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리차르에서 1박2일 머물기로 한 우리 일행은 마지막 일정지인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으로 향했다.
"국기 하강식? 뭐 볼 게 있다고 거길 가는 겨.""행사가 아주 재미있다는데요." "국경에서 뭔 행사를?""암리차르에서 볼 만한 것 중에 하나라는데 가보면 알겠죠."우리 일행 중 누구도 국경선에서 벌어진다는 '국기 하강식'을 상세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다소 불만을 품고 젊은 친구들의 일정에 맞춰 무작정 '암리차르에서 가볼 만한 곳 중에 하나'라는 국경선으로 향했다.
우리들의 가이드 주상씨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품을 판 덕분에 좀 더 요금이 싼 오토 릭샤를 잡아 탔는데, 정원수를 맞추기 위해 우리가 탄 오토 릭샤에 젊은 외국인 커플도 끼었다.
그동안 보아왔던 쓰레기가 나뒹구는 인도의 거리와는 달리 비교적 깨끗한 암리차르에는 모터사이클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우리가 탄 오토릭샤를 지나치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환한 미소로 반겼다. 어떤 사람들은 오토 릭샤 가까이 붙어 따라오면서 말을 걸기도 했다.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한국이요.""어디 갑니까""국경 갑니다."국경에 뭐 볼 게 있나 싶었는데...그들이 건네는 미소는 국경에서 종종 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켜주었다. 젊은 외국인 남자 친구는 국경으로 향하는 게 다소 긴장되는지 그 비좁은 공간에서 잎담배를 말아 피운다. 그가 얇은 종이에 말아 피우는 것이 대마초 아닌가 싶었다.
국경선으로 가는 도로 양옆으로 펀자브의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강(지류)이 흐르는 땅이라는 뜻을 지닌 펀자브에는 비옥한 농경지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펀자브는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 영토로 갈라져 있다. 인도 쪽 펀자브보다 파키스탄 쪽의 펀자브 영토가 훨씬 더 넓다. 펀자브는 힌디어와 펀자브어를 사용하고 있고 종교는 이슬람과 힌두, 시크교로 나뉘어져 있다.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영국에서 독립한다. 하지만 인도의 분리 독립은 '인도를 생체 해부 하는 것'이라며 하나의 통일된 인도를 원했던 마하트마 간디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도 파키스탄 분리 독립과 함께 1400여만 명이 고향을 떠나 새로운 거처로 이주해야 했다. 벵골 지역과 마찬가지로 펀자브 지역에서도 한쪽은 이슬람, 다른 한쪽은 시크교와 힌두교 지역으로 갈라졌다.
지금은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주 중에 하나로 자리 잡은 펀자브 주는 인도 파키스탄 분리당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펀자브가 동서로 분할되자 수백 만의 시크교와 힌두교인들은 동쪽으로, 수백 만의 이슬람교도들은 서쪽으로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종교 분쟁이 일어나 인도 파키스탄 전 지역으로 확산돼 무수한 잔학행위가 양쪽에서 자행되었다. 이때 희생자 수가 사망 300여만 명에 부상자만 500여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국경선에서 끊임없이 유혈사태가 벌어졌고, 카슈미르 분쟁 사태로 이어져 인도 파키스탄 양국은 세 차례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다. 지금도 여전히 양국 간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은 암르차리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와가'라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국경 검문소 부근에 들어서자 오토 릭샤 운전수가 짐을 따로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일행은 도로가에 줄지어 있는 보관소에 짐을 맡겨놓고 여권과 지갑, 사진기 등의 간단한 귀중품만을 챙겨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국기 하강식장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여성과 남성, 외국인과 내국인 등을 따로 분리하는데여성이 먼저 입장했다. 우리는 자리를 가득 메운 행사장에 들어서 외국인 지정석에 앉았다. 외국인 지정석은 파키스탄 쪽 국경검문소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국경 철문을 사이에 두고 인도와 파키스탄 양쪽에 계단식 관중석이 들어서 있는데 우리가 앉아 있는 곳에서 몇 걸음만 이동하면 파키스탄이다. 인도 쪽에는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 사진이, 파키스탄 쪽에도 역시 국부로 추앙받는 무함마드 알리 진나의 사진이 걸려 있다.
파키스탄의 정식 명칭은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파키스탄'은 "순결한 자들의 나라"란 뜻이라 한다. 파키스탄의 총면적은 803,940 km²로 세계에서 34번째로 면적이 넓다. 대한민국보다 약 8.2배 넓고, 남북한을 합쳐도 3.7배나 더 넓다.
