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사고에는 '공통점'이 있다. 비상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27일 고양종합터미널 창고에서 발생한 화재. 당시 사망자 6명 중 5명은 2층 화장실에서 발견됐다. 사고를 수습한 일산소방서에 의하면 비상구를 찾다가 탈출로를 찾지 못해 화장실에서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날인 5월 28일에 발생한 전남 효실천사랑나눔병원의 화재도 마찬가지다. 사건 발생부터 초기 진화까지 8분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순식간에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독가스를 막아줄 제연시설이 미비했고, 건물 내 비상구가 자물쇠로 잠겨 있었던 탓이다. 11월 15일 담양의 한 펜션에서 발생한 화재사건 역시 별도의 비상구가 없어 피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비상구는 진짜 비상구일까. 어느 날 대학 도서관에 앉아 있다가 문득 불안이 엄습했다. 캠퍼스 내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대학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밤 늦게, 혹은 24시간 운영되며 책과 같이 쉽게 인화되는 물질이 많아 사고에 각별히 유의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대학 도서관 8곳을 살펴본 결과 다수의 대학 도서관의 비상구는 폐쇄되어 있거나, 항시 닫혀 있다가 화재경보기가 울릴 때에만 문이 열리는 수동적인 시스템이었다.
서울 관악구의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은 국내 최대 규모의 대학 도서관이다. 이곳 역시 확인해본 결과 일부 비상구가 폐쇄되어 있었다. 도서관 4층 비상구는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비상열쇠나 자동개폐장치도 없었다. '이 문은 화재 등 비상시에만 파괴하여 피난통로로 사용할 수 있음'이라는 표시가 있었지만 경첩에 달린 자물쇠를 파괴할 수 있는 도구는 따로 구비해 두지 않았다.
5층의 비상구 앞에는 문 위의 비상구 표시등이 무색할 정도로 큰 화분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이 비상구 역시 자물쇠로 봉인돼 있었다. 서울대학교 학생 배아무개(23)씨는 "비상구임에도 이를 개방할 수 있는 어떠한 장치가 존재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면 책으로 자물쇠를 파괴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책 도둑' 막겠다고 안전 대책은 소홀?서울 노원구 서울여자대학교 도서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3층 자료실의 유리 출입문은 정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 중간을 연결해줘 비상사고 시 이 문을 통해 빠르고 원활한 대피가 가능하지만, 비상구 표시등이 없고 키 높이의 칸막이와 의자로 막혀 있었다. 또한 문에는 사설경비업체 잠금 장치가 달려 있어 일반 학생들이 문을 개방할 수 없었다. 위급 시에 문을 개방할 수 없는 구조였다.
5층의 비상구에는 '서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가 적혀 있으며 비상구 주변에는 임의로 적재된 짐이 있었다. 이 대학 학생 유아무개(20)씨는 "만약 사고가 생겨도 이곳을 비상구라고 생각해 탈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명지대학교, 경북 상주시 경북대학교 등에서는 화재경보기 작동과 같은 비상 시에만 개방되어 실제 비상구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 대학 관계자는 "화재경보기가 울리거나 경비실에서 조정하면 문을 열 수 있지만 일반 학생들은 임의대로 문을 열 수 없다"라고 말했다.
각 대학 도서관들은 도서 도난방지 및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해 출입구에 신분 확인용 게이트를 설치해 도서 대출과 출입인원을 통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비상구의 출구가 게이트 안쪽에 있으면 비상구를 통한 도서 분실 및 외부인 출입이 불가능하므로 비상구를 개방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상구의 출구가 게이트 밖에 위치한 위 4개의 대학의 경우, 도서 분실 및 외부인 출입방지를 이유로 비상구를 완전 폐쇄 시키거나 경비시스템에 의한 통제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세워져야 하는 게 안전대책이지만 운영상의 이유로 비상구를 폐쇄하는 셈이다.
윤용균 세명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모든 사고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비상구란 무조건 열려 있어야 한다. 그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라고 강조했다.
윤용균 세명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인터뷰 |
- 일부 대학 도서관 비상구는 완전폐쇄 되어 있더라. "비상구는 위급 상황시 대피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폐쇄하면 안 된다. 담양 펜션 화재 같은 경우 불법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비상구가 없어 피해가 커졌다. 만약 비상구를 반대쪽에 하나만이라도 설치했다면 피해가 적었을 것이다."
- 비상구가 화재경보기와 연동되어 있거나 CCTV를 통해 관리자가 제어하는 경우도 있다. "관리자가 사고를 인지한 순간이면 이미 사고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어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동경비시설을 항상 작동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의외로 오작동이 많다. 일부는 꺼놓는 경우도 있다. '자동'이 들어가는 시스템으로 안전을 담보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비상구는 항상 개방해야 한다."
- 만약 화재경보기가 인지하지 못하는 화재 초기, 혹은 지진이나 건물붕괴와 같은 비화재 사고시 비상구가 정상 개방되지 않는다면 큰 피해를 불러올 수 있겠다. "모든 사고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물론 건물에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안전장치를 설치할 수는 없다. 항상 여러 조건 등을 계산해서 비상구와 같은 안전장치를 설계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설계라고 하는 건 아주 극단적인 상황보다는 일반적인 상황을 예로 설계를 한다.
원자력 발전소 같은 경우 테러와 같은 모든 상황을 대비하지만 대학도서관은 일반적인 이용시설이므로 극히 적은 가능성의 사고에는 대비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사고가 발생시 피해가 커질 수 있다. 특수한 사고뿐만 아니라 화재와 같은 일반적인 사고 피해 방지를 위해 비상구가 항상 개방되어야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
- 화재경보기와 연동되어 있거나 경비실에서 제어하는 비상구의 경우 일반 이용자들은 비상구 개폐가 불가능하다. 엘리베이터 비상벨과 같이 비상구 옆에 비상 버튼을 설치하는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수 있을 것 같다. "비상버튼은 비상구의 원래 목적을 훼손시킨다. 비상벨 설치는 비상구 폐쇄를 허용한다는 의미가 된다. 근본적으로 비상구는 개방되어야 하는데 관리 차원에서 비상버튼을 만든다는 것은 '비상구를 평소에 닫아도 된다는 거구나'라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 하지만 도서관 측에서는 도서 분실 및 외부인 출입 방지를 위해 비상구를 개방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런것은 관리자의 운영상 효율을 위한 것이지 이용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비상구란 무조건 열려있어야 한다. 그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강제사항이 아니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안전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면 비상구란 항상 열려있어서 어느 순간에도 항상 사람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
덧붙이는 글 | 2014 '청춘기자상' 응모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