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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홍률 목포시장이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홍률 목포시장이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영주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안기부(현 국정원) 출신의 기초단체장 후보에게 살해협박 등 과거 인권탄압 여부를 묻는 공개질의서를 보냈던 단체 대표가 '후보자 비방'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검찰이 정몽준 전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아들의 '국민 미개' 발언을 비판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20대 남성을 기소해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죄'에 대한 한 차례 논란이 불거진 터다.

일부에서는 '후보 비방죄'가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법'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지난 6·4지방선거 당시 목포에서는 무소속 박홍률 목포시장 후보의 '안기부 근무 당시 인권탄압'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박홍률 후보는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 들어가 국정원충북지부장을 지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 목포시장 후보로 무소속 출마한 데 이어 올해 선거에서도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6·4지방선거가 막바지로 치닫던 5월 25일 고 강상철열사 추모사업회(회장 김재식·42)와 유가족은 목포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현 박홍률 시장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질의서에는 "지난 1986년 목포역 광장에서 강상철 열사가 독재타도, 직선제 쟁취를 외치며 분신 후 사경을 헤맬 때 안기부 직원들의 유가족 인권탄압이 있었다"며 "당시 안기부 목포 분소에 근무했던 박홍률 후보에게 인권탄압에 앞장선 장본인이 누군지 목포시민들 앞에 밝혀 달라"며 6가지 질문이 담겨 있었다.

박홍률 목포시장, '안기부 근무 당시 인권탄압' 여부 논란

이어 하루 뒤인 5월 27일 추모사업회는 "박홍률 후보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냈으나 무시하고 답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성명을 발표했다.

추모사업회는 성명서에서 "유가족이 너무나 억울한 심정으로 당시 잔인한 인권탄압을 자행했던 안기부 목포분소 대공담당자에 대한 처벌과 신원확인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요구했으나 국정원이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상철 열사의 아버지는 안기부 목포분소 대공 업무를 보던 사람이 '박모씨'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고 박 후보가 당시 안기부 목포분소에 근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선거 당시 목포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홍영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도 5월 28일 성명을 내고 "박 후보는 모 언론사에 제출한 신상내용에서 전두환 정권 시절 안기부 목포분소에 근무했다"며 "그 당시 피해자 가족이 제보를 해 와서 피맺힌 절규를 하고 있다"며 "박 후보는 양심을 걸고 떳떳하게 시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 측은 반박 보도자료 배포와 함께 추모사업회 관계자를 고발했다.

보도자료를 통해 박 후보는 "선거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허위사실을 담은 성명서를 기자들에게 유포하는 일이 발생했다"며 "이는 구태의연한 정치세력이 막후에서 선두후보를 깎아내리려는 불순한 목적으로, 조직적이고 치밀한 불법 선거운동"이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이날 반박 보도자료 배포와 함께 측근 6명의 이름으로 추모사업회 김재식 회장을 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사법기관에 고발했다.

박 후보 측의 고발 이후 추모사업회 측은 다시 한 번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추모사업회는 "우리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아들이 죽어가는데 부모의 면회조차 가로막으며 국가기관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던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더불어 "강상철 열사가 생사를 넘나들던 위급한 상황에서 안기부 직원이 병원에 난입해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 진상을 철저히 밝힘과 동시에 관련자의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추모사업회는 또 "유가족과 협의해 폭력 살해 위협을 했던 안기부 직원 박모씨와 조모씨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공개질의를 했지만, 오히려 박 후보는 '추모사업회를 형사 고발한다'는 등 협박성 언론플레이로 열사와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악행을 보여주었다"고 성토했다.

"지금도 치가 떨린다... 꼭 진실을 알아내야 여한이 없을 것 같다"

 고 강상철 씨는 1986년 5.18진상규명과 직선제 쟁취를 외치며 분신했다.
고 강상철 씨는 1986년 5.18진상규명과 직선제 쟁취를 외치며 분신했다. ⓒ 이영주

이처럼 유가족과 추모사업회는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난 일에 왜 아직도 진실을 요구하고 나섰을까.