전체 인구 중 신도 수의 비율로 볼 때, 인도네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이슬람 국가이다. 핵무기를 보유한 유일한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은(인도 역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 8위의 국방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국기 하강식에 앞서 행사장에 음악소리가 울려퍼졌다. 요란한 음악소리가 나오자 관람석에 앉은 인도 여성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한반도 국경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관중석 양편에서 몰려나온 여성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춤추는 여성들은 행사를 위해 출연하는 무희들이 아니라 관중석에 앉아 있던 일반 시민들이었다.
여전히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는 인도-파키스탄 국경선에서 축제가 벌어진 것이다.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아, 어떻게 서로 총부리 겨누는 국경에서 춤을 출 수 있단 말인가. 넋을 놓고 바라보면서 남북으로 갈라선 대한민국, 내 조국이 떠올랐다. 시체처럼 빳빳하게 굳어져 있는 한반도의 참담한 현실과 국경을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춤추는 사람들을 보면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콧 끝으로 찡하게 전해져 왔다.
적어도 이 순간 만큼은 인도 사람들에게 국경은 춤추는 무대였다. 춤판이 끝나자 이번에는 인도, 파키스탄 양쪽 관중석에서 환호성을 질러대고 그 앞으로 군인들이 힘차게 행진을 한다. 발을 높이 차 올려 땅바닥을 향해 쿵쿵 내리치기도 한다. 기합소리같은 고함도 질러대며 힘을 과시한다.
국경의 거대한 '춤판', 눈물이 났다양쪽 위병대의 힘 과시가 상대를 향해 우쭐거리는 침팬지나 우랑우탄같아 보인다. 험상 궂은 얼굴로 부풀린 가슴을 쿵쿵 두들겨 대는 우랑우탄처럼 힘겨루기를 하고 있지만 성난 우랑우탄과 달리 살기가 없어 보인다. 양쪽 군인들이 보여주는 힘겨루기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상대 국가를 위협하기보다는 우스꽝스러운 한 편의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퍼포먼스와 다름없는 힘겨루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국경의 문이 열리고 양쪽 지휘관들이 상대편을 향해 걸어나가 경례와 함께 짧은 악수를 나눈다. 곧바로 위병들이 빳빳한 걸음걸이로 힘차게 국경선으로 다가가 국기 앞에서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팔 소리와 동시에 국기를 내린다. 국기를 내릴 때 어느 한쪽이 기울지 않도록 절도 있고도 조심스러운 동작을 선보인다.
국기를 내릴 때의 엄숙한 분위기를 제외한 모든 행사가 익살스럽고 평화롭기 만한 와가 국경 검문소. 와가 검문소는 인도와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유일한 육상 교통로라고 한다. 그동안 이곳에서는 주로 실수로 국경선을 넘은 민간인들이 상대국에서 수감생활을 한 뒤 본국으로 송환되는 장소로 이용됐다.
1998년 판문점을 통해 소떼 500마리가 방북 길에 올랐던 우리나라처럼 2005년 10월, 파키스탄 지역에 강도 7.6의 대지진으로 엄청난 국가적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인도는 이곳 와가 국경선에서 '평화의 구호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이곳에서 양파와 마늘 등 6개 품목의 농산물을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수출하는 국경무역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한다.
본래 하나였던 인도와 파키스탄. 파키스탄 쪽에는 파키스탄 국부 무함마드 알리 진나의 사진이 걸려 있고 인도 쪽에는 마하트마 간디의 사진이 걸려 있다. 두 개의 나라로 갈라서기 전에 두 사람 다 독립 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나는 이 두 사람의 사진을 보면서 남북한을 대표하는 항일 독립운동가, 김일성과 김구를 떠올렸다.
특히 김구와 간디의 일생은 닮았다. 독립운동의 방법은 달랐으나 두 사람 모두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 된 조국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힘사, 비폭력으로 인도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하나 된 인도를 내세우다가 힌두극우파에게 암살당한 간디, 마찬가지로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치고 하나의 조국을 열망하다가 극우파에게 암살당한 김구 아닌가.
파키스탄의 국부, 무함마드 알리 진나가 독립운동가였듯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김일성 역시 독립운동가였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지대, 와가 검문소의 간디와 진나의 사진처럼 한반도의 판문점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건국한 국부라 할 수 있는 김일성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김구의 사진이 걸리는 상상을 했다. 두 사람의 사진이 내걸린 판문점 양쪽에서 한민족은 물론이고 온갖 외국인 관광객들이 신명나는 꽹가리 장단에 한바탕 춤판을 벌이는 상상을 해보았다.
하지만 친일파 후손들이 득세하는 대한민국은 이런 상상조차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매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권력 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아, 내 조국 한반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바탕 평화로운 춤판으로 시작하는 인도 파키스탄 국기 하강식을 보고 돌아서는 온몸으로 서글픔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