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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수용소에서> 표지
<죽음의 수용소에서> 표지 ⓒ 청아출판사
인류 최대·최악의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홀로코스트'. 본래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고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유대인에게 행한 초유의 대학살을 말한다. 이는 역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 수많은 콘텐츠의 원형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나치 독일이 왜 그런 짓을 행하였는가와 전쟁이 끝난 후 유대인이 행한 짓을 차치하고, 당시 유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극도의 '수용소 생활'이다. 홀로코스트 관련의 수용소 생활을 다룬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등이 있다.

그렇다면 책은 무엇이 있을까? 의외로 소설은 찾기 힘들다. 반면 만화와 산문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아트 슈피겔만의 그래픽 소설 <쥐>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있다. 그나마 시선을 조금 더 넓혀서 <안네의 일기>도 이에 포함 시킬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홀로코스트와 수용소 생활에 관련한 모든 콘텐츠들 중에서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최고로 뽑는다. 만화의 형식을 빌렸음에도 그 가치가 퇴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전달이 잘 되고, 그 비극의 모습을 오롯이 눈으로 볼 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갖는 완전히 다른 의미

그렇지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갖는 의미는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다른 콘텐츠들이 그 당시의 모습을 극악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거나, 거시적으로 살펴보면서 화해를 청하거나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반면 빅터 프랭클은 당시의 경험을 근거로 창조를 해냈다.

이 책은 책이 가지는 거대한 후광과는 어울리지 않게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 저자인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인 정신의학 의사로서 나치 독일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그는 그곳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왔고, 그곳에서 있었던 체험을 그만의 독특한 정신요법인 '로고테라피'를 창안했다. 로고테라피는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프로이트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이나 아드리안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권력과는 다르게,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바로 이 로고테라피 이론이 어떤 식으로 자신이 체험했던 지독한 수용소 생활에서 살아 남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어떻게 더욱 개발하여 견고한 체계로 다듬었는지 소개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수감자들이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것을 기록해 놓은 방대한 자료를 조사해 보고 수용소 생활에 대한 수감자의 심리적 반응이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고 말한다. 첫 번째 수용소에 들어온 직후의 '충격', 두 번째 틀에 박힌 수용소의 일과에 적응했을 무렵의 '무감각', 세 번째 석방되어 자유를 얻은 후의 '불신, 비통, 환멸, 슬픔, 환희'이다.

수용소 생활에 대한 수감자의 심리적 반응 세 단계

수용소로 끌려 가는 사람들은 '집행유예 망상'을 겪는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과 같이, 그들도 실날같은 희망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수용소에 들어가 선별의 관문을 통과하고 가축 우리같은 방에서 기다린 후 소독실에 들어 가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난 후 완전한 벌거숭이가 되었을 때, 그때까지 갖고 있던 환상이 모두 무너지고 그들은 완전한 충격에 빠진다.

그들은 이후로 상당히 오랫동안 그 심리적 첫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정상적인 것인데, 이런 반응들은 며칠이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두 번째 단계인 '무감각'으로의 이동이다.

이 무감각을 제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바로 앞에서 보이는 참담한 광경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것이다. 감정이 무뎌져서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단계가 된 것이다. 그 단계가 되면 그들은 혐오감과 공포, 동정심 같은 감정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된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어가거나 또 이미 죽은 것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모멸감' 앞에서는 분노를 느낀다. 육체적인 학대나 고통은 조금도 상관없지만 말이다. 저자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 피가 머리로 솟구치는 기분을 느꼈다. 그 어떤 삶은 저자에게 의사면 사람들로부터 돈 좀 긁어 모았겠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후 수용소에서의 세 번째 심리적 단계로의 이동은 기약이 없다. 수용소에서 나가게 될 때 비로소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서는 메마를 대로 메말랐고,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전혀 못 느끼게 된 지도 오래다. 그럼에도 그 곳에 정치와 종교와 예술과 유머가 존재하고, 과거를 생각하며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그 사랑의 감정은 세상을 아름답게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곧 행복까지도 야기 시킨다.

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은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할 것이다. 대신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럴 때 그들을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저자는 매일같이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에 역겨움을 느끼고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렸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망상에 가까운 상상이지만, 그로 인해 그는 그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방법을 통해 그는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믿음, 즉 로고테라피가 말하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다.

그들은 갑자기 해방을 맞는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맞이한 해방. 그렇게 찾아온 자유는 그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비현실적이고 있을 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토록 꿈꿔왔던 자유인데! 이후 그들은 도덕적 결함을 보인다. 그들은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지만, 일종의 보복 권리로서의 어이 없이 나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이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때 비통함과 환멸감, 슬픔을 느낀다.

시련에는 끝이 없다

그들은 세상에 나가 그동안 그들이 겪었던 시련을 보상해 줄 만한 행복을 얻었을까? 수용소에서의 극악의 고통을 보상 받을 만한 행복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 느꼈을 것이다. 시련에는 끝이 없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시련을, 더 혹독하게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즉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는 없다. 각자가 알아서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이 책을 권한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인간 문제의 가장 심오한 의미에 초점을 둔 한 사람의 극적인 경험담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인 가치는 물론 철학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는 이 책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정신의학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유익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2005)


#죽음의 수용소에서#로고테라피#빅터 프랭클#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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