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루시'라고 이름 붙여진 화석 인골은 약 400만 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인류의 조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인류의 고향은 아프리카가 된다.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아메리카와 한반도까지 인류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차례대로, 또는 겹치는 시대를 아우르며 진화해 온 것이다.
채집과 수렵을 지나 농경하며 정착에 성공하고 잉여생산물이 쌓이면서 저장하는 기술이 발생했으며, 잉여물의 적고 많음에 따라 위계가 생겼을 것이다. 집단을 지키기 위한 군대를 만들고. 집단의 생존 또는 이익을 위해 전쟁이 발생했다. 문명은 기원전 3천여 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 등에서 일어났다.
서구에서 도시란 말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우르(ur)'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도시화(urbanization)라는 말의 어원이 된다. 세계 최초의 도시로 알려진 요르단 강 서안의 '예리코'에는 기원전 8천 년에 이미 2천 명이 자급자족했다.
'<함무라비법전>은 세계 최초 성문법으로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법전은 여러 경우에 사형이나 사지 절단과 같은 가혹한 처벌을 부과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무죄 추정의 원칙과 증거주의 등 현대 법체계에서 그대로 채택하는 원칙을 이미 반영하고 있다.' (p.32)'눈에는 눈 이네는 이'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에 대한 설명이다. 함무라비는 지금으로부터 약 3800여 년 전 바빌론의 왕이 된 지 30년 만에 메소포타미아의 통일을 이룩한 왕이다. 세계사 특히, 서양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인문 저술가 이강룡의 저서 <하룻밤에 읽는 서양사>를 권한다.
연도나 특정 사건이 시대순으로 나열된 역사책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가 탄생해서 문명화되고 도시화 되면서 칼과 창으로 싸우던 전쟁은 총과 포를 수단으로 하다가 21세기에는 곡류나 기름, 커피 또는 환경과 같은 생산물이 무기가 되는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독자가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 이강룡은 책에서 그간 우리가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도 알려준다. 서양 격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은 '의술의 길은 먼데 인생은 짧도다'에 대한 오역이고, 상업적 이익만을 중시했다는 상인의 도시 국가, 베네치아는 유족 연금을 탄생시킨 도시라며 가장이 사망하면 국가는 유족들에게 생활비를 지급했다고 설명한다. 또 문명의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 시대에 대학이 설립됐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전하고 있는데 바로 1088년 유럽최초의 고등교육기관 볼로냐 대학이 그것이다.
'로마인은 각기 개성이 무척 다르다. 그러나 무리로 있을 때는 지도자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며 한몸처럼 움직인다.' 마르쿠스 카토(p.56), '로마인은 배수시설에 뛰어났지만 머리가 뛰어나진 않았다.'(p.58), '비잔틴 제국의 힘과 안정은 관료제 덕이다.' 역사가 스티븐 런시먼(p,79)모두 로마와 관련된 말이다. 개인보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개인의 특출함보다는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점검하고 강화함으로써 국력을 강화한 나라가 로마라는 것이다. 로마는 400여 년에 걸쳐 유럽 전체를 통일했고, 동과 서로 분리된 후에도 동로마는 로마의 전통을 천년 가깝도록 유지한다. 그 이유는 시스템을 잘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우리 모두 자유로워지기 위해 법률에 종속되는 것이다'라는 키케로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한다.
저자가 '세속적 이해가 난무하는 피와 돈의 전쟁'으로 묘사한 십자군 전쟁을 겪은 유럽은 중세시대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다. 세계는 좀 더 정확하게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아무 준비도 없이 유럽이 주도하는 대항해 시대를 맞이한다. 유럽의 열강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신대륙 발견에 혈안이 되는데 신대륙은 유럽인에게나 신대륙이지 무인 대륙이 아니었다는 데 대항해 시대는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
인문주의로 일컫는 이른바 '르네상스 시대'는 음악, 미술, 과학, 문학 등이 융성한 시기였다. 물자의 생산과 수요가 늘면서 유럽은 팽창하기 시작했다. 콜롬버스로 알려졌으나 실은 당시 에스파냐에서 콜론으로 불렸던 사나이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유럽 열강들의 땅 따먹기가 시작된다.
유럽은 아메리카에 도착해서 마야, 잉카, 아즈텍 문명을 파괴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절멸'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절멸'은 영어 'zenocide'의 번역인데 이는 문명과 인종 모두의 존재를 없애버린다는 의미다.
유럽의 팽창주의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원주민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다. 인디언의 대부분이 절멸됐고,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이주와 학살을 겪으며 백인들을 대신해 노역, 전쟁의 총알받이 역할에 충실해야 했다. 아시아의 국가들도 유럽에 조공을 바쳐야 하는 역할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자바인들이 꼭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꼭 그만큼만 자바인에게 지불했다. 독자에게 고하건대 요 몇 년 전만해도 기아로 지역 전체가 몰살을 당한 실례가 있었다. 어느 어머니들은 식량이 궁해 자식을 팔려고 내놓았고, 어떤 어머니들은 자식을 잡아먹기도 했다.'-<막스 하뷜라르> 중 일부1800년대 인도네시아에서 자행한 네덜란드의 '강제 재배제'를 고발한 <막스 하뷜라르>라는 책 내용의 일부다. 이 책의 저자는 착취를 직접 집행한 관리로 밝혀졌다고 한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였던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여러 국가들은 독립을 이루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21세기에도 끝나지 않는 남미와 아프리카 각국들은 분쟁과 내전 등으로 완전한 자립의 길을 위협받고 있다. 국가간 분쟁이나 내홍에는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이권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망령은 신자유주의 탈을 쓰고 20세기말을 지나 오늘날까지 진화해오고 있다. 시카고학파가 주창했다는 신자유주의를 통해 부를 획득한 세계 인구의 1%는 강대국들과 약소국들의 위정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현재진행중인 자유무역협정은 이러한 자본의 계층적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는 사실을 저자 이강룡은 지적한다.
그러나 저자는 28개국, 43개 언어, 100개 민족, 5억 명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사적 소유를 줄이고 공공 자산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유럽연합이다.
덧붙이는 글 | <하룻밤에 읽는 서양사> (이강룡 지음, 페이퍼로드, 2014년 1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