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도시가 푸르다는 점이다. '푸른 베를린'(Grünes Berlin)이라고 불릴 정도로 베를린은 자연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큰 규모의 공원과 거대한 수변 공간뿐만 아니라, 주택가의 가로수와 누군가 키우는 발코니의 식물들 그리고 주택가 공간마다 자리 잡은 공동 텃밭 등 다양한 종류의 푸른 공간이 베를린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여름이면 사람들은 도시 곳곳에 있는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크고 작은 숲에서 하이킹을 하며 맥주를 마신다. 주로 도시 외곽에 있는 큰 규모의 호수와 숲과는 다르게 베를린 티어가르텐(Tiergarten)은 도심 한 가운데 자리 잡은 거대한 숲이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자주 비교되는 티어가르텐의 면적은 프랑스 동남부에 위치한 모나코 공국의 총 면적보다 클 정도다. 티어가르텐은 2010년 개장한 템펠호프 공항 공원 다음으로 큰 베를린 도심 공원이다. 우거진 숲으로 조성된 티어가르텐과 넓은 잔디밭과 넓은 활주로 등으로 탁 트인 템펠호프 공항 공원은 전혀 다른 성격의 공원이다.
티어가르텐은 과거 브란덴부르크주 선제후의 사냥터로 사용됐다. 그렇게 사냥터였던 곳은 약 200년이 지난 1742년, 사냥을 즐기지 않던 프로이센 왕국의 왕 프리드리히 2세가 건축가를 고용해 시민들을 위한 정원으로 새롭게 디자인하게 했다. 그렇게 제후와 왕의 사냥터는 시민들을 위한 도심 공원으로 변하게 됐다.
폐허가 된 공원, 이렇게 되살아났다
날씨가 좋은 여름이면 티어가르텐 안에 있는 운하와 호수에서 카누를 타는 사람들 그리고 풀밭과 운하 변에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비어가르텐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지금은 푸르디 푸른 티어가르텐이지만 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는 공터가 되기도 했다. 베를린 도심의 98%를 파손 시킨 폭격으로 인해 도심부에 있던 티어가르텐은 나무는커녕 풀조차 찾아볼 수 없이 파괴됐고 불에 탔기 때문이다. 게다가 석탄 부족으로 인해 남아 있던 나무도 모두 잘라 연료로 써 나무 한 그루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티어가르텐의 거대한 공터에 채소와 감자를 농작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난 1945년. 베를린 정부는 가능한 조용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티어가르텐을 복원하기로 결정한다. 1949년 서베를린의 첫 시장이었던 에른스트 로이터(Ernst Reuter)는 텅 빈 티어가르텐에 보리수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서독의 수많은 도시로부터 기증 받은 다양한 수종의 약 25만 그루의 나무 중 하나였다.
이 나무들은 티어가르텐을 새롭게 조성하기 위해서 기증된 것이었고, 동독의 서베를린 봉쇄로 인해 나무는 오랜 세월에 걸쳐 비행편을 통해 수송됐다. 1959년까지 베를린 시는 숲을 조성하기 위해 계속해서 어린 나무를 심었다. 그런 노력 끝에 티어가르텐은 현재 울창한 숲이 돼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각기 다른 모양의 랜턴이 한데 모여... 참 신기한 박물관
티어가르텐은 베를린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주변의 수많은 관광지로 연결된다. 하지만 숲 자체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관광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구경을 할 수 있을 뿐이지, 긴 시간을 투자해 구경하는 장소는 아니다. 그렇지만 티어가르텐에도 단순 자연 공간뿐만 아니라, 역사적 장소와 의미 있는 상징물이 아주 많다. 그중에 가장 흥미롭고 쉽게 둘러볼 만한 장소는 베를린 야외 가스랜턴 박물관(Gaslaternen-Freilichtmuseum Berlin)이다.
이곳은 야외 박물관이지만 일반적인 박물관은 아니다. 티어가르텐의 숲속 산책로에 조성된 가스랜턴 길이다. 이 길에는 25곳의 독일 도시와 11곳의 유럽 도시로부터 수집된 약 90종류의 다양한 가스랜턴이 자리 잡고 있다. 야외에 있는 랜턴들은 오랫동안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고장 나기도 했고, 심지어 반달리즘(공공시설을 파괴하는 행위 등을 의미)에 시달리기도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대비해 모든 랜턴이 수리됐고, 지금까지 나름 잘 관리된 상태로 남아 있다. 물론 지금 몇몇 랜턴들은 고장 났지만, 다수의 랜턴들은 본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색도 디자인도 각기 다른 랜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은 흥미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자신과 인연이 있는 도시의 랜턴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이 랜턴, 왜 이렇게 생겼지?
90개의 가스 랜턴만큼 흥미로운 가로등이 이 박물관 근처에 있다. 베를린 공대의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걸어 다니는 길에 위치한 수많은 가로등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가로등의 의미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슈페어 랜턴(Speer-Lanterne)'이라고 불리는 가로등은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건축가 알버트 슈페어(Albert Speer)가 1938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가로등은 본격적인 산업 생산을 위해 디자인돼 대량 생산을 하려던 제품이었다.
테오도르 호이스 광장(Theodor-Heuss-Platz)부터 티어가르텐 역(Bahnhof Tiergarten)까지 약 4km에 달하는 거리 양옆으로 슈페어 랜턴이 자리 잡고 있다. 보통 도로 쪽이나 인도 쪽을 향해 뻗어 있는 디자인의 가로등이 일반적인 반면, 이 랜턴은 도로와 수직으로 세워진 형태로 디자인됐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런 디자인을 택한 이유는 히틀러와 나치군이 약 4km에 달하는 도로를 행진할 때 조명으로 인한 시각적 방해 없이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올해 초 구글 지도에 '테오도르 호이스 광장'이 '아돌프 히틀러 광장'으로 잘못 표기되는 사건이 있었다. 테오도르 호이스 광장부터 티어가르텐 역까지 연결되는 도로는 히틀러가 베를린을 세계 수도이자 자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베를린 도심에서부터 베를린 서쪽으로 동서를 자로 잰 듯 가로지른 축의 일부였다. 그런 계획 아래 만들어진 거리의 끝 그리고 나치 시절 가로등이 끝나는 장소가 갑자기 아돌프 히틀러 광장으로 바뀐 것은 섬뜩하면서도 재미난 우연이 아닐까 싶다.
* 참고로 독일의 자동차 전용 도로 아우토반(Autobahn)에는 가로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어둠 속에서 차량들이 자신의 전조등과 후미등에 의지해서 달려야 한다. 가로등이 많지 않은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전후 경제성장을 하며 도로를 늘리던 독일 정부에게 가로등까지 설치한 재정적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는 지금도 여전히 아우토반에 가로등을 늘리지 않고 있다. 전기 절약이라는 경제적 목적과 오히려 가로등이 있는 도로에서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더 잦다는 과학적 결론을 바탕으로 사고 방지를 하기 위해서 가로등을 설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오랜 세월 동안 가로등이 없는 아우토반에 맞춰 독일의 차량의 전조등과 후미등의 조도 기준이 맞춰졌기에 굳이 가로등을 설치할 이유가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