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리고 여전히 많은 '도서정가제'가 11월 21일부터 시행된다. 이제 신간이든 구간이든 어떤 책도 15% 이상의 할인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서점, 출판사, 독자들의 고민은 깊어진다. 이미 시행이 확정된 마당인데, 앞으로 누리지 못할 할인의 단맛을 극도로 맛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현재 서점과 출판사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점 입장에서는 출판사한테 매절로 사뒀지만 팔리지 않는 책들, 출판사 입장에서는 앞으로 팔릴 가능성이 적지만 재고가 많아 창고비만 축내는 책들을 어쩔 수 없이 듣도 보도 못하게 싼 값(최대 90% 할인)으로 내놓는 것이다.
사실 이 둘은 오랜 앙숙이다. 바로 '공급률' 때문인데, 출판사 입장에서는 서점이 너무 공급률을 낮게 '후려친다'고 생각하고 서점 입장에서는 수많은 출판사의 책들을 받아 '팔아 주는 데'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대다수의 출판사들이 완전한 '을'이고, 아주 잘나가는 베스트셀러를 생산해낼 때만 그나마 '갑'이 된다.
이런 상태에서 도서정가제가 불러올 후폭풍은 쉬이 가늠하기가 힘들다. 출판계 전체적으로 일시적인 매출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특히 상당수의 출판사들이 구간을 30%, 50% 할인으로 소모 시키며 자연스레 베스트셀러로 올려 지속적으로 현금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독자들은 오랜 관습으로 굳어진 '할인'이 되지 않는 구간은 거들떠도 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최소한 당분간은 말이다.
이는 서점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인터넷 서점'. 언젠가부터 오프라인(할인이 되지 않는다)에서 책을 고르고 온라인에서 싼 값에 사게 되었는데, 이제는 메리트가 없어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지점을 들어 다시 오프라인 서점이 즉, 동네 곳곳에 퍼져 있는 중소형의 이름 없는 서점들이 다시금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말이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것 같아 보이지만, 과연?
그리고 또 한 가지 기대하는 지점은 앞의 것과 비슷한 맥락의 중소형 출판사 부활이다. 중소형 출판사들은 30%, 50%씩 할인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할인을 하려면 서점에 그보다 더욱 싸게 공급을 해야 하는데 그 자체로 적자 혹은 본전 치기에 불과하다.
설령 잘 팔려 베스트셀러에 오른다고 할 때도 문제다. 계속 쇄를 찍어야 하는데, 어차피 적자 혹은 본전 치기에 불과한 작업을 계속 해보았자 의미가 없는 것이다. 대형 출판사의 경우, 많은 자본을 비롯해 수많은 책들이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에 목을 매달 필요가 있다. 그 타이틀을 이용해 마케팅을 해야 한다.
당장은 혼란 피할 수 없을 듯... 출판계 공멸 막기 위한 고육지책
이렇게 현재의 도서정가제 체제 하에서는 중소형 출판사가 거의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이다. 반면 앞으로 개정·시행될 도서정가제에서는 어느 정도의 공평한 경쟁이 기대된다. 물론 이론적인 얘기이다. 실제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미지수이다. 출판계 전체의 상생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독자 입장에서는 도서정가제가 '단통법'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소비자들의 선택에 맞게 다양한 값으로 책을 살 수 있었는데, 그것이 높은 값으로 통일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이는 '가격 거품' 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그동안에는 사실상 무한대의 할인이 가능했기에 그 할인폭을 책 출간 전에 상정한 후 값을 매긴 측면이 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후에 할인 없이 어떻게 그 '비싼' 책을 살 수 있을지 걱정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은 출판계가 이미 인지하고 있다. 무너져가는 출판계이기에 누구보다 판매에 예민하다. 할인이 제한되면 매출이 떨어질 거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판계가 할 일은 책 값의 거품을 빼는 일이다.
물론 이는 출판계 전체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많은 출판사들이 구간인 책들도 파격적인 할인 정책 없이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출판사와 서점들은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반드시 책 값을 내릴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그 사실을 독자들과 공유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개정된 도서정가제에 찬성의 표를 던지고 싶다. 당장은 많은 혼란이 일 것이 분명하다. 떨어져 나가는 독자들을 망연자실 바라보며 망하는 출판사가 속출할 수도 있다. 콘텐츠를 접할 무수히 많은 매체들이 존재하는데 굳이 비싼 책을 사서 볼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무한 할인 경쟁이 계속 되면 출판계 전체가 망할 거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무너져가는 출판계의 원인을 무한 할인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독자분들께서는 이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뿌리 깊은 악질적 고름을 짜내기 위해 생살을 찢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비록 그것이 국가가 나서서 소비자를 우롱하고 있다는 듯이 비춰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적어도 '단통법'과 같은 급으로 매도하지는 말아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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