5일 전화통화를 통해 고 강상철씨 아버지 강종학(77)씨는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30년이 지났지만, 진실을 알고 싶었다"고 했다.

아버지 강씨는 당시 일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1986년 6월 6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해남에서 목포에 있는 성골롬반병원까지 한걸음에 달려갔다.

아들이 분신 후 온몸에 붕대를 감고 중환자실에 누워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잠시 후 청바지에 점퍼 차림의 사람들이 다가와 위로를 건넸다. 당시에는 아들과 함께 활동했던 사회단체 회원들로 추측했다.

그러나 이들이 안기부목포분소 직원들이었다는 것은 뒷날 밝혀졌다. 당시 환자실에 앉아있던 아버지 강씨는 안기부 직원들이 불러서 밖으로 나갔다.

"아들을 여기에 두면 고칠 수 없으니 서울 큰 병원으로 후송하라"고 재촉했다. 강씨 등 유가족이 거부하자 당시 안기부 직원은 멱살을 잡고 목을 조르며 '악질적인 집안 다 죽여버린다'고 협박했다.

안기부 직원들은 유가족의 환자 면담을 막았으며, 중환자 대기실에 있는 가족과 시민들을 강제로 쫓아 내기도 했다.

고 강상철씨의 어머니는 당시 안기부 직원들의 협박에 충격을 받고 쓰러져 해남병원에 입원했다.

아버지 강씨는 "정치공작과 인권탄압을 일삼았던 안기부가 악명을 떨치던 그 무렵, 안기부 직원의 온갖 협박과 살해 위협은 충격이었다"며 "분신해 누워 있는 아들조차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험한 세상을 만났고, 이후에도 온 가족이 사회적으로 격리되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 살아왔다"고 회고했다.

"지금도 치가 떨린다. 꼭 진실을 알아내야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아버지 강씨의 긴 한숨과 함께 목소리가 떨렸다.

'공직선거법에 의한 후보자 비방혐의'... 경찰,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

박 후보 측으로부터 고발당한 추모사업회 김재식 회장은 선거 직후인 지난 6월 10일 경찰에 출석해 '공직선거법에 의한 후보자 비방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광주지방검찰청목포지청은 10월 들어 김재식 회장에게 출석해 조사를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 회장은 "정식 재판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재식 회장은 "유가족이 진실을 알고 싶다는 강력한 요청도 있었고 한 지자체의 수장이 되고자 하는 후보에게 인권탄압에 대한 개입 여부를 물어보는 것이 어떻게 비방이 되느냐"고 성토했다.

당사자인 박홍률 당시 후보는 목포시장에 당선됐다. 박홍률 목포시장은 취재 질의서를 보낸 지 4일 만에 홍보실을 통해 "본인이 고발 당사자가 아니므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해왔다.

고 강상철 씨는...
고 강상철 씨는 1964년 해남에서 태어났다. 현 목포과학대를 졸업하고 목포사회운동청년연합 사무차장과 목포평강교회 청년회 총무로 활동하던 중 1986년 6월6일 목포역 광장에서 민주화운동탄압중지와 5.18 진상규명, 직선제 개헌 단행을 촉구하며 분신했다.

1986년 6월26일 운명을 달리했으며 현재는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돼 있다.

분신 직전 그는 양심선언문을 뿌렸다.

"80년 5월 민중항쟁의 무참한 학살로 들어선 전두환 정권이 정국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으며 운동권 학생들의 삼민주의를 매스컴에선 용공 좌경으로 몰고 있다.

이제는 독재가 죽고 민주가 꽃피우고 민족이 통일되고 민중이 승리할 때가 왔다. 정의로운 죽음은 의로운 죽음이요, 승리의 죽임이며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전 민중의 함성이며 동참이여 투쟁의 길이며 승리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고 강상철씨를 추모하는 행사는 매년 고향인 해남과 학교와 사회단체 활동을 했던 목포 등지에서 열린다. 올해도 해남 문예회관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다.



#박홍률 목포시장#강상철 열사#후보비방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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