로 나서는 엄마 아빠를 너희들은 보고 있겠지"라면서 "진실에 조금만 더 가까이 가서 진실 앞에서 너희들 기억하고 싶다고 호소하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고 곡기를 끊고 무릎 꿇어도, 이 잔인한 세상은 아직도 그대로구나"라고 전했다.
성실씨는 "엄마 아빠는 강인하게 버텨낼 테니 그곳에서 행복하게 뛰어놀기를 기도할게"라면서 "언젠가 때가 돼 세상을 등지는 그날, 엄마 아빠는 너희를 만나러 갈테니까 너무 외로워하지 말고 친구들과 사이좋고 기다려줘"라고 끝을 맺었다.
생존학생들의 편지는 유가족들의 가슴을 때렸다. 생존학생 위득희군의 형 위열씨는 동생의 편지를 대신 읽으면서 "200일 지나서야 제대로 인사드리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이전에는 (희생학생) 부모님들을 만나 뵙는 게 힘든 일이었다, 이젠 부모님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마침 한 친구가 200일의 공백을 깨고 우리 곁으로 왔다,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때 있어서는 안 될 절망스러운 얘기를 했다"면서 "친구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희망을 봤다, 저는 하루 빨리 그 누구도 외롭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이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민지양은 한참을 울먹인 뒤에야 편지를 읽었다. 민지양은 유가족들을 향해 "친구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아프지 말고 건강했으면 좋겠다"면서 "대학생이 되고 직장을 다니면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과 수많은 약속들을 잊지 않고, 친구들 몫까지 다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
유가족들은 전날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한 것에 대해서는 입장을 따로 밝히지 않았다.
유경근 대변인은 "아무것도 시작된 게 없고,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 굳이 밝혀진 게 있다면, 아무도 구조하지 않았다는 것 하나뿐"이라면서 "앞으로 왜 아무도 구조하지 않았는지, 200일 지난 지금까지 왜 아무도 이를 밝히려고 하지 않는지 그것을 앞으로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고, 비록 넘어지고 쓰러져도 반드시 길을 갈테니 우리와 잡은 손을 끝까지 놓지 말아달라고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렸다, 많은 분들이 약속해주셨다"면서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에서 남은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약속했으니, 그 약속을 지켜주시길 바란다, 저희도 지키겠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추모식이 끝난 후 범국민 추모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 5대에 나눠 타고 서울 청계광